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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남철수] '기적의 배'서 시작된 인연, 64년 흘러도 가족같네요

바람아님 2014. 12. 27. 22:46

(출처-조선일보 2014.12.27  양승식 기자)

-'흥남철수' 영웅 후손들 한자리에
배에서 태어난 5명 중 1명 이경필씨… 포니대령 손자·현봉학씨 딸들 만나

1950년 12월 24일 눈보라가 휘몰아치던 영하 20도의 흥남 부두. 피란민을 태운 마지막 수송선인 메리디스 빅토리호
(7600t)에 다섯 명의 만삭 임신부가 승선했다. 통상 정원의 7배인 1만4000명이 탄 이 배에서 다섯 명의 아이가 태어났다. 
미군은 이 아이들에게 순서대로 '김치1'~'김치5'라는 별명을 붙였다. 
어머니 치마폭에서 힘겹게 탯줄을 끊은 이 아이들은 '크리스마스의 선물'로 불렸다. 
이날 피란민들이 수송선에 탈 수 있도록 동분서주한 사람이 고(故) 현봉학 박사와 에드워드 포니 대령이었다. 
또 이 배에서 태어난 아이들 중 한 명이 '김치5'로 불린 이경필(64)씨다.

이경필씨는 26일 오후 서울 신촌세브란스 병원에서 현봉학 박사의 딸인 에스더 현(56)·헬렌 현(53)씨와 
포니 대령의 손자 네드 포니(51)씨에게 감사패를 건넸다. 
현씨와 포니씨는 이 자리에서 "당신이 바로 크리스마스의 선물이군요. 생일 축하합니다!"라고 말했다. 
이에 이씨는 "흥남에서 떠난 피란민 10만명 중 마지막 배에서 태어난 끝둥이가 바로 저입니다. 
그날 수송선으로 후송된 10만명이 이제는 증손자까지 100만명이 됐습니다"라고 했다.


	1950년 흥남 철수 당시 수송선에 피란민들이 승선(乘船)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고(故) 현봉학 박사와 에드워드 포니 대령의 후손들이 이 배에서 태어난 이경필(맨 왼쪽)씨로부터 26일 감사패를 받았다.

 1950년 흥남 철수 당시 수송선에 피란민들이 

승선(乘船)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고(故) 현봉학 박사와 

에드워드 포니 대령의 후손들이 

이 배에서 태어난 이경필(맨 왼쪽)씨로부터 

26일 감사패를 받았다. 

왼쪽부터 이경필씨, 포니 대령의 손자인 네드 포니씨

현 박사의 딸 헬렌 현·에스더 현씨.

 /김지호 기자


흥남 철수 당시 통역병이었던 현 박사는 1950년 11월 장진호 전투 이후 흥남항에서 철수하던 미군에게 

"자유를 찾아 남쪽으로 가는 피란민 10만명을 배에 태워달라"고 애원했다. 그는 막역한 사이였던 포니 대령과 함께 

수차례 미 10군단장 에드워드 아먼드 소장을 찾아가 설득했다. 병력 10만5000명을 철수시키는 것만도 힘든 상황이었지만 

아먼드 소장은 두 사람의 간절한 설득에 피란민의 승선을 허락했다.

이날 현 박사 및 포니 대령 가족과 처음 만난 이씨는 "15년 전에야 처음으로 제가 흥남 철수 중 배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았다"며 "작년에 미국을 방문, 포니 대령의 묘역을 참배했다"고 말했다. 

현 박사의 딸인 에스더씨도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포니 대령의 손자를 만났다고 들었지만 직접 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헬렌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가 돼서야 얼마나 자랑스러운 분인지 자세히 알게 됐다"며 "훌륭한 일을 했지만 

자신의 행동이 이산가족을 만들지 않았는지 속상해하셨다"고 말했다.

네드씨는 1998년 처음으로 현 박사를 만나고 나서야 할아버지가 했던 일을 알았다. 

이후 그는 흥남 철수 작전과 관련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 인연으로 한국을 찾은 네드씨의 아들은 한국에 매료돼 지금 4년째 서울대에서 공부하고 있다.

이들은 "처음 만났는데 가족 같은 기분"이라고 했다. 포니 대령과 현 박사는 서로의 가족사진을 갖고 있었다. 

두 사람 모두 메리디스 빅토리호에서 태어난 '김치' 다섯 명의 이야기를 자주 했다고 한다.

보훈처는 현봉학 박사를 이달의 '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 

전투병이 아닌 통역병이었던 그가 전쟁영웅으로 선정된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흥남 철수(1950년 12월 15~24일) 작전" 관련 기사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