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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천석 칼럼] 지도에서 사라졌던 나라가 명심할 일

바람아님 2016. 9. 3. 10:31

(출처-조선일보 2016.09.02 강천석 논설고문)

한-미, 血盟이란 말보다 양국 國益 절충이 중요
미-중 갈등 시대 버텨낼 인내와 국력 키워야

강천석 논설고문강대국에 둘러싸인 나라가 독립과 존엄을 지켜나가기는 쉽지 않다. 
한 걸음 삐끗하면 지도에서 사라진다. 
한반도는 1910년에서 1945년까지 36년 세월 세계지도에 'JAPAN'으로 표기(表記)됐다. 
16세기 무렵 중부 유럽 대국(大國)이던 폴란드도 국경을 맞댄 강대국 프로이센·오스트리아·러시아에 
의해 몇 차례 국토가 분할되다가 1795년 지도에서 사라졌다. 
1918년 세계 제1차 대전 종전(終戰)과 함께 123년 만에 나라를 되찾았으나 
1939년 독일과 소련이 동서 양쪽에서 공격해오자 또다시 지도에서 사라졌다. 
폴란드 멸망 원인은 수구(守舊)·혁명 세력 간 국론(國論) 분열과 국제 정세 오판(誤判)이었다. 
주변 강대국들은 서로 다투다가도 폴란드 분할 문제에선 언제 다퉜느냐는 듯 쉽게 합의(合意)를 이뤘다.

최강대국 미국 국민의 상당수는 인도네시아가 인도 곁에 있는 나라인 줄 안다. 
미국 청년 5만4260명이 한국전쟁에서 목숨을 잃었는데도 한국이 일본 북쪽에 있는지 남쪽에 있는지 모르는 미국인이 꽤 된다.
그러나 지도에서 사라졌던 역사를 짊어진 나라 국민은 그럴 처지가 못 된다.

브레진스키는 1977년부터 4년간 백악관 안보보좌관으로 세계 정치를 주물렀다. 
그는 퇴임 후 '거대한 체스판(The Grand Chessboard)'과 '제국의 선택(The Choice)'이란 책을 냈다. 
책 속에서 21세기 미국의 세계 전략을 철두철미 강대국의 눈(眼)으로 들여다보며, 한국의 자부심(自負心)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국 운명을 강대국의 종속 변수(變數)처럼 취급했다. 
강대국 편집증(偏執症)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 수수께끼는 브레진스키가 '강대국 간 합의'에 의해 국토가 세 번 분할되고 나라가 두 번 지도에서 사라졌던 폴란드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면 풀린다. 
그의 혈관 속에는 강대국 간 냉혹한 거래 때문에 속절없이 나라를 잃었던 망국민(亡國民)의 강박관념이 흐르고 있다.

2005년 미국 외교 전문지 '포린 폴리시'는 가장 영향력 있는 국제정치 이론가 25명을 선정했다. 
이 리스트에서 5위를 차지한 미어세이머 시카고대 교수는 
'강대국 국제 정치의 비극(The Tragedy of Great Power Politics)'이란 자신의 책 서문에 이렇게 썼다. 
"한국과 폴란드가 강대국에 의해 한때 지도에서 사라졌던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한국이 나라를 지키려면 동맹의 구조, 세력 균형, 강대국의 본성과 행동·핵무기라는 복잡한 문제를 
심사숙고(深思熟考)하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사드(THAAD) 배치 발표 이후 한국에서 벌어져 온 일들은 '이 나라가 100년 전 지도에서 사라졌던 나라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가'라는 의심이 들게 만든다. 정부는 습관적으로 결정·발표하고, 야당은 관성(慣性)에 따라 반대하고, 
전문가는 공론(空論)으로 일부 여론에 영합하고, 지역 주민은 이해(利害)에 떠밀려 머리띠를 동여맨다.

현재의 한·미 관계에서 혈맹(血盟)이란 단어에만 지나치게 과다(過多)한 의미를 부여하면 착각을 불러올 수 있다. 
한국의 지정학적 가치를 과대평가하고 이 때문에 어떤 일이 있어도 미국은 한국을 떠나지 못한다는 식(式)으로 
미국을 무골호인(無骨好人) 취급하는 것도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동맹이란 국익을 같이하는 나라가 한 지붕 아래 동거(同居)하는 상태다. 결혼과는 다르다. 
한·미 안보조약은 한 나라가 조약 해지(解止)를 상대국에 통고하면 1년 후 자동 종료된다. 
사실 사드의 주목적은 주한 미군과 미군 장비를 북한의 선제(先制) 공격으로부터 방어하는 것이다. 
한국 방어를 위해 나와 있는 자국(自國) 병사를 보호하는 장비 도입에 한국이 반대하면 미국 내에 어떤 여론이 일지는 
불 보듯 하다.

세계 무대에서 한국의 가치는 망국(亡國)을 맞았던 1910년대나 한국전쟁이 발발하던 1950년대와는 크게 다르다. 
그러나 한국 국익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비중과 미국 국익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의 차이가 여전히 크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 개인 관계에서도 한쪽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계약은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흔하다. 
동맹국이라도 상대 국가 탓에 자국(自國)의 이익에 절실하지 않은 분쟁에 휘말리지 않나 은근히 걱정한다. 
다른 한편 도움이 필요한 절체절명의 순간에 동맹국에 버림받지 않을까를 우려하는 것이 국제관계이기도 하다. 
한·미 관계에도 이런 양면(兩面)이 작용하고 있다.

