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만물상] 애도받지 못한 죽음들

바람아님 2020. 4. 9. 21:16

(조선일보 2020.04.09 임민혁 논설위원)


"간밤에 죽은 사람들을 구덩이에 던져 넣고 흙을 끼얹었다.

그 위에 다른 시체들을 쌓고 그 위에 흙, 그 위에 다시 시체…. 여러 겹의 치즈와 파스타로 라자냐를 만드는 것 같았다."

중세 피렌체의 한 작가는 흑사병이 덮친 도시의 끔찍한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다.

조선 시대에도 "역병이 창궐해 10리 안에 쌓인 주검이 언덕을 이뤘고, 빗물이 도랑에서 넘칠 때는

주검이 잇따라 떠내려갔다"(현종실록)는 기록이 남아 있다.


▶비극이 아닌 죽음은 없겠지만 전염병으로 인한 죽음은 특히 잔인하고 서러운 듯하다.

감염이 두려워 가족이나 이웃에게 돌봄을 받지 못하고 대부분 외로이 숨을 거뒀다.

아파 죽기 전에 굶어 죽은 경우가 태반이라고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포 앞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설 자리는 없었다.

전쟁터에서는 전염병 시체를 '세균전' 무기로 활용했다는 얘기도 전해내려온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역사책에서나 볼 법한 일들이 지금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세계 최강대국에서 사망자를 감당 못해 지게차로 시체를 냉동 트럭에 옮겨 싣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가족·친지가 자가 격리돼 코로나 환자들이 마지막 작별 인사도 하지 못 하고 떠난다는 사연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영상통화 등으로 임종하면 그나마 나은 경우라고 한다.

감염병 예방법에 따라 확진자 시신은 무조건 화장해야 하는데, 제대로 애도도 받지 못한 채

한 줌의 재로 떠나는 모습은 너무나 쓸쓸하다.


▶대구의 한 확진자는 병상에서 뉴스를 보다 역시 확진자인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접했다.

동생에게 전화했더니 "어제 돌아가셔서 오늘 화장했다. 형이 충격받을까 봐 말을 안 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이 환자는 "나 같은 불효자가 없다"며 가슴을 쳤다.

어떤 노부부는 동시에 확진 판정을 받고 다른 병원에 입원했는데 남편이 먼저 세상을 떠났다.

아내는 남편 얼굴도 못 보고 장례식도 참석 못 했다. 이런 기막힌 일을 겪고도 어디 하소연할 데가 없다.


▶어제로 국내 코로나 사망자가 200명을 넘었다. "다른 나라에 비하면 이게 어디냐"며 자랑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누군가의 아버지고 어머니고 아들딸이다.

숫자를 따지기 앞서 진심으로 조의를 표하고, 유가족에게 위로를 전하는 게 먼저다.

낚싯배 전복 사고에도 "이유 막론하고 국가 책임"이라며 청와대 회의에서 묵념한 게 지금 대통령이다.

이번 사태에도 이런 모습을 보여 고인들과 유가족들의 한을 조금이나마 풀어주길 바란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4/08/2020040805003.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