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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산책] 칭찬받고 추는 춤, 좋아해서 추는 춤

바람아님 2016. 6. 29. 10:01

(출처-조선일보 2016.06.29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

삶의 대부분을 쏟는 일과 공부를 월급과 진학 위한 수단으로 보면 인생 전체가 일이 돼 버려
행위가 보상만을 바라게 되면 즐거움 사라지는 게 '과잉보상'… 칭찬만 바라면 고래의 춤 오래 못가

서은국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여름의 공식 신호탄, 장마가 시작된 것 같다. 
비는 좀 와도 방학과 휴가의 계절 여름은 많은 사람이 기다려온 시간이다. 
특히 전 세계에서 가장 무섭게 공부하는 한국의 학생들과 OECD 국가 중 가장 많은 근로 시간을 
회사에 바치는 한국의 직장인들. 이들은 여름을 즐길 자격과 권리가 충분히 있는 사람들이다. 
바다와 산에 모든 스트레스를 묻고 오시길.

휴가는 그러나 인생의 디저트 같은 시간이다. 
이런 일탈의 시간은 삶의 활력을 주지만, 인생의 주식(主食)이 되는 시간은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상이다. 
이 평범한 시간을 통해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중요하다. 
행복한 사람은 때마다 짜릿한 휴가를 다녀오는 사람이 아니다.
늘 마주하는 일상과 사람들 속에서 재미와 즐거움을 경험하는 사람이 행복하다
그런데 많은 한국인은 일상의 시간이 별로 즐겁지 않다고 말한다. 
몇 해 전 한국심리학회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이 하루 중 행복감을 가장 적게 느끼는 때가 바로 학교와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이라고 한다. 
심지어 직장인이 귀신보다 무서워하는 게 일요일 저녁 시간이라는 우스개도 있다.

직장과 학교. 우리 삶의 대부분을 쏟는 곳인데, 왜 이곳에서의 시간이 유난히도 즐겁지 못할까? 
여러 이유가 있겠으나, 그중 하나는 일과 공부에 대한 우리의 태도다. 
일과 학업을 오직 차후의 어떤 보상(대학 진학, 월급)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여기면 그 안의 즐거움은 마르게 된다. 
가령, 어느 날 우연히 뒷산에 사는 백로 한 쌍을 발견했다고 하자. 오가며 이 녀석들을 구경하는 쏠쏠한 재미가 생겼는데, 
어떤 신사가 와서 희한한 제안을 한다. 앞으로 백로를 30분씩 볼 때마다 1만원씩을 주겠다고 한다. 
처음엔 이게 무슨 횡재인가 싶지만, 오묘한 변화가 인간의 마음에 일어난다. 
재미있던 백로 구경이 돈을 얻기 위한 일처럼 느껴지기 시작하고, 결국 처음의 재미는 흔적 없이 사라진다.

이처럼 어떤 행위가 보상을 얻기 위한 수단이 되면 그 속의 즐거움은 사라지기 시작하는데
심리학에서는 이 현상을 과잉보상(over-justification)이라고 한다. 
칭찬을 받기 위해 춤추는 고래는 오래 춤추지 않는다. 
이렇게 수단화된 행위에서 즐거움이 떠나가는 모습은 많은 인생에서 볼 수 있다.

농구 하면 많은 사람이 마이클 조던을 떠올리지만, 
일부 스포츠 평론가는 1950~1960년대에 활약했던 빌 러셀(Bill Russell)을 더 위대한 선수로 꼽는다. 
그는 농구 무명이었던 모교 샌프란시스코 대학에 두 번의 전국대회 우승을 안겨 주었고, 
프로 전향 후 보스턴 셀틱스의 황금기를 이끈 주역이었다. 
그러나 이 농구 전설의 자서전을 보면 이런 회고가 있다. 
가난한 어린 시절부터 농구는 그에게 큰 행복을 주었는데, 이 즐거움이 대학 2학년 때부터 서서히 사라졌다고 한다. 
이 시점은 수많은 프로구단 스카우트들이 일약 스타로 떠오른 러셀의 잠재력을 평가하기 위해 코트에 몰려들기 시작한 때다. 
그러자 러셀은 일거수일투족이 자신의 프로 진출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지 신경 쓰기 시작했고, 
농구는 그에게 더 이상 재미있는 운동이 아닌 일이 되었다고 한다. 
이 인생의 변곡점을 그는 이렇게 표현한다. "농구가 오랫동안 내게 주었던 선물, '매직'이 사라졌다"고.

오직 재미 하나를 위해 등교나 출근을 하는 사람은 없다. 일상 속에서 누구나 현실의 그림을 그린다. 
그러나 일이든 공부든, 그것을 오직 구체적인 결과물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인생 전체가 '일'이 되어 버린다. 
매직이 모두 말라버리고 오직 현실만 남아 있는 삶. 
그건 행복이 찾아 들어오기엔 너무 높은 문턱이다.




서은국 교수의  [행복산책] 목차


돈의 함정(조선일보 2016.12.12)

마음의 벽, 조금만 낮춘다면(조선일보 2016.10.31)

주고, 받고, 갚는 인생(조선일보 2016.09.19)

금메달의 기쁨? 석 달이면 녹는 아이스크림(조선일보 2016.08.1)

칭찬받고 추는 춤, 좋아해서 추는 춤(조선일보2016.06.29)

결혼은 행복, 이혼은 불행?(조선일보2016.05.16)

'배부른 돼지'에게도 잔치는 필요하다(조선일보 2016. 04. 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