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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주경철]한반도에서 세계대전이 일어날 것인가

바람아님 2016. 2. 19. 00:29

동아일보 2016-02-18


美 턱밑에 핵 배치한 쿠바사태… 케네디, 강온 대립에 협상 선택
30년 후 맥나마라 만난 카스트로, “실제로 발사 준비했다” 밝혀
북핵 맞서 우리도 핵무장하자? 정신병자 같은 김정은에
똑같이 대응하면 최악 시나리오


주경철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한반도는 냉전 시대로 복귀 중이다. 북한이 핵무기와 미사일을 개발하자 우리 역시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지난 시대의 핵 경쟁이 재연될 것인가?

1949년 가을 소련이 핵 실험에 성공해 미국의 핵 독점이 깨졌다. 미국은 소련보다 더 강력한 무기를 갖추기 위해 수소폭탄 개발에 착수했고, 1952년 말에는 히로시마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700배 위력을 가진 수소폭탄 제조에 성공했다. 그러나 다음 해 소련 역시 수소폭탄 개발에 성공했다고 선언했다. 더구나 1957년에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호를 쏘아 올리더니 이 기술을 이용해 미국보다 앞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개발했다.

처음에 미국의 미디어들은 핵폭탄이 터진다고 해도 100명 중 97명은 살아남으니, 핵전쟁은 그런대로 해볼 만하다고 공언했다. 그런데 1961년에 3000Mt(메가톤)급의 핵폭탄 공격을 받을 경우 미국 국민의 80%가 사망한다고 추산한 보고서가 나오자 분위기가 일변했다.

핵무기가 ‘담대한 영도자’의 수중에 들어가면 사정은 훨씬 더 복잡해진다. 미국 턱밑에 위치한 쿠바에서 공산혁명이 일어났다. 미국의 공격을 두려워한 피델 카스트로는 비밀리에 소련 핵미사일을 들여와 배치했다.

당시 처음 선보인 첩보 항공기로 이 사실을 확인한 케네디 정부 내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를 놓고 두 파로 나뉘었다. 강경파는 폭격기로 쿠바를 싹 쓸어버리자고 주장했지만, 결국은 맥나마라 같은 온건파의 주장에 따라 소련과 협상에 들어갔고, 터키와 쿠바에서 동시에 미사일을 철수하는 방향으로 문제를 타결했다. 그런데 만일 강경파의 주장에 따랐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쿠바 사태 30년 후 맥나마라는 쿠바를 방문해 카스트로에게 3가지 질문을 던졌다. 당시 핵미사일이 몇 기였는가? 정말로 미국에 발사할 생각이었는가? 실제 쐈다면 어떻게 되었으리라 생각하는가?

그가 들은 답은 충격적이었다. 미국은 파악하지 못했지만 당시 쿠바에는 핵미사일이 162기나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카스트로는 이미 흐루쇼프에게 핵미사일 사용을 허락받았고, 실제 발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특히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이 걸작이다. “우리가 핵미사일을 쐈다면 미국의 반격을 받아 아마 이 나라가 지도상에서 없어졌겠지.” 그렇지만 그전에 미국 대도시마다 가공할 핵폭탄을 하나씩 안겼을 테고, 어쩌면 미국과 소련은 서로 수소폭탄을 주고받았을지 모른다. 그렇게 되었다면 인류 역사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을 것이다.

사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 세계적으로 대규모 전쟁이 줄었다. 우리나라 역시 1953년 정전 이후 지금까지 늘 전쟁의 공포 아래 살면서도 정작 본격적인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상존하는 전쟁 위협하에 실제로는 장기간의 평화를 누렸고, 그 덕분에 놀라운 경제성장을 이룬 이 현상은 실로 역설적이다.

남북한 양측 모두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어 전쟁이 일어나면 엄청난 피해를 당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오히려 전쟁을 피했다는 것이 하나의 설명이다. 미국과 소련 모두 강력한 핵무기를 보유한 것이 오히려 파국을 막았으리라는 분석도 마찬가지 논리다.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했으니 우리 역시 핵무장을 해야 하는가? 핵 균형을 통한 평화 유지가 가능한가? 과거에 그랬으니 앞으로도 그러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데 어려움이 있다. 북한에는 광기에 가까운 폭력성을 보이는 젊은 독재자의 수중에 핵무기가 쥐여 있다. 카스트로처럼 막무가내의 심정으로 자살 공격을 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국제정치의 장기 사이클을 연구하는 조지 모델스키 같은 학자는 대체로 100년 주기로 세계대전이 발발했다고 주장한다. 이 경향성이 맞는다면 딱 지금이 세계대전이 터질 때다. 게다가 미국과 중국 간 헤게모니 투쟁이 폭발할 최적의 후보 지역은 한반도가 될 것이다. 그러면 핵 공격을 동반한 제3차 세계대전이 이 땅에서 일어날 것인가?

이런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해야 할 것이다. 상대편이 정신병자 같은 태도를 보인다고 우리도 똑같은 대응을 하는 것은 미련한 일이다. 북한이 핵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눌러버려야겠지만, 너무나 위험하고 잃을 것 많은 핵 무장은 길이 아닌 것 같다. 수십 년 전의 낡은 냉전시대 방식으로 대처해서는 안 된다.

주경철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