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6.05.07 김성현 기자)
유럽 문명, 전쟁으로 위기 맞자… 교회와 세속 권력 지키려는 세력, 여성을 악마 동조자 취급
마녀사냥, 중세 아닌 근대 初 절정 악마론 서적, 인쇄술의 발달로 유럽 전역으로 빠르게 퍼져
마녀|주경철 지음|생각의힘|336쪽|1만6000원
유럽에서 마녀사냥이 가장 극심했던 도시 가운데 하나가 독일 바이에른 지방의 밤베르크였다.
1628년 6월 이 도시의 시장이었던 당시 55세의 요한네스 유니우스가 고발됐다.
악마가 주관하는 마녀 집회에 참석했다는 혐의였다.
유니우스 시장은 "하느님을 부인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맞섰지만, 고문을 피할 수는 없었다.
엄지손가락과 다리를 바짝 죄는 건 시작에 불과했다.
엄지손가락과 다리를 바짝 죄는 건 시작에 불과했다.
팔을 뒤로 묶어서 공중으로 들어 올렸다가 툭 떨어뜨려서 어깨 탈구를 유발하는 고문인
'스트라파도'가 8차례나 이어졌다.
유니우스는 결국 무너졌다. "검은 개로 변신한 악마를 타고 날아서 마녀 모임에 참가했다"는 얼토당토않은 내용도 있었다.
그는 자신이 시장을 맡았던 도시에서 화형을 당했다.
하지만 여기엔 반전(反轉)이 있다.
하지만 여기엔 반전(反轉)이 있다.
유니우스는 고문으로 인한 고통 속에서도 남몰래 딸에게 편지를 남겼던 것이다.
유니우스는 "아가야, 내가 자백한 것들은 순전히 거짓말이고 다 지어낸 것들이야.
내가 당했던 것보다 더 심한 고문을 가할 거라는 위협을 받고 공포 때문에 할 수 없이 말한 내용들이야"라고 속내를 토로했다.
그는 간수들을 매수해서 딸에게 편지를 건넸다. 마녀사냥의 공식 기록 이면에 있던 희생자의 생생한 육성을 듣게 된 것이다.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인 저자의 이 책이 지닌 학문적 미덕은 간결하면서도 솔직한 '질문'에 있다.
서문에서 저자는 지금껏 우리가 유럽의 마녀사냥에 대해 알고 있던 상식들과 조금은 다른 질문을 보따리째 쏟아 놓는다.
이를테면 우리는 마녀사냥이 중세에 기승을 부렸던 것으로 이해하지만,
실은 "근대 초에 정점을 이루었던 사건"이었다. 또 유럽 전역에서 마녀사냥이벌어졌지만,
광기가 가장 극렬했던 곳은 오늘날의 독일 지역이다.
17세기 초 독일 밤베르크 시장 유니우스가 겪었던 고통처럼 말이다.
중세가 아니라 근대 초엽에 마녀사냥이 절정에 이르렀던 이유를 추적하는 책의 중반부는
중세가 아니라 근대 초엽에 마녀사냥이 절정에 이르렀던 이유를 추적하는 책의 중반부는
이를테면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을 읽는 듯한 재미가 쏠쏠하다.
14~15세기 유럽은 100년 전쟁과 페스트로 인한 대기근으로 인구가 격감하고 농업이 황폐화하는 위기를 겪었다.
저자는 "전쟁·기근·질병이 동시에 터져 중세 유럽 문명이 좌초할 뻔한 상황"이라고 묘사한다.
중세 질서를 맹렬히 비판하는 '불온한' 움직임이 일어나자, 이에 맞서 교회와 세속 권력을 지켜내려는 흐름도 한층 강화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마녀사냥이었다.
이전까지 흑마술이나 이교(異敎) 제의는 효력이 없는 환상이자 미신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됐다.
이전까지 흑마술이나 이교(異敎) 제의는 효력이 없는 환상이자 미신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됐다.
하지만 15세기에 이르면 악마의 사악한 도움을 받은 마녀가 세상에 해악을 끼치는 행위로 신학적 개념도 달라졌다.
여성은 악마의 희생자가 아니라 세상을 위협하고 인류 구원을 방해하는 악마의 적극적인 동조자로 인식됐다.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1350년 이전 사악한 행위로 인해 재판을 받은 대상자 가운데 70%는 남성이었고,
여성은 30%에 불과했다.
하지만 14세기 후반에 남녀 비율이 42% 대 58%로 역전되더니, 16~17세기에 이르면 여성이 80%를 차지하기에 이른다.
조국 프랑스를 구한 성녀(聖女)에서 하루 아침에 마녀로 추락한 잔 다르크가 대표적인 경우였다.
마녀에 대한 관점이 변하면서 종교 재판의 이론적 근거를 정교하게 다듬은 서적들이 쏟아졌다.
마녀에 대한 관점이 변하면서 종교 재판의 이론적 근거를 정교하게 다듬은 서적들이 쏟아졌다.
"사자나 뱀과 함께 사는 것이 사악한 여인과 함께 사는 것보다 낫다"
"여성이 혼자 생각할 때는 사악한 생각을 하는 것이다"처럼 오늘날 기준으로는 유치하고 원색적인 '여성 혐오'에 불과했다.
하지만 기독교의 종말론과 여성 혐오가 마구잡이로 뒤섞인 악마론(惡魔論) 저서들은 유럽을 마녀사냥의 지옥으로 만들고
말았다. 가장 놀라운 점은 악마론 서적들이 유럽 전역으로 퍼지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이 인쇄술의 발명이었다는 점이다.
인쇄술은 종교 개혁을 낳은 '공신(功臣)'이었을 뿐 아니라, 마녀사냥의 '공범(共犯)'이기도 했던 것이다.
마지막 페이지에서 저자는 인간 이성의 어두운 구석에 웅크린 광기의 위험성에 대해 다시 한 번 경고한다.
마지막 페이지에서 저자는 인간 이성의 어두운 구석에 웅크린 광기의 위험성에 대해 다시 한 번 경고한다.
"자신의 정당성을 위해 악을 필요로 하는 현상은 초역사적으로 존재했으며 현대까지도 이어진 것이 사실"이라는 것이다.
"나치에게는 유대인이, 파시스트들에게는 공산당이, 스탈린주의자들에게는 미제(美帝) 스파이가 마녀 역할을 했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마녀'를 다시 읽는 건, 인간 이성의 불완전성을 겸허하게 인정하기 위해서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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