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만물상] 다주택자

바람아님 2017. 8. 8. 09:28

(조선일보 2017.08.08 박정훈 논설위원)


김영삼 대통령은 부동산 소유자들을 싫어했다.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지금도 자주 회자되는 '부동산 고통' 발언이었다. 

1993년 그는 "부동산 갖고 있는 것이 고통이 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서슬 퍼렇던 취임 직후였다. 

표현도 과했지만 더 놀라웠던 것은 부동산에 대한 노골적 적대감이었다. 

김 대통령은 부동산 보유 자체를 악(惡)으로 규정했다. 경제 현상을 선악의 잣대로 보고 있었다.


▶지난주 김현미 국토부 장관의 발언을 보고 20여년 전을 떠올렸다는 전문가들이 있었다. 

김 장관은 8·2 부동산 대책을 이렇게 정리했다. "집 많이 가진 사람은 좀 불편하게 되는 것이죠." 그러면서 

"(양도세가 중과되는) 내년 4월까지 시간을 드렸으니 좀 파시고요"라고 했다. 

다주택자를 투기 세력으로 본다는 얘기였다. 

청와대 수석이며 보좌관까지 나서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고 했다. 

김영삼 정부 때의 '고통'이 '불편함'으로 바뀌었을 뿐인 것 같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다주택자와 전쟁'을 선언한 8·2 대책에 대해 다주택자마다 사정이 다 다른데 왜 싸잡아 투기꾼으로 모느냐는 반발도 

적지 않다고 한다. 새집을 샀는데 옛집이 팔리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노후 생계 목적으로 다세대주택을 지어 임대하는 

경우도 많다. 한 네티즌은 "시골 고향에 집 한 채 더 있는 게 무슨 투기냐"는 글을 올렸다. 빈집투성이인 농어촌 집은 

팔려야 팔 수도 없다. 그런데 정부는 무조건 빨리 팔라고 다그친다. 선의의 다주택자들은 속을 끓이게 됐다.


▶새 정부 각료들도 3명 중 1명꼴로 2주택자라고 한다. 

교육부총리를 비롯한 3명은 서울 강남을 포함해 2채의 집을 갖고 있었다. 

고향이나 서울 근교에 전원주택을 보유한 장관들도 여럿이다. 

김현미 장관 역시 남편 명의 단독주택을 더 갖고 있었다. 

그는 "남편이 퇴직 후 지내려 사놓은 집"이라고 설명했다. 

심지어 문재인 대통령도 2주택자다. 지난 대선 때 경남 양산 자택과 부인 명의의 서울 서대문구 연립주택을 신고했다.


▶장관들 역시 투기와는 거리가 먼 선의의 다주택자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도 자신들과 같은 사정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 같다. 

경제문제는 양면(兩面)이 있고 이쪽을 누르면 저쪽이 튀어오른다. 부동산도 마찬가지다. 

부동산을 정의(正義)의 프레임에 우겨넣는 운동권적 시각은 집값 안정의 근본 처방을 내놓을 수 없다. 

"집을 파시라"고 하면서 자기 집을 팔겠다는 장관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이 역시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