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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칼럼 The Column] 새 지도자의 최우선 책무는 安保다

바람아님 2017. 5. 10. 09:23
조선일보 2017.05.09. 03:17

지지받은 이유 제각각이어도 대통령 최고 업무는 국가 안보
이 땅에서 누리는 평화와 자유 굳건히 지켜나갈 새 지도자는
韓·美 관계 신뢰 바탕 위에서 우리 도울 국제 네트워크 짜야
김태효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국민은 오늘 19대 대통령을 새로 뽑는다. 5월 4일부터 이틀간 진행된 사전투표에서 26.06%의 투표율을 보일 만큼 이번 대선 열기는 뜨겁다. 나라의 경제는 잠시 흔들릴 수 있지만 안보와 북한문제는 잠깐의 패착으로 돌이키기 힘든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파 유권자들은 선택을 고심해 왔다.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자유한국당(새누리당)은 물론 과거에 이들을 지지한 사람들조차 타도해야 할 적폐(積弊) 세력으로 몰리면서 우파 세력은 절대적으로 불리한 정치 지형에서 선거를 맞이했다.


일명 '국정 농단' 세력을 두둔하면 우스운 사람이 돼 버리는 사회 분위기에서 대중성과 호소력을 갖춘 확실한 우파 후보마저 고갈된 터라 대안도 해답도 보이지 않는 선거가 코앞에 닥친 것이다. 반대로 좌파 진영은 자신에게 유리하게 형성된 절호의 기회에서 9년 우파 집권기를 끝내고 정권 교체를 이루는 것을 한국 정치의 선진화로 규정하는 프레임을 짜고 나왔다. 이번 대선은 누구를 선택하기보다는 누구를 뽑지 않기 위한 선거가 되었다.


5월 5일에 모든 대선 후보들은 어린이를 감싸 안고 포즈를 취했지만 낯설어하는 어린이들의 시큰둥한 표정과 정치인들의 친절한 웃음이 어색하게 교차한 모습이었다. 국민 각자가 지지하는 후보에게 바라는 소망이 있을진대 정작 대통령으로 뽑힌 사람은 그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것이다. 아니,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누가 되든 우리의 새 지도자는 국민의 다양한 요구에 부응할 능력과 정치적 조건을 갖추지 못할 것이다.


국회 의석의 과반수를 차지하는 정당 없이 여야가 거의 모든 쟁점에 이견을 보이는 상황에서재적수 3분의 2 이상의 동의가 필요한 국회선진화법의 문턱을 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대통령 후보들의 공약 대부분은 공무원을 더 뽑고, 세금을 더 쓰고, 민간 영역에 더 간섭해서 무엇을 하겠다는 약속들이다. 시대가 바뀌면 없애거나 줄여야 할 부처가 생기고, 만들고 집중해야 할 일이 생기건만 기존의 이미 비대한 공적 조직의 거품을 뺄 방책과 용기가 보이지 않는다. 쉽게 세수(稅收)를 올리자니 유리지갑 봉급자들의 소득세만 계속 오르고, 기업의 법인세를 올리자니 이미 해외로 빠져나가는 공장과 일자리의 수만 늘어날 판이다.

5일 오후 서울역에 마련된 제19대 대통령선거 남영동 사전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를 하고 있다. /뉴시스

영국 출신 사회학자 브라이언 터너(Bryan Turner)는 평등 개념을 세 가지로 나눈다. 농어촌 자녀에게 장학금을 주고 저소득층에 혜택을 베푸는 것은 경쟁에 앞서 출발 조건을 조정해 주는 조건의 평등(equality of condition)에 해당한다. 모든 대학생의 등록금을 깎아주고 비정규직을 일괄적으로 정규직화해 주는 것은 노력과 경쟁의 과정을 무시하는 결과의 평등(equality of outcome) 조치다. 이러한 평등 정책은 사정에 따라 꼭 필요하기는 하지만 여기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능력과 노력에 따라 평가받는 기회의 평등(equality of opportunity)이 침해받아 사회의 성장 잠재력이 위축된다.


제각기 다른 이유로 지지를 받아 당선된 지도자가 정작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분야가 국가 안보다. 사드 배치 문제를 국회에서 토론한들 결론이 나겠는가. 대부분의 안보 사안은 야당의 반대가 있더라도 의회의 입법 절차 없이 행정부 권한 사항으로 결정된다. 청와대 정책 참모 숫자는 7~8개 주제별로 고루 분포되지만 일을 하다 보면 대통령 업무의 70% 이상은 안보와 외교 현안이다. 그만큼 한국은 대외 관계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나라의 존립 기반이 튼튼해야 경제도 살고 국제사회에서의 입지도 넓어진다. 남북통일에 대한 비전 없이, 북한 정권의 남한 흔들기에 대한 경각심 없이 무조건 외교의 주도권만 외칠 일이 아니다.


국제사회는 프랑스에 이어 한국의 새로운 대통령에 커다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당장 내일부터 업무에 들어갈 대통령은 한·미 관계의 미래에 대한 확고한 신뢰부터 구축해야 한다. '자주적으로' 무엇을 하겠다는 막연한 민족주의 구호 대신 '글로벌' 가치와 원칙에 맞게 국제사회와 힘을 모아 문제를 풀겠다는 입장을 천명해야 한다. 궁극적인 전략 목표 자체가 우리와 다른 북한과 중국을 감싸기 이전에 한국의 입장을 최대한 끌어낼 수 있는 명분과 네트워크를 다져야 한다. 이제까지 선거를 도왔던 참모들의 논공행상을 챙기기보다는 각방(各方)의 경험 많고 유능한 인재에 마음을 열어야 한다. 


만에 하나 새 리더십이 보편 타당한 상식을 거스르는 고정관념과 아집에 집착한다면 국민은 지금 당연한 듯 숨 쉬고 누리는 평화와 자유가 얼마나 큰 땀과 노력의 산물인지 뒤늦게 통감하고 후회하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