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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선비 일기는 냉철한 자기 반성의 기록

바람아님 2016. 12. 1. 23:22
세계일보 2016.12.01 21:03

1600여종 조사.. 19세기 32%로 최다
'이재난고'·'동춘당일기' 40년 이상 써
'인재·야곡일록' 작성원칙 충실히 따라
유만주는 일기 '흠영'에서 독서벽 고백

12월이다. 한 해를 돌아볼 때다. 누군가는 일찌감치 내년을 구상하고 있을 것이다. 이래저래 새 일기장을 준비할 시기다. 물론 일기를 착실히 써 온 사람 혹은 일기를 쓸 의지를 가진 사람에 한해서다.

지독하게 일기를 썼던 이들이 있었다. 길게는 40년이 넘게 썼던 일기가 전해진다. 남들이 보기에는 편집증으로 보일 만큼의 꼼꼼함으로 자신의 일상을 기록한 것은 “인생의 일에 매번 스스로 점검하여 반드시 그 합당한 이치를 구하여야 한다”는 신념에서 비롯됐다.

흠영은 유만주가 1775∼1787년 하루도 빠짐없이 쓴 일기다. 여기에는 유만주의 지독한 책읽기에 대한 고백이 담겨 있다.
서울역사박물관 제공

◆수십 년간의 일상 기록… 냉철한 자기반성

조선시대 일기는 조사된 것만 1600여 종에 달한다. 내용에 따라 공적인 일기, 사적인 일기가 있고, 기간 혹은 대상에 따라 생활일기, 특수일기로 나뉜다. 특수일기는 사행일기 표류일기 여행일기 유배일기 등이 있다. 시기적으로 보면 19세기의 것이 32%로 가장 많다. 18세기 22%, 17세기 18%, 16세기 12%이고 15세기의 일기도 9.1% 정도를 차지한다.

작성 기간은 조선후기 학자인 황윤석의 ‘이재난고’, 조선중기의 문신 송준길의 ‘동춘당일기’가 43년으로 가장 길다. 황윤석의 경우 10세 때부터 63세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문학, 천문학, 지리학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보고 배운 바를 정리했다.


‘인재·야곡일록’은 조극선의 일기다. 인재일록이 15세(1609)부터 29세(1623)까지, 야곡일록은 30세(1624)부터 41세(1635)까지 쓴 것을 이른다. 조극선의 일기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작성원칙’을 정해두고 이를 충실하게 따랐다는 점이다. 조극선은 야곡일록에 해당하는 일기는 쓰기 시작하면서 12가지의 ‘규례’(規例)를 정했다. 첫 번째가 “매년의 머리에 그해의 기년으로 이 해를 표시한다(큰 글자로 쓴다)”이다. 내용에 따라 표제를 붙였는데 자기가 한 일은 ‘응사’(應事)라 하고, 손님을 접대하는 것은 ‘응접’(應接)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다른 사람의 잘못된 말과 행동은 기록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웠지만 “혹 기록하는 것은 그 사람이 일찍이 착한 것으로 세상에 이름이 있는 자는 장차 그 사람을 규명하는 데 준비하는 것”이라는 단서를 달아놓아 흥미롭다. 조극선은 일기를 쓰는 목적이 냉철한 자기반성을 하는 데 있다는 걸 분명히 밝혔다.


“금일로써 어제를 보고, 오는 달을 전 달과 비교하여 모든 일행일사(一行一事)로 혹시 기록하지 못한 것이 있은즉, 다른 사람들이 비록 알지 못한다 하여도 스스로 부끄럽지 아니한가. 그런 까닭으로 내가 그것을 자세히 한다.”


조극선이 15살 때부터 작성한 일기인 인재·야곡일록. 조극선은 자신을 엄격하게 성찰하는 자료로서 일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지독하게 쓰고 지독하게 읽다

수십 년간의 일기를 남긴 이들은 엄청난 ‘기록자’인 동시에 엄청난 ‘독서가’이기도 했다. 독서는 일기에 담긴 일상의 중요한 장면 중 하나였다.


조극선은 매일 읽은 책의 부분과 분량을 적었다. 25세 때인 1619년 1∼6월의 일기를 분석해보면 그는 주로 아침에 읽고, 한 번 읽을 때 10번을 반복했다. 읽지 못한 날은 ‘조불독’(朝不讀)이라 했고, 10번을 읽지 못한 날은 구체적인 이유를 적어 두기도 했다. 조극선이 독서와 관련한 내용을 자세히 기록한 이유로 “그 일과의 진척에 책임을 지우려 한다”고 밝혔다. 스스로 책읽기를 독려하기 위한 것이었다. 지난달 22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이 주최한 학술대회에서 인재·야곡일록을 분석한 성봉현 충남대 교수는 “조극선 자신이 쓸데없는 일로 독서를 폐하거나, 나태하거나 노느라 독서를 폐한 사실을 기록하면 일록을 보고 마음에 부끄럽게 되어 독서에 힘쓰게 된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서울역사박물관이 내년 2월까지 여는 ‘1784 유만주의 한양’ 전시회는 1775∼1787년 하루도 빠짐없이 작성된 유만주의 일기 ‘흠영’에 반영된 독서 관련 내용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일기 중에 자신의 독서벽을 고백했다.

“만사를 헤아려도 아무 연연함 없는데 오직 독서벽(癖) 한 가지만 남아 있네. 어찌하면 일 년 같은 긴 하루를 얻어 천하의 보지 못한 책들을 다 읽겠는가?”


책을 너무 많이 읽어 유만주는 심각한 눈병을 앓았다. 눈병을 고치기 위해 의원을 만난 사실을 적어 두었다. 눈이 아파 책읽기가 힘든 게 안타까웠던 유만주는 “어떻게 하면 지금부터 늙을 때까지 책을 몇 만 권 읽기를 일각도 그치지 않으면서도 눈이 흐리거나 침침하지 않아 달빛처럼 환하게 볼 수 있겠소이까”라고 묻기도 했다.


강구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