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日常 ·健康

[살며 사랑하며-부희령] 귀농 실패담

바람아님 2015. 11. 13. 01:02
국민일보 2015-11-12

십여 년 전만 해도 나는 경기도의 외진 마을에서 살고 있었다. 처음 그 동네에 내려갈 때는 과수원을 할 작정이었다. 그 무렵 나는 대책 없는 몽상가였으므로, 사람은 몸을 쓰는 노동과 정신을 쓰는 노동을 반반 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믿었고, 마음만 먹으면 그렇게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막상 귀농이라는 것을 해보니 모든 것이 예상과 달랐다. 몸을 쓰는 노동을 하면서 정신으로 뭘 한다는 게 불가능했다. 때를 놓치지 말고 해야 할 일이 늘 있었고, 일이 끝나면 책을 읽거나 글을 쓸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그렇게 해도 먹고살 만큼 벌 수 없었다는 것. 우여곡절 끝에 정신을 차려 보니, 나는 동네 아이들을 모아놓고 과외를 하면서 생계를 이어가고 있었다.

가르치던 학생 대부분은 그 동네에서 민박집을 하거나 장사를 하는 집 아이들이었다. 어느 날 민박집 딸 하나가 우울한 목소리로 이런 이야기를 했다. “엠티 왔던 대학생 언니 오빠들이 이장님이 방송하는 소리를 듣고 막 웃었어요. 이 동네 완전히 전원일기네, 라고 하면서요. 너무 창피해서 그 언니 오빠들 앞을 지나갈 수가 없었어요.” 나는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뭐가 창피한 거지?


시골에 사는 사람들은 다른 문화생활을 할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에 텔레비전을 열심히 본다. 텔레비전에서 보여주는 그림들 대부분은 도시생활이다. 아이들은 모두 언젠가는 아파트에서 살아보겠다는 꿈을 갖고 있었고, 휴일이면 직행버스를 타고 가까운 도시의 백화점이나 극장을 구경하러 몰려 나갔다. 동네 주민들 대부분은 노인이었고, 초등학생들은 부모가 도시에서 맞벌이를 하거나 이혼을 해서 시골의 조부모에게 떠맡겨진 경우가 많았다. 가까운 호숫가에는 모텔이 즐비했고, 산 중턱에는 골프장이 두 개나 있던 마을. 아들이 중학생이 되던 해에 나는 그곳을 떠나 도시로 왔다. 학생들이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 기억난다. “선생님은 정말로 안 떠나실 줄 알았어요.”


부희령(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