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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대학 못가면 루저 취급… 진학·직업교육 분리해야 개천서 용 납니다"

바람아님 2017. 11. 26. 11:36

(조선일보 2017.11.25 박돈규 기자)


한국교총 창립 70주년 하윤수 교총 회장


조부·부친은 독립운동가
가난한 집 9남매 중 일곱째,형들은 공부는커녕 머슴살이… 어려선 세상이 불만투성이


희망의 사다리 복원하려면
어중간하게 대학 들어가면 고등 실업자만 양산해
임금 격차는 법으로 줄이고 다양한 진로 교육 강화해야
 


대한민국이 고속 성장한 배경 중 하나로 교육이 꼽힌다.

하지만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은 폐기된 지 오래다.

공교육은 완전히 무너졌다. 요즘 초·중·고 교사들은 처지를 이렇게 비관한다.

'선생이 학생의 그림자도 밟아서는 안 되지.'


한국교총이 올해 일흔 살을 맞았다. 창립 70주년 기념식을 앞두고 지난 1일 만난 하윤수(56·부산교대 교수) 교총 회장은

"미래를 만들어나갈 교육은 잘 보이지 않고 학생과 학부모로부터 불신의 대상이 되고 말았다"며

"교총이 그 책임과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말했다.

교총은 전국 교원 50만명 중 18만명이 가입한 최대 교원단체다.


부산교대 총장을 지낸 그는 지난해 비(非)서울권 첫 교총 회장으로 당선됐다. 교사 자격증도 없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데, 조부와 부친이 독립운동가였다.

그는 "양대에 걸쳐 독립운동을 했으니 6대가 망해야 하는데 저는 가난을 딛고 성공해 '개천에서 용 났다'는 말을 듣는다"며

"공교육을 재건하고 희망 사다리를 다시 세우려면 진학과 직업 교육, 즉 '투 트랙'으로 틀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윤수 교총 회장은 “입시 하나에만 목을 메고 사교육 의존도가 높아져 대한민국 공교육은 무기력하기 짝이 없다”며 “진학과 직업 교육을 분리하고 교권을 바로 세워 희망 사다리를 복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윤수 교총 회장은 “입시 하나에만 목을 메고 사교육 의존도가 높아져 대한민국 공교육은 무기력하기 짝이 없다”며

“진학과 직업 교육을 분리하고 교권을 바로 세워 희망 사다리를 복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 이진한 기자


"입고 갈 아랫도리가 없었다"

경남 남해에서 태어난 그는 구 남매 중 일곱째였다. 또래보다 1년 늦게 국민학교에 들어갔다.

여덟 살에 (엉덩이 부분이) 터진 바지를 입고 학교에 갔더니 인솔했던 마을 이장이 "너희 집에서 넌 내년에 입학한다고 했다"며

돌려보냈다.


―화가 났겠군요.

"어머니가 메주콩을 삶고 계셨어요. '학교에서 쫓겨났다'고 하니 '야, 너는 그 옷을 입고 갔냐' 나무라셨죠.

그렇게 어렵게 컸습니다."


―당시 부친도 생존해 계셨나요?

"조부가 1919년 4월에 독립선언서를 서부경남에 뿌렸어요. 시골까지 내려오는 데 시간이 걸린 겁니다.

대구형무소에서 3년간 옥고를 치르셨어요. 아버지는 열세 살 때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남해 주재소를 습격했다가 총을 맞아

오른쪽 복사뼈에 구멍이 났습니다. 불구로 사시다 일흔셋에 세상을 떠나셨어요."


―집안 형편이 어려웠겠군요.

"누님 중엔 국민학교도 못 나온 분이 있고 형님 두 분은 남의 집 머슴을 살았어요.

그렇게 공부시켜서 하윤수가 지금 여기 있는 겁니다. 국민학교 졸업할 때쯤 세상 이치를 좀 터득한 것 같아요."


―부모님께 받은 정신적인 유산이 있나요?

"어머니로부터 배려심을 배웠습니다. 형제들이 이불 하나에 다 같이 잤는데 큰형과 둘째형을 양쪽 끝에 눕혔어요. 이불을

서로 당겨도 동생들은 덮을 수 있게 하셨던 겁니다. 요즘엔 자녀가 대부분 하나나 둘이라 배려와 양보가 부족하지요."


―어려서부터 모범생이었나요?

"전혀요. 뭐랄까, 적개심이 있었어요. 저 집은 잘사는데 왜 우리 집은 이 모양인가,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나이도 한 살 많고

덩치도 커서 싸움엔 늘 1등이었지요. 국민학교 때 급식으로 빵이 나왔는데 급우들에게 조금 떼어주고 '내일 빵 하나 갚아라'

윽박질렀습니다(웃음). 빼앗아서 동생들을 먹였죠."


―성인이 돼 친구들 만나면 어떤 소리를 듣나요.

"윤수 너는 우리한테 평생 밥 사야 한다. 하하하."


진학과 직업 교육, '투 트랙'으로 가야

경성대 법학과에 합격한 그는 고시 공부를 하다 포기했다. 동아대 총장 수행비서와 조교를 하며 가까스로 대학원을 마쳤고,

교육법 전공으로 부산교대 전임강사에 임용됐다. 하 회장은 "순전히 조상 덕"이라고 껄껄 웃었다.

부산교대 총장을 지낼 땐 교대생이 소년소녀가장을 1대1로 멘토링하는 프로그램을 지원해 호평받았다.


