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걸음 걸을 때마다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는 이 말은 한옥과 한국 예술에서 자주 접하는 테마다. 한국가구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이를 처음 느꼈다. 대문을 열고 앞마당에 들어서면 박물관의 일부만 보인다. 한 걸음씩 들어가면 그제야 숨겨진 정원이나 방이 모습을 드러낸다. 미국을 포함해 많은 나라에서 집은 한눈에 전경이 보이도록 설계된다. 아마도 집주인의 재물이나 권력을 자랑하고 집의 규모로 방문자를 압도하려는 뜻일 게다. 한옥은 일부러 숨긴다. 손님은 단번에 기세에 눌리는 일 없이 지금 보이는 장면부터 천천히 구석구석 깊이 감상할 수 있다.
대학 입시와 장래 직업을 고민하는 청소년들에게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을 최근 받았다. 강의 준비를 하면서 일보일경이 우리 인생에도 적용된다는 걸 알게 됐다. 우리의 인생과 커리어도 매우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그 모습을 드러낸다. 미국에서는 대학 입시를 준비할 때, 인생 전체를 통해 이뤄야 할 일이나 평생 직업을 강조한다. 전공 학문이나 직업 선택이 마치 여생의 전부를 결정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10년 계획을 세우라’는 둥, 진짜 인생 여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인생 최종 목적지를 알아내라는 압박을 받는다. 물론 그렇게 계획을 세우는 일이 도움은 될 것이다. 일보일경을 안 뒤에 나는 2, 3년 치 계획만 세우고 최종 목적지는 몰라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조만간 눈에 들어올 인생 풍경을 향해 설레는 가슴과 기쁜 마음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갈 수 있으니 말이다.
마크 테토 미국인·JTBC ‘비정상회담’ 출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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