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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지붕… 옹기종기 동화 같은 마을

바람아님 2015. 11. 30. 00:58

조선일보 : 2015.11.29

일본 도쿄(東京)에서 기차로 반나절쯤 걸려야 도착할 수 있는 기후(岐阜)현. 이곳은 높은 산과 계곡 등이 모여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내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그런 다채로운 풍광 속으로 좀 더 들어가면 산속 깊이 숨겨진 아름다운 마을이 있다.
모든 것이 현대적으로 변해가는 와중에도 여전히 옛 모습을 그대로 지켜내려오고 있는 곳, 바로 시라카와고(白川鄕)가 주인공이다.

시라카와고는 료하쿠(兩白) 산맥의 하쿠산(白山) 정상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마을 근처의 전망대에 올라 마을을 내려다보면 마치 에도시대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마을 뒤로 풍성한 삼나무 숲들을 배경으로 옹기종기 자리하고 있는 초가집들의 모습은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변함없이 그대로다. 워낙 외진 곳에 있어 사람이 찾아오기 힘들 것 같은데도 관광객들이 끊이지 않는 이곳은 일본에서 넷째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선정될 만큼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은 장소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렇게 국내외적으로 유명세를 떨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전통적인 초가집 건축 양식에 있다.


일본 기후현 시라카와고 마을에 일본 전통양식으로 지은 초가집이 서 있다. 적설량이 300㎝에 달할 정도로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이다 보니 집마다 지붕이 뾰족하게 솟아 있다. 이 마을은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 케이채 제공

 

매우 높고 가파르게 세워진 지붕으로 만들어진 이 집들은 마치 일본 애니메이션 토토로에서나 나올 듯한 동화 같은 매력을 지니고 있어 절로 감탄사가 나오게 한다. 이 독특한 초가집들을 일컬어 일본인들은 갓쇼즈쿠리(合掌造り)라고 불렀는데, 이는 기도하듯 두 손을 모은 것을 뜻하는 말이다. 높게 세워진 지붕 모양이 마치 합장하는 손과 비슷하다고 해서 지어진 별명이다. 그렇게 이 마을은 합장촌으로 통하게 되었다. 하지만 실제 이런 독특한 지붕의 집들이 만들어진 것은 귀엽게 보이기 위해서는 아니었다.


 시라카와고는 세계에서 손꼽히게 눈이 많이 오는 곳이고, 그렇기에 과거부터 겨울이면 엄청난 폭설을 마주하기 십상이었다. 이런 혹독한 환경과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양의 눈을 견뎌내는 집을 연구하다 보니 나오게 된 것이 바로 이런 독특한 지붕이었던 것이다. 기도하는 두 손처럼 보이는 이 지붕의 모습처럼, 시라카와고의 옛 사람들은 그렇게 이 지붕이 그들의 겨울을 따뜻하게 지켜주기를 기도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갓쇼즈쿠리는 이 마을 사람들이 현재까지도 떠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지금은 단지 눈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해줄 뿐 아니라, 수많은 관광객을 몰고 옴으로써 그들의 삶을 더 윤택하게 하는 데도 도움을 주고 있다.

 

일본 기후현 시라카와고 마을에 일본 전통양식으로 지은 초가집이 서 있다. 적설량이 300㎝에 달할 정도로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이다 보니 집마다 지붕이 뾰족하게 솟아 있다. 이 마을은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 케이채 제공

 

일본 기후현 시라카와고 마을에 일본 전통양식으로 지은 초가집이 서 있다. 적설량이 300㎝에 달할 정도로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이다 보니 집마다 지붕이 뾰족하게 솟아 있다. 이 마을은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 케이채 제공

 

마을 안에는 여전히 현지인들이 일상생활을 영위하고 있기 때문에 무작정 집안에 들어가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마을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갓쇼즈쿠리로 알려진 와다가(Wada House)는 일부 공간을 제외하곤 관광객들이 내부를 볼 수 있도록 공개되어 시라카와고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다. 또 일부 초가집은 관광객을 위한 숙소 역할도 하고 있는데, 시간이 된다면 하룻밤 머무르며 진정 이 마을이 가진 매력을 느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아지다 보니 끊임없는 관광객들로 인해 일상생활이 어려워진 여러 현지인은 살던 집을 음식점이나 기념품숍으로 바꾸고 주거지를 다른 곳으로 옮기기도 했다. 갈수록 늘어나는 관광객의 숫자에 오랫동안 지켜져온 이 마을의 매력이 바뀔까 우려하는 목소리들도 있다. 이곳을 찾는다면 최대한 주거인들의 생활을 존중하며 돌아보는 매너를 갖추는 것이 더 오랫동안 더 많은 사람이 이 마을의 매력을 즐길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일본 기후현 시라카와고 마을에 일본 전통양식으로 지은 초가집이 서 있다. 적설량이 300㎝에 달할 정도로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이다 보니 집마다 지붕이 뾰족하게 솟아 있다. 이 마을은 199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 케이채 제공

 

그렇다면 어느 계절에 시라카와고를 찾아야만 할까? 워낙 많이 오는 눈으로 겨울에는 며칠씩 고립되는 것도 예사라곤 하지만, 눈이 가득 쌓인 초가집들의 모습이 무척이나 아름다워 관광객들이 끊이질 않는 겨울이야말로 가장 인기 있는 시즌이다. 하지만 겨울뿐 아니라 사계절 내내 다양한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곳이 또 시라카와고이기도 하다. 


계절마다 뚜렷하게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어 봄에는 넘실거리는 벚꽃으로, 여름에는 푸른 녹음으로 관광객들을 맞이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을에는 산을 가득 수놓는 화려한 단풍으로 장관을 이루며 이로 인해 단풍놀이를 오는 수많은 관광객으로 특히나 많은 인기를 누린다. 당장 당신이 이곳을 찾는다면 제대로 된 단풍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고 해도 여행 일정을 취소할 필요는 없다. 어떤 계절에 가든지 분명히 당신만의 시라카와고를 만날 수 있을 테니까.


시라카와고 가는 길

도쿄나 오사카 어느 쪽에서 가더라도 대부분 기차로 나고야로 향한 후 다카야마로 환승하게 된다. 다카야마에서 버스로 1시간이면 시라카와고에 도착한다. 시라카와고와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닌 옛 마을인 다카야마에서 하룻밤을 머물고 이른 아침 버스로 시라카와고로 향하는 게 일반적이다.

  • 케이채 사진가·에세이스트
  • 편집=뉴스큐레이션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