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매년 1월이면 미국 라스베이거스 전자산업박람회(CES)에 참석하기 위해 약 1주일 정도 출장길에 오른다. 지난 1월에 참가한 CES 역시 1년 사이에 기술 발전의 속도를 실감할 수 있었다. 2016년 전시장을 가득 채웠던 드론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빈 공간을 4차 산업혁명을 대표하는 인공지능(AI)과 자율주행 관련 기술들이 빼곡하게 채웠다.
IBM이 개발하고 있는 인공지능 왓슨과 아마존이 출시한 개인용 비서 알렉사를 지켜보면서, 필자는 과연 어떤 한국 기업이 이들과 경쟁할 수 있을지를 해답을 찾기 어려웠다. 그리고 돌아오던 비행기 안에서는 정보기술(IT)과 정보산업의 세계적 강자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녔던 한국 경제라는 거대한 선박이 급속도로 침몰하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런데 필자를 더욱 안타깝게 만드는 일은 매일같이 언론을 도배하는 대선 주자들의 행보와 대한민국 국회다.
2000년대 초부터 미국을 비롯한 외국에서는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기 위해 의회와 행정부가 호흡이 잘 맞는 투수와 포수처럼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의회는 관련 법령을 보완해서 해당 분야에 창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경쟁하고 있고, 행정부는 해당 분야에 자금 흐름이 원활하도록 만들기 위한 육성 정책을 실행하고 있다.
한국은 지난 10여 년 동안 관련 법안들이 국회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제19대 국회에서 원활한 신규 산업 출현을 위해 준비했던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대통령이 공개 석상에서 법안 통과를 요청했지만, 야당은 의료 산업화, 의료 영리화의 길을 열어준다는 명분을 앞세워 반대했다. 그로 인해 4차 산업혁명에서 중요한 성장동력 중 하나인 원격 의료산업, AI 기반의 전자·통신·헬스케어 사업들은 손발이 묶였다. 스마트폰 앱으로 승객과 차량을 연결해주는 공유 경제 서비스인 우버(Uber)는 물론, 정부가 규제 프리존을 통해 4차 산업혁명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던 관련 법안 역시 19대 국회에서 빛도 보지 못한 채 사라졌다.
그런데 불과 지난 한 달 새 대선 주자들이 하나같이 자신만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가장 적합한 대통령감이라면서 각종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심지어 상대 후보는 4차 산업혁명 비전문가라는 비방과 경쟁 정당의 4차 산업혁명 정책은 실익이 없다고 깎아내리기에 바쁘다. 현실은 여야 없이 지혜를 모아도 앞선 나라들을 따라잡기가 쉽지 않은데, 이런 상황을 지켜보는 필자는 안타까움을 금할 길 없다.
대선 주자들이 ‘4차 산업혁명’을 위해 정말로 싸워야 하는 전쟁터는 국회다. 대선 후보들이 진정으로 4차 산업혁명을 갈망한다면, 구호와 정책들을 남발하기 이전에 국회가 지금 당장이라도 할 수 있는 일들을 고민해야 한다. 우리가 소모적인 정쟁을 벌이는 사이에 법령과 제도가 고속도로처럼 정비된 외국에서는 IBM, 아마존, 구글 같은 기업들이 활개 치며 날고 있다. 이들을 따라잡기 위해서는 이념이나 정파를 초월하여, 과거 중후장대한 제조업에 기반한 낡은 규제들을 과감하게 뜯어고쳐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을 위해서는 반드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사업 영역을 개척하기 위한 창업이 필수적이다. 국회의원은 기업가가 아니라, 기업가의 창업에 필요한 법안이라는 날개를 달아주는 사람임을 명심해야 한다. 대선 후보들이 마음만 먹으면 이번 임시국회에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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