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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태호의 의사도 사람] 의사도 癌 걸리면 치료법 놓고 흔들린다

바람아님 2016. 5. 15. 14:03

(출처-조선일보 2016.05.14 송내과의원 원장·의학박사)

수많은 치료법… 정답은 없어
의사 또한 환자와 똑같이 수많은 치료법 앞에서 망설이긴 마찬가지
의학이 발달하면서 수많은 치료법 나와… 선택 갈림길에서 고민 커져

의사도 癌 걸리면 치료법 놓고 흔들린다매일 퇴근 시간이 되면 거의 항상 고민하게 된다. 
중국집 점심 메뉴로 짜장면이냐 짬뽕이냐 하는 것만큼의 갈등이다. 
점심이야 짬짜면이라는 한국형 절충안도 있지만 어느 길로 퇴근할 것이냐 하는 
나의 고민에는 절충이 없다. 
자가운전으로 출퇴근하는 내게는 길이 세 가지 정도 있다. 
시내를 통과해서 가는 길, 한강의 북쪽 강변을 이용하는 길, 
그리고 남쪽 강변을 이용하는 길이다.

거리로 보면 시내 길이 가장 직선에 가깝지만 퇴근 시간에 도심을 횡단한다는 
것은 미친 짓과 다름없기에 항상 제외다. 
한강을 끼고 가는 두 길 중 북쪽은 차선 변경이나 끼어들기가 별로 없어 
차가 막히더라도 평탄하게 길을 따라가면서 운전할 수 있는 길이고 
남쪽 길은 합류 도로가 많고 교차로도 많아 길이 막히지 않아도 운전할 때 
신경을 바짝 써야 한다. 그렇지만 북쪽 길은 남쪽 길보다 시간이 더 걸린다.

퇴근 때마다 실시간 교통 정보를 보면서 그날 경로를 선택하는데 
북쪽 길이 20~30분 더 걸린다면 당연히 남쪽 길을 택하겠지만 
10분 정도 차이가 나게 되면 고민할 수밖에 없다. 
시간 단축이냐, 편안한 운전이냐. 고민할 만하지 않은가. 
시간 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다면 운전하기 편한 북쪽 길을 선택하는 편이다.

인생은 수많은 갈림길에서 한 길을 선택해 가는 일의 반복이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동경과 후회는 누구나 하는 것이다. 
병 치료도 마찬가지다. 의학이 덜 발달했던 시절에는 치료법 선택도 간단했다. 
선택 여지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학이 발달할수록 여러 가지 새로운 치료법이 나오고 선택 여지가 많아지면서 의사와 환자의 고민도 깊어진다.

십 수년 전 학연도 지연도 없는 의사들을 인터넷 공간에서 만났다. 
오프라인에서도 얼굴을 보게 되었고 서로 마음도 잘 맞아 아직까지 친분을 이어오고 있다. 
그 가운데 종합병원에서 일하는 한 여의사는 얼마 전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모임 멤버 중 나이도 젊은 축에 속하고 항상 긍정적이며 모임에 열성적인 사람이었기에 놀라움이 컸다. 
이분이 치료 방법을 일반적인 경우와 좀 다른 길로 간다고 했다. 
보통은 수술 후 항암 치료를 하는데 먼저 항암 치료를 받고 나중에 수술을 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런 방법은 예전보다 점점 늘어나는 추세로 표준 치료에 속한다. 
아마도 치료 방법을 결정하는 데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이다. 
의사라서 치료 방법을 선택하기 쉬울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다. 
이 말에 솔깃해지고 저 말에 마음이 흔들리기는 의사도 마찬가지다.

최근 면역 항암제가 각광을 받고 있다. 
가망이 없어 보이는 폐암 환자에게 투여해서 아주 좋은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이 치료를 받으려고 기존 항암 요법을 연기하는 사람들까지 생기고 있다고 한다. 
완치라는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한 새 길이 나타난 것이다. 하지만 이 길은 가 본 사람이 많지 않다. 
갈 수 있는 사람도 제한적이다. 새 길로 가려고 기다리다가 치료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 
새 길이 좋아보일지 몰라도 익숙한 길로 가는 것이 별 차이 나지 않는다면 익숙한 길을 선택하는 것이 정답일 수도 있다. 
항암 치료 때문에 머리카락이 빠져버린 그 의사 사진을 보며, 암과 싸워 완승하기를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