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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중국해 판결 그 후] ② "뭣이 중한디?"..'영토분쟁·패권경쟁'에 가려진 또 하나의 이슈

바람아님 2016. 9. 25. 00:03
KBS 2016.09.22. 17:17

남중국해에 서식하는 산호초는 몇 종이나 될까? 참고로 카리브 해와 하와이 근해에는 70종 정도 된다고 한다. 필리핀에서 만난 미국의 해양생태학자 존 맥마누스 교수(美 마이애미大)에 따르면 남중국해에 서식하는 산호초 종류는 무려 571종이라고 했다. 남중국해는 그야말로 산호초의 보고인 셈이다. 산호초는 열대 바닷속의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낼 뿐 아니라 바다 생물의 서식지 역할도 한다. 다른 곳보다 산소 함량이 높고 먹이가 풍부하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과 베트남, 필리핀, 타이완이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남중국해의 스프래틀리 군도(중국명 난사군도) 주변 어장은 산호초가 많은 데다 동서남북 네 방향에서 유입된 조류가 뒤섞이며 다양한 어류가 몰려드는 황금어장이다. 남중국해에서 한 해 잡히는 물고기가 세계 어획량의 10%인 1,660만 톤이나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 7월 12일 남중국해 분쟁에 대한 헤이그 상설 중재재판소(PCA)의 판결은 예상대로 중국의 완패였다. 필리핀이 신청한 15개 항목 모두 필리핀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중국이 섬이라고 주장한 지형 모두 섬 지위를 인정받지 못했고 자신들이 건설한 인공섬 ‘수비 암초’ 등 3곳도 썰물 때 드러나고 밀물 때 잠기는 ‘간조 노출치’로 격하됐다.

남중국해 판결 보도에서 환경파괴 문제는 거의 다뤄지지 않아

국내 언론들도 판결 내용을 비중 있게 다뤘다. 하지만 국내 언론이 주로 주목했던 부분은 크게 두 부분이었다.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관련국 간의 영토분쟁의 이슈가 첫 번째이고, 남중국해를 통해 태평양에 진출해 지역 패권을 차지하려는 중국과, ‘항행의 자유’를 내세워 중국을 봉쇄하려는 미국의 충돌, 이른바 G2의 패권경쟁 구도로 보는 시각이 두 번째였다. 사실 이러한 시각으로 남중국해 문제를 분석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필리핀이 중재재판소에 제기한 판결 항목 가운데는 중국의 인공섬 건설 등의 행위가 남중국해 해양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판단할 것을 요구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다만, 영토분쟁과 패권경쟁이라는 거시적 이슈에 밀려 남중국해의 환경 파괴 문제는 언론에서 거의 다뤄지지 못했다.

남중국해 스틀래틀리 군도의 한 산호초에서 중국 준설선으로 보이는 배 수십 척이 포착된 장면. 2015년 5월 21일 미 해군 감시선에서 촬영된 화면
남중국해 스틀래틀리 군도의 한 산호초에서 중국 준설선으로 보이는 배 수십 척이 포착된 장면. 2015년 5월 21일 미 해군 감시선에서 촬영된 화면



상설 중재재판소, “중국 남중국해 산호초 심각하게 훼손”

언론에 중요하게 보도되지는 않았지만, 상설 중재재판소는 판결문에서 중국 측의 무차별한 환경 파괴 사실을 지적했다. 상설 중재재판소는 중국의 대규모 간척과 스프래틀리 제도 내 7개 해양지형의 인공섬 건설이 해양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검토한 결과 중국이 산호초 환경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생태계와 멸종위기에 놓인 어종들의 서식지를 보호해야 하는 의무를 위반했다고 결론 내렸다. 또 중국 어민들이 남중국해에서 멸종위기에 빠진 어류와 산호 등을 상당한 규모로 남획했다는 사실을 중국 당국이 알면서도 이런 행동을 저지해야 할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판결했다.

(출처=존 맥마누스 교수)
(출처=존 맥마누스 교수)



“왼쪽 사진은 남중국해 패그아사 암초에 서식하고 있는 건강하고 다양한 산호의 모습입니다. 반면 오른쪽 사진은 중국 어민들이 대왕조개(giant clam)를 채취하기 위해 마구잡이로 산호초의 바닥을 긁은 뒤 죽은 산호초의 모습입니다.”