―교총 70주년을 축하합니다.

"반성부터 해야죠. 구멍 하나 만들어놓고 그쪽으로 몰아가면서 묵인하고 방치한 책임이 있습니다.

100년까지 앞으로 30년, 교총이 뼈를 깎는 노력을 행동으로 보여줘야 해요."


―교육의 희망 사다리가 실종됐다고 합니다.

"복원해야죠. 너나없이 대학 진학에만 목을 메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명박 정부 출범할 때 인수위원으로 들어가 도입한

마이스터교 제도를 더 확대할 필요가 있어요. 대학 진학과 직업 교육, '투 트랙'으로 가야 합니다.

우리 교육 정책은 지나치게 대학 중심으로 짜여 있어요. 독일에선 중학교 때부터 공부할 학생과 취업할 학생이 확연히

갈라집니다. 대졸과 고졸의 임금 격차는 정부가 차별금지법안 등을 만들어 줄여나갈 수 있습니다."


―대학에 못 가면 인생을 그르친다는 통념이 아직 강한데요.

"어중간하게 대학 들어가 고등실업자가 양산되는 사태를 막으려면 그 고정관념부터 깨야 합니다.

선 취업 후 진학이 수월하도록 제도를 정비하고 진로 교육을 다양하게 강화해야죠."


―중·고생들은 밤늦게까지 '학원 뺑뺑이'를 돕니다.

"입시 만능주의, 대학 만능주의 때문입니다. 그 구멍 하나밖에 없으니 다들 얼마나 고통스러운가요.

낮에 학교에서 자는 학생을 교사가 나무라면 '학원강사보다 못한 당신이 왜 우리 애를 잡느냐'며 항의가 들어옵니다.

그러고도 진학에 실패하면 '루저' 취급을 받지요. 국가는 책임 안 지니 악순환이 되풀이됩니다.

대한민국 교육은 차라리 망해야 삽니다."


―교육이 망해야 산다고요?

"이 구조로는 개천에서 용 안 나옵니다. 돈 없는 사람은 계속 치이죠. '금수저' '다이아몬드수저' 같은 가진 자들이

판을 칠 바에야 망해버리는 게 낫잖습니까."  "어설픈 교육 실험 중단해라"

하 회장은 작년 교총회장 선거 당시 2018년 시·도 교육감 선거에서 모든 선거구에 교총 후보를 출마시키겠다고 공약했다.

정치인들이 교육감으로 당선돼 소속 정당의 교육 실험을 하는 바람에 현장에서 불협화음이 일었기 때문이다.

그는 "교육에는 진보·보수가 있어선 안 되고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한다"며 "교육감은 분풀이하는 자리가 아니다"고 비판했다.


―분풀이라뇨.

"9시 등교라거나 석식 급식, 자율 학습이 그렇습니다.

그것들은 각 학교장이 판단해야지 교육감이 자기 주관을 강요할 문제가 아니에요. 부모가 먼저 출근해 집에 있는 애한테

전화해 '냉장고에서 뭐 꺼내 먹고 학교 가라' 하는 게 휴대폰 교육입니까 뭡니까. 9시 등교가 수면권을 보장하겠다는

취지였는데 실태 조사를 해보니 수면 시간이 오히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등교가 늦어진 만큼 더 늦게 잠자리에 드는 것이군요.

"정책을 펼 땐 신중해야 합니다. 한 번 망가지면 되돌리기 어려우니까요.

교육감이 시범학교 지정 같은 테스트도 없이 자기 생각을 모든 현장에 바로 투입하는 건 아주 위험한 발상입니다."


―무상급식은 어떻게 보시나요?

"해야 할 학생이라면 방학 중에도 해야죠. 하지만 기회비용이 있잖습니까. 특수교육이나 낙후된 시설 등 우선순위에서

다른 데 써야 할 예산이 무차별적 무상급식 때문에 못 갑니다. 결국 교육의 질이 저하돼요."


―먹는 것 가지고 아이들 마음 다치게 하진 말자는 뜻이 담겼잖아요.

"그럼 우리보다 GNP(국민총생산)가 훨씬 높은 일본 아이들은 마음 다쳐서 다 죽었겠네요. 불필요한 사람까지 왜 무상급식을

받습니까. 자유주의의 본질에 어긋난다고 봅니다. 저야말로 누구보다 어렵게 큰 사람입니다."


―입시 정책도 너무 자주 바뀌는데요.

"해결이 시급한 게 수능 개편안이에요.

절대평가 과목을 확대하는 개편안이 학생들과 학부모들의 반발로 지난 8월 결국 발표와 적용이 1년 미뤄지면서 혼란과 상처만

남겼어요. 또 새 정부가 15년 넘은 외고와 자사고, 특목고를 사실상 폐지로 내모는 것도 정책의 신뢰성과 일관성에서

문제가 큽니다. 백년대계를 세우진 못할망정 최소한 십년대계는 돼야 하지 않겠습니까. 10년 뒤가 예측 가능해야죠."


그가 건네준 명함에는 '가르칠 맛 나는 학교, 선생님이 행복해집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교총 회장 선거 당시 구호였다. 3년 임기는 절반쯤 지났다. 하 회장은 "명예훼손·폭언·폭행을 비롯한 교권 침해 사례가

2006년부터 2016년 사이 3배 늘었다"며 "정당한 교육 활동을 보호하고 공교육이 본 모습을 회복하도록 힘쓰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