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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기자 칼럼] 신앙인답게 사는 게 어려운가

바람아님 2016. 9. 28. 23:47
조선일보 2016.09.28. 03:12

'선데이 크리스천이 먼데이 크리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개신교계에서 자조적으로 하는 말이다. 주일 예배 빠지지 않고, 봉사도 열심이지만 막상 일상으로 돌아가면 신앙 없는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산다는, 신앙과 일상의 불일치를 꼬집는 표현이다.

지난 4월 총선 후 20대 국회 개원을 전후해 국회에서는 종교별 신자 의원 모임이 줄을 이었다. 20대 국회의원 300명 중 개신교, 천주교, 불교 신자만 꼽아도 줄잡아 240명 선에 이른다. 정치인뿐 아니라 공무원 사회에도 종교별 모임이 있고, 법조인 등 직업별 모임도 상당하다. 이렇게 곳곳에 신앙인 조직이 있는 나라라면 우리 사회가 정직하고, 투명하고, 서로 위하는 모습이어야 옳다.

그러나 우리가 목격하는 실제는 그렇지 못하다. 국회는 싸움판이 되기 일쑤고, 각종 비리 사건에도 신앙을 가진 이들의 이름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심지어 사회 고위층 인사가 검은돈을 움직이는 정거장으로 종교기관을 이용하기도 한다. 신앙인 많은 나라의 자화상이 왜 이럴까.


고위층 인사들은 종교 활동에서도 알게 모르게 '특권'을 누린다. 종교 행사 때에도 앞쪽 자리를 배려받고, 일반 신자들은 직접 만나기 힘든 종교인들과 '독대(獨對)'할 기회도 상대적으로 많다. 종교인들이 바쁜 시간을 쪼개 사회 고위층 인사를 따로 만나는 것은 이들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기대 때문일 것이다. 그런 독대 자리에서 정치인에게 "상대 당과 열심히 싸우라" "막말도 서슴지 마라"고 할 종교인은 없을 것이다. 기업인에게 "국가 경제 생각 말고 개인 재산이나 챙기라" "세금 적게 내고, 종업원 줄이라"고 권하거나 공무원에게 "눈치 잘 보고 그저 보신(保身)이나 하라"고 말하는 종교인도 상상할 수 없다. 종교인들은 아마도 각 종교의 가르침에 따라 올바른 처신과 언행을 권할 것이다. 국가 사회를 위한 봉사와 헌신도 주문할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왜 이럴까. 예배, 법회, 미사에 참가할 때 마음은 예배당, 법당, 성당을 나서는 순간 싹 잊는 것일까. 종교를 방패 혹은 장식품, 표(票)를 얻는 배경쯤으로 여기지 않고서야 이럴 수는 없다. 공직자와 고위층에게 자신의 종교적 정체성을 공개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다만 최소한 일반인 수준에서 볼 때에도 양심적이고, 정직하며, 공사(公私)를 구분할 줄 알았으면 하는 정도의 바람이다.


'답게 살겠습니다'란 이름의 운동이 있다. 지난 2014년부터 7대 종단 평신도 단체들이 국민 각자가 본분을 다하자는 취지로 벌이는 운동이다. 다른 분야도 활발하지는 않지만 이 운동은 특히 국회에서 맥을 못 춘다. 지난 19대 국회 때에도 임기 종료 직전 개신교·천주교·불교 신자 의원 20여명 남짓이 겨우 모여서 선포식을 했을 뿐이다. 혹시 당시 모임에 불참한 의원들은 '국회의원답게 살 자신이 없어서' 불참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 정도다.


나라 안팎으로 어려운 때다. 모든 신앙인이 성직자처럼 살 수는 없다. 다만 각 종교가 강조하는 기본 덕목이라도 지키려 애쓰면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많아지고, 조금 더 나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김한수 종교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