맥마누스 교수는 남중국해를 둘러싼 동남아 국가들의 영유권 분쟁이 격화되면서 이 지역의 해양 생태계가 급속히 악화했다고 주장한다. 위의 사진 두 장을 보면 남중국해의 산호가 얼마나 심각하게 훼손됐는지 비교해 볼 수 있다. 해양 생태학자들은 인공위성 사진을 기초로 중국이 영유권 주장의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인공섬 건설에 나서면서 58㎢ 면적의 산호초가 파괴됐다고 주장한다. 또 중국 어민들도 대왕조개와 산호를 불법 채취하기 위해 산호초 바닥을 긁으면서 산호초 100㎢도 무참히 파괴됐다는 것이다. 맥마누스 교수는 스프래틀리 군도에 있는 전체 산호초 10%와 파라셀 군도 산호초의 8%가 중국의 불법채취와 인공섬 건설로 심각하게 훼손됐다고 말한다.

도대체 대왕조개가 뭐길래?... 中 어선, 산호초까지 초토화

그렇다면 중국 어민들은 국제해양법을 어기면서 왜 대왕조개와 산호 채취에 열을 내고 있을까? 다 자란 대왕조개는 크기가 1.2 미터, 무게는 200킬로그램이 넘는다. 중국에서는 이 대왕조개 껍데기를 조각해 예술품이나 보석류를 만들어 고가에 판다. 중국의 신흥 부호들이 자신들의 지위를 과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많이 찾는데, 코끼리 상아 유통이 엄격히 금지되면서 대왕조개 껍데기로 만든 예술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또 대왕 조갯살은 고급 요리나 정력제로 사용된다고 한다. 이 때문에 최근 몇 년 사이 중국에서 대왕조개 가격이 40배나 뛰었다는 서방 언론의 보도도 있었다.

채취한 대왕조개 껍데기로 만들어지는 보석류(출처=존 맥마누스 교수)
채취한 대왕조개 껍데기로 만들어지는 보석류(출처=존 맥마누스 교수)


과거에는 중국 연안에도 대왕조개가 많았지만 무분별한 채취로 씨가 말랐고 이제 중국 어민들은 수백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는 남중국해 스프래틀리 군도까지 배를 타고 내려온다. 한 BBC 취재팀은 지난해 12월 중국 어민들의 대왕조개 채취 장면을 카메라에 담은 적도 있다.

사실 수년 동안 남중국해 전문가들은 위성사진을 통해 산호초 주변에 활 모양의 긁힌 흔적들을 발견했다. 하지만 이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최근에서야 이것이 중국 어선들이 대왕조개를 채취하기 위해 배에서 프로펠러 같은 것을 아래로 내려 바닥을 긁으면서 생긴 흔적임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중국 어선들의 무분별한 채취로 산호초가 죽게 되고 바다 전체 생태계까지 파괴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조개 채취 작업을 하는 중국 어선의 모습(출처= 존 맥마누스 교수)
조개 채취 작업을 하는 중국 어선의 모습(출처= 존 맥마누스 교수)


남중국해에서 고기를 잡는 사람들은 중국 어민들만이 아니다. 남중국해와 인접하고 있는 필리핀, 인도네시아, 베트남, 브루나이, 태국 등 남중국해를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어민만 수백만 명에 이른다. 산호가 사라지고 해양생태계가 파괴되면 물고기들도 사라지고 고기 잡는 사람들도 결국은 사라지게 되리라는 것이 해양생태학자들의 우려다.

탐욕으로 인한 환경 파괴 결국 인간에게 피해

환경은 인간에 먹고 살 수 있는 자원을 제공해준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이 지나치면 환경만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그 환경을 터전 삼아 사는 인간에게 피해가 다시 돌아오게 된다. 남중국해 이슈를 다루면서 환경 문제를 쉽게 지나쳐 버리기 어려운 이유이다.

영화 <대호>에서 배우 최민식이 연기한 조선 최고의 포수 천만덕은 호랑이를 단순히 생계를 위한 포획의 대상이 아닌 함께 살아가야 하는 생태계 일부로 여겼다. 욕심을 제어하지 못하고 지리산의 마지막 남은 한 마리 대호(大虎)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는 조선 포수대와 일본군 장교를 향해 뱉었던 그의 대사가 생각난다.

“작작들 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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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석조기자 (sjyoo@k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