미·중 관계가 견제 국면으로 넘어가고 사드에 대한 중국의 과잉 반응은 그 연장선에 있다. 
중국에 한국이 사드  배치 결정을 불러온 것이 북한 핵과 미사일이라는 점을 이해시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 
진실을 알고도 모른 체하는 상대를 납득시키긴 쉽지 않다. 
폴란드 역사에서 보듯 주변 강대국이 한국 어깨너머로 한국 문제에 손쉽게 합의에 다다르는 것이 반드시 
반가운 일만은 아니다. 미·중 갈등과 견제 시대를 버텨낼 전략적 인내(忍耐)와 국력을 함께 키워갈 필요가 있다.



[세상읽기] 우크라이나 사태에 우크라이나는 없다


(출처-국제신문 2014-04-06 변호사 홍광식)


지난 3월 18일 크림반도 합병 조약서에 서명한 푸틴은 붉은 광장을 가득 채운 12만 명의 군중 앞에서 

"위대한 러시아를 건설하겠다"고 선언했다. 같은 날 크림반도에서 경계를 서던 우크라이나 초급 장교 한 명이 공격을 받아 

숨졌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군부대에 무력 사용을 승인했지만, 대응사격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19일에는 친(親)러시아 자경단(自警團) 200여 명이 우크라이나 해군 사령부를 급습하고 러시아 국기를 내걸었는데도 

이를 무력으로 제지하지 못했다.


총 한 발 쏘지 못하고, 거대한 자국 땅덩어리가 러시아 손에 넘어가는 걸 지켜보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잔 다르크'로 칭송받던 야권 지도자 율리야 티모셴코 전 총리는 허리 디스크를 이유로 독일의 병원 침상에
누워 있었다. 아르세니 야체뉴크 임시정부 총리는 러시아를 공용어로 채택해야 한다는 러시아의 요구에
"내 아내도 러시아어를 자유롭게 쓴다"며 맞장구치듯 말했다. 말로만 일전(一戰)을 외칠 뿐, 러시아에 맞서기 위한 방법을
내놓고 국민에게 호소하는 지도자는 없다. 대신 이들은 미국과 유럽에 도움을 호소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정작 우크라이나는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는 평가다.


우크라이나의 가장 큰 약점은 분열이었다.
경제적 격차와 인종 구성에 따라 동서가 갈렸고, 친서방이냐 친러시아냐를 두고 싸웠다. 더욱이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강력한 국가 건설의 비전을 제시하는 지도자가 없었다. 그런 지도자가 있었다면, 지금처럼 크림반도가 떨어져 나가는 것을
속수무책 보고 있지만은 않았을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나 크림반도 등에 대한 집착은 우크라이나가 1991년 8월 소련으로부터 독립할 때부터 예상되었다.
우크라이나가 독립할 당시 러시아의 심경에 대해 미국 국제전략가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는 1997년 무렵 출간된 그의 저서
'거대한 체스판(The grand chessboard)'에서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 있다.
'300여 년에 걸친 러시아제국의 역사로부터 우크라이나의 결별은 잠재적으로 풍부한 농공업 기반의 상실과 인종적으로나
종교적으로 러시아인과 매우 흡사한 5200만 인구의 상실을 의미하는 것이다. 러시아를 진정으로 크고 자신감 넘치는
제국으로 만들어 줄 수 있는 만큼의 자원이다. 그리고 러시아의 흑해에 대한 지배권도 끝나고 만다'.


우크라이나의 지도층은 자국이 처한 지정학적 상황을 통찰하고 앞으로 닥쳐올 사태에 국제적, 국내적으로 대처해야 했다.
우크라이나는 핵무기를 포기하였고, 튼실한 우방도 없이 러시아에 무방비 상태에 노출되어 있었다.


국가 내부에서 인종적, 사회적으로 대립·갈등이 있더라도 국가의 명운이 걸린 사태에서는 국민들이 일치단결하고,
국가지도층이 그런 역할을 해야 했다. 무능한 지도자는 역사의 범죄자이다.


현명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경험을 통하여 배우고, 어리석은 사람은 스스로 체험해야 배운다.
나라도 마찬가지다.
북한과 대치 상황에서 북한과 동맹관계에 있는 중국, 독도가 자기 땅이라고 우기는 일본까지 상대해야 하는 우리들에게
크림반도 사태는 먼 나라의 일이 아니다. 아직도 아니 영원히 국제사회는 힘이 지배하는 곳이고, 얕보이면 땅을 빼앗길 수
있으며, 자기 나라는 스스로 지킬 힘을 갖춰야 한다. 힘이 부족할 때는 다른 나라의 힘을 활용할 지혜를 가져야 한다.
동맹국과의 관계도 긴밀하여야 하고 수시로 확인해야 할 필요성을 체감하였다.
멀리 있는 물은 가까운 불을 끄지 못한다(遠水難救近火).

국가 위기 순간에 말로만 도와주는 동맹이나 우방은 소용이 없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과 이웃하고 있는 스위스의 경우 독일·프랑스계 등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고, 종교적 사상적으로 

다양하고, 연방제 국가이기도 하다. 그런 스위스라 1차 세계대전이나 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 초반 독일이 승리를 거듭할 때 

독일어계 주민들과 프랑스어계 주민들의 갈등이 심화되어 국론이 분열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때 명망이 있는 시인 칼 슈피텔러가 국론이 통일될 수 있도록 만든 연설이 오랫동안 여운을 남기고 있다.


'국경 저편에 사는 사람들은 우리의 이웃이고, 국경 이편에 사는 사람들은 이웃보다 더한 형제들이다. 

이웃과 형제의 차이는 매우 크다. 

아무리 좋은 이웃이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대포로 우리를 쏠 수 있지만, 형제는 우리 편에서 싸워 준다. 

우리는 정치적 형제가 최선의 이웃이나 종족보다 더 가깝다는 것을 의식하여야 한다. 

이 의식을 강화하는 것이 우리의 애국적 의무다. 결코 쉬운 의무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