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2015.12.14
옆집 대학생 누나를 짝사랑하던 고등학교 3학년 남학생, "선을 넘지 말라"는 누나의 경고에도 몇 번이고 무식한 고백을 감행한다. 그러던 어느 겨울밤 마침내 누나의 한 마디, "그래 나도 너 좋아".
세상을 다 얻은 표정의 남자 주인공 얼굴 뒤로 잔잔한 내레이션이 흐른다.
"선이라는 건 딱 거기까지란 뜻이다. 선을 지킨다는 건 지금껏 머물던 익숙함의 영역, 딱 거기까지의 세상과 규칙과 관계들을 유지하겠다는 뜻이다. 그건 결국, 선을 넘지 않는다면 결코 다른 세상과 규칙과 관계는 만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복고적인 향수를 자극하는 그 드라마의 노림수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아주 잠깐 고3 남학생이 된 느낌이었다. 정말 행복했다. 그리고 바보상자라는 TV에서도 이런 잔잔한 울림을 얻을 수 있구나 놀라웠다.
과연 그렇다. 선을 넘지 않으면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은 진리다.
필자의 회사 사무실 책상 뒤에는 나무 액자에 끼운 사진 2장이 있다. 여행사 사장으로서 각지를 다녔던 여정 중, 다시 떠올려도 빙긋 웃음이 나오는 가장 뿌듯한 순간을 담은 사진이다.
하나는 뉴질랜드 퀸스타운의 세계 최초 번지점프대라는 '카와라우 번지'에 갔을 때 받은 기념사진이다. 필자의 얼굴이 보이지는 않지만 까마득히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던 그 순간의 기록. 사실 그 전까지는 "굳이 돈 써가면서 가슴 철렁한 경험은 하지 않는다"는 나만의 '선'을 가지고 있었다. 하필 그날 함께 여행을 떠난 일행이 전부 아주머니가 아니었다면, 일행 중 단 한 명이라도 번지점프를 하려고 했다면 나만의 선은 계속 지켜졌을지 모른다. 결국 그날 나는 고소공포증의 선을 넘었다. 물론 가이드의 따가운 눈총이 부담스러워 얼떨결에 불쑥 손을 들었던 덕분이었기는 하지만.
두 번째 사진은 자전거를 타고 낙동강 둔치 어디쯤을 달리는 모습이다. 지난해 가을 총연장 660㎞의 자전거 국토 종주를 마치기 하루 전에 찍었던 사진. 빠듯하게 잡아도 3박4일, 신통치 않은 필자의 체력을 감안한다면 5박6일은 투자했어야 할 코스지만 회사에는 단 하루의 휴가도 내지 않고 완수했다. 코스를 5개로 나누어 주말마다 시작점과 끝점을 오가는 방식으로 가능했다. 역시 '직장인이 무슨 수로 국토 종주를'이라는 선을 넘은 것이다.
두 장의 사진, 아니 이 두 순간의 황홀한 기억은 지금도 필자에게 큰 힘이 된다. 불가능할 것이라 여겼던 고정관념을 깨고 간절히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한 몸부림으로 선을 넘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여행을 꿈꾸지만 선뜻 짐을 챙기지 못하는 많은 이유가 바로 이 선 때문이 아닐까.
'수험생 엄마가 어딜' '시어머니가 계신데 어떻게' '노후 자금 모으기도 빠듯한데 무슨'….
모든 것이 준비된 상황은 쉽사리 오지 않는다. 흔히 말하는 '불가능의 3박자' 때문이다. 돈이 있으면 시간이 없고, 시간이 있으면 돈이 없고, 돈과 시간이 있으면 건강이 따르지 않는다. 해가 바뀌기 전에 내 앞에 놓인 선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그리고 새해엔 눈 딱 감고 한번 넘어볼 계획을 세워보자.
아! 딱 하나, 도로의 중앙선처럼 절대 넘어서는 안 될 안전에 관한 선은 빼고 말이다.
[이상호 참좋은여행 대표이사·경영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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