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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로] 33명 중 한 명도 없었던 '노(No) 맨'

바람아님 2017. 7. 23. 09:26
조선일보 2017.07.22. 03:10

原電과 인사 둘러싼 잇단 혼란.. 주변서 이의 제기 없었기 때문
최고권력자에게 "No!" 어렵지만 대통령 주변 '직언할 의무' 있어
정녹용 논설위원

신고리 5·6호기 공사 일시 중단 결정을 내린 지난달 27일 국무회의 분위기가 궁금해 참석자들에게 물어봤다. 한 장관은 "그 문제는 심의·의결 안건이 아니라 부처 보고 사안이었다. 특별히 반대 발언은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 다른 장관은 "탈(脫)원전이 정부 방향이어서 참석자들이 심도 있고 활발하게 토론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고 전했다. 한 차관급 참석자도 "공사 중단 문제를 두고 논쟁은 없었다"고 했다.


요약 공개된 회의록에 따르면 이날 회의에는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국무총리, 장관 17명이 참석했다.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 등 배석자도 15명이었다. 몇 사람 발언이 있은 뒤 문 대통령이 "일단 공사는 중단하자"고 했다. 문 대통령을 빼고 33명이나 되는 참석자 중에 아무도 이견을 내지 않았다. 에너지 백년대계 사안은 20분 만에 그렇게 결정됐다. 문 대통령이 취임 후 처음 주재한 국무회의였다. 문 대통령은 이날 회의 모두발언에서 "대통령 의견에 대해 언제든지 이의를 말씀해 주시기 바란다"고 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또 다른 장면도 떠올랐다. 문 대통령이 첫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를 주재한 자리다. 문 대통령은 "대통령 지시에 이견을 제기하는 것은 의무"라고 했다. "받아쓰기 필요 없다"고도 했다. 박근혜 정부와는 다르다고 말하고 싶은 듯했다. 하지만 참모들이 과연 그 '의무'를 다하고 있는가. 당장 인사 문제 하나만 봐도 고개를 젓게 된다.


2013년 박근혜 정부 초대 국방장관 후보자 김병관은 무기 중개업체 고문으로 2억원 자문료를 받은 것 등이 문제 돼 지명 38일 만에 낙마했다. 당시 국회 국방위원이었던 민주통합당 진성준 의원은 "무기 중개업체 고문으로 거액 자문료를 수수했다는 것만으로도 국방을 책임지기에는 부족하다"고 했었다. 그는 지금 청와대 정무기획비서관이다. 송영무 국방장관의 거액 자문료 논란이 한창일 때 청와대 참모들이 이런 직언을 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자진 사퇴한 조대엽 전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를 임명할 때 청와대는 "음주 운전 문제를 파악했다"고 공개했다. 검증 과정에서 허물을 알고도 누구 하나 '노(No)' 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두 사람은 대선 캠프에 참여하는 등 문 대통령과 인연을 맺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문제가 있어도 '대통령 사람'이라 직언을 못 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대통령 사람'인 탁현민 행정관을 경질하라고 야당뿐 아니라 여당, 여성단체, 여성가족부 장관까지 요구했지만 청와대 참모들 목소리는 찾기 어려웠다.


문 대통령은 일찍이 '노 맨'의 중요성을 강조했었다. 노무현 정부 최대 인사 실패 사례로 임명 사흘 만에 낙마한 이기준 교육부총리 사례를 들면서다. 당시 청와대는 검증 과정에서 허물을 확인하고도 부적격 사유라고 판단하지 않았다고 했다. 시민사회수석이었던 문 대통령은 책 '운명'에서 "하필 그 결정을 하는 인사추천회의에 내가 빠졌다. 참석했으면 반대했을 것"이라고 적었다. 노무현 정부 청와대 고위직을 지낸 인사는 이런 사례를 들려줬다. "노 대통령도 집권 초기 탈원전 생각을 갖고 있었다. 지속가능발전위원회가 원전 축소 안을 내기도 했다. 그러나 정책 참모들이 '지금 원전을 줄일 상황이 아니다'는 의견을 지속적으로 내자 마음을 돌렸다." 노무현 정부 때 원전 4기의 건설이 승인됐다.


최고 권력자에게 쓴소리하기는 쉽지 않다. 한 전직 청와대 수석은 보좌했던 대통령이 당선인일 때는 맞담배를 피울 수 있었는데 대통령 되고 한 달 만에 담배를 꺼낼 생각을 못 했다고 한다. 대통령 자리의 권위가 그렇다. 하지만 그게 어렵다고 해서 대통령 주변 사람들이 '직언할 의무'를 피해버리면 답이 없다. '정관의 치세'로 유명한 당(唐) 태종의 신하 위징은 늘 목숨을 내놓고 간언했다. '노 맨' 없이 '예스(Yes) 맨'만 있을 때 어떻게 될지는 굳이 전 정부 사례를 들 필요도 없다. 욕하면서 닮아가지 않으려면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