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7.05.13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실업난 극복한 네덜란드 '사회적 대타협'의 바탕엔 캘빈주의 세계관 깔려 있어
일자리 늘리기 단기 처방보다 정부는 멀리 내다보는 자세로 양보·타협 시민합의 도출을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가장 먼저 한 일이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 설치다.
대통령 자신이 위원장을 맡아 청와대 집무실에 현황판을 놓고 직접 진두지휘하겠다고 할 정도로
고용 확대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선거 전에 나온 대담집 '대한민국이 묻는다'에서도 문 대통령은 이미 이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수많은 젊은이가 쪽방에서 자고 컵밥을 먹으면서 공무원 시험에 매달리지만, 웬만한 시험은 경쟁률이
200~300대1에 달해 공무원이 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다. 사정이 급하니 정부가 공무원을 더 고용할
여력이 있는 만큼 공공 부문 일자리를 늘려서라도 이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이 아이디어를 구체화한 정책 발표 내용을 보면 공공 부문 일자리 81만개, 또 이를 마중물로 삼아 민간 부문에서 일자리
50만개를 만들겠다고 한다.
모두 131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이 정책을 '21세기 한국형 일자리 뉴딜'이라고 명명했다.
과연 이것이 좋은 방안이라 할 수 있으며, 또 무리 없이 잘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가?
극심한 실업 문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한 네덜란드 사례를 보면 일자리 늘리기가 정부 주도만으로 되는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네덜란드는 1980년대 중반까지 '선진 자본주의 세계에서 가장 심각한 고용 실패 사례'로 비판받았다.
그러나 그로부터 10년 뒤 극적인 사회 대타협을 통해 성장과 고용 확대, 물가 안정을 동시에 달성한 '기적'을 이룬 나라로
변모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성장률은 바닥을 기고 실업률은 치솟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여 정부·노조·기업이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아낸 것이 기적을 만들어낸 원동력이었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무엇보다 산업 수익률이 개선되지 않으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데 공감한 노조가 임금 인상 주장을 자제하고,
이에 호응하여 기업은 노동 시간 단축과 고용 확대에 최대한 노력하기로 동의했고, 마지막으로 정부가 이런 노력을
기울이는 기업에 세제 혜택을 주기로 한 것이 주효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타협이 가능했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었다.
'기적'의 배경에는 수백년 전해 내려오는 역사·문화적 요인이 있었다.
네덜란드는 다른 유럽 국가와 마찬가지로 세속화된 국가이지만
사회·문화적으로는 캘빈주의(Calvinism)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다.
캘빈에 따르면 인간은 하느님이 부여한 소명(召命)을 수행하며 살아가는 존재다.
네덜란드인들은 자기 일을 철두철미하게 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데, 단지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게 아니라
직업에 자신의 존재 의의를 구현하는 준(準)종교적 의미를 부여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실업은 단지 가난하게 사는 것을 넘어 삶의 의미를 잃은 심각한 비극적 상태다.
이 세상에서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수행하며 하느님의 뜻을 구현하는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면 나만이 아니라 동료들 역시 그런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마을에 굶는 사람이 있도록 방치한다는 것은
치명적인 죄다. 임금 상승을 양보하면서 동료들의 고용 확대에 합의한 것은 이와 같은 생각에 공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요인들이 있다고 일이 저절로 풀리는 것은 아니다.
그 공감대가 실제 작동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네덜란드 노사는 충돌이 벌어졌다가 다시 극적인 타협을 이루어내는 우여곡절을 여러 차례 겪으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난관에 봉착할 때마다 정부도 끈질기게 기업과 노조를 만나 타협을 촉구하여 기적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 점에서도 다시 이 나라의 실제적인 심성과 대화의 문화를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다.
다루어야 할 문제가 임금과 일자리라면 그 문제에 집중하여 논의하고 차이를 좁혀가야지, 걸핏하면 감정 싸움으로 치닫고
느닷없이 이데올로기가 개입되어 극단으로 충돌하면 타협이 불가능하다.
우리에게는 서로 조금씩 양보해서 공동체 전체가 잘사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에 합의할 수 있는 문화나 철학이 있을까?
감정 싸움이나 이데올로기에 휘둘리지 않고 냉철하게 논의하는 게 가능할까?
결코 쉽지 않아 보이지만 이제는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최대한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그것을 유도할 수 있는 주체는 암만해도 정부다.
현재 추진하는 방안대로 공적 자금을 써서 공무원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당장 생각하기에 쉬운 길이지만,
자칫 그리스처럼 두고두고 골칫덩이를 껴안게 될 위험이 있다.
어렵더라도 노사 양측이 마음을 열어 타협을 이루어내는 게 중요하다.
결국은 그런 기반 위에서 경제가 성장하고 기업이 자연스럽게 고용을 확대하도록 만드는 것이 정도(正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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