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09.11.20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우리 조상들의 키가 어느 정도였는지 알 수 있을까? 이런 물음에 대한 답은 결국 어떤 사료를 개발하느냐에 달려 있다. 콤로스(J. Komlos)라는 독일의 경제사 연구자는 1666년부터 1760년까지 프랑스의 징병 기록을 분석해서 당시 사람들의 키에 대한 흥미로운 결과를 얻어냈다.
모두 3만8700건에 달하는 방대한 양의 징병자료에는 장정(壯丁)의 입영 날짜와 중대 이름 외에도 출생일, 본인의 직업, 때로는 아버지의 직업과 함께 키가 적혀 있다.
이 기록에서 알 수 있는 첫 번째 놀라운 사실은 17세기 후반에 프랑스 남자들의 키가 평균 161.7cm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이 수치는 이후 시대에 두 번 다시 볼 수 없는 최저치이다. 그만큼 17세기 후반에 흉작과 기근이 심각했음을 알 수 있다. 반대로 1694년의 대흉작을 고비로 해서 농업 상황이 개선되자 12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에 평균 키가 3.8cm나 커져서 165.5cm가 되었다. 이후 시기에도 농업 사정에 따라 평균 신장은 약간의 등락을 거듭하여 1740년에 최대치 167.8cm를 기록하고는 다시 약간 감소하여 1760년에 164.9cm가 되었다.
과거에 사람들이 잘 먹으면 키가 커지고 못 먹으면 작아졌다는 것이 단순한 추측이 아니라 이처럼 사료를 통해 입증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키 관련 수치와 곡물 가격 변동 자료를 비교해 보니 곡가가 크게 오르고 나서 5년 후부터 장정들의 키가 작아진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람들의 키가 식량 사정에 따라 이런 정도로 민감하게 변화한다는 점은 정말로 놀라운 일이다.
빵장수나 푸주한처럼 음식과 관련이 있는 직업의 사람들이 다른 직종 사람들에 비해 평균 0.7cm 큰 점도 흥미롭다. 이들은 어릴 때부터 남들보다 최소한 밥은 잘 먹고 자라지 않았을까?
19세기에 문자 해독이 가능한 사람들(그러므로 대개 중상층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1.2cm 크다는 다른 연구 결과를 보아도 사람의 키는 사회적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중·장년층에 비해 청소년의 키가 전반적으로 큰 것 역시 그동안의 경제 성장을 반영한 결과일 것이다. 요즘 학교에서는 기골이 장대한 육척 거구의 학생들을 심심찮게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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