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2015-7-24
남프랑스의 눈부신 햇빛에서 사물이 얼마나 밝고 화사하게 보이는지를 몸소 깨달은 반 고흐는 이 그림에 노란색, 붉은색, 밝은 녹색, 푸른색을 사용해 보색 대비효과를 나타내려 했다. 화면 중앙의 녹색 잎과 주황색 꽃은 서로 색채대비를 이루고, 꽃병의 푸른색은 배경과 탁자의 책에 쓰인 노란색과 상생하며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구도적으로 반 고흐는 테이블과 꽃병을 화면의 오른쪽에 약간 치우치도록 배치했다.
빈센트 반 고흐, ‘협죽도가 있는 정물’, 캔버스에 오일, 73×60㎝, 1888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그렇지만 이파리를 왼쪽으로 뻗치게 배치함으로써 균형과 율동감을 동시에 부여했다. 이렇게 한쪽으로 쏠리는 구성과 이를 보완하는 긴장과 균형은 아를 시기의 정물화에 주로 나타난다. 아마도 반 고흐의 파토스(pathos), 즉 비애에 대한 열정과 감정적인 기복을 잘 드러내는 것이리라. 테이블에 놓인 책은 반 고흐가 아껴 읽었던 에밀 졸라의 <생의 기쁨>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책이 탁자 위 모서리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다는 것. 상당한 독서가로 그림만큼 꽤나 글을 잘 썼던 반 고흐는 특별히 이 책에 매료되었던 것 같다. 그러나 목사였던 아버지는 이 책을 읽는 아들을 못마땅해했다. 아들이 교회에 나가지 않는 등 타락한 가장 큰 이유가 프랑스 소설을 지나치게 많이 읽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특히 <생의 기쁨>이 신의 존재를 부인한다며 격분했다. 그러니 이 그림은 부자 사이의 반목과 갈등을 암시하기도 한다. 어쨌거나 반 고흐는 아버지를 거부할 수밖에 없었다. 꽃이 책을 향해 뭉게뭉게 피어나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사실, 여름이야말로 책읽기에 아주 좋은 계절이다. 이번 휴가에 반 고흐의 편지들을 동반해야겠다. <유경희 |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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