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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보식 칼럼] '죽은 것도 아니고 산 것도 아닌' 보수당

바람아님 2017. 8. 11. 07:47

(조선일보 2017.08.11 최보식 선임기자)


뒤처진 구닥다리로 세상의 외면 받아도 보수당은 지금 안온하다 

다음 총선 멀었으니 소속 의원 밥그릇은 그때까지 지켜질 것이다


최보식 선임기자'공관병 갑질 논란'이 터졌을 때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군 개혁을 명분으로 좌파 단체가 

중심이 된 고발 사건이 난무하면서 군 장성을 여론몰이로 내쫓고 있다"고 말했다. 

이 상황에서 '좌파 단체'를 찍어내는 그의 정치적 감각이 놀랍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지난 대선 때부터 고장 난 레코드판 돌아가듯 '안보(安保)'를 입에 달고 살았던 

그가 이런 고질적 인권 문제가 군(軍)을 내부에서 무너뜨린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다수 병사들이 겪어온 비인간적 처사에 그는 분개하기보다 한 4성(星) 장군의 비행이 드러난 게 

더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 뒤 홍 대표는 현 정부의 안보 정책을 비판하기 위해 예비역 장성들을 만나는 소위 

'안보 행보'라는 걸 했다. 아마 보수 정당은 50만명의 병사들과 그 부모 유권자들의 마음은 얻지 못할 게 틀림없다.


보수의 관점에서 보면 지금 문재인 대통령이 벌이고 있는 국사(國事)마다 실로 위태롭기 짝이 없다. 

하지만 보수 정당이 이를 목 놓아 비판해도 세상 사람들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간신히 겨우 들렸다 해도 "웃기는 수작들, 너희 하는 짓보다는 몇 배 낫다"라고 세상은 반응한다. 상대를 비판하려면 

자신이 그런 비판을 할 자격을 갖췄는지 돌아봐야 한다. 같은 말을 해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보수는 이미 박근혜 전 대통령에 의해 치명상을 입었다. 

이어 등장한 홍 대표도 세상 사람들에게 '보수의 수준이 딱 이렇다'는 걸 보여주고 있다. 

개인의 자유와 책임을 존중하고, 공동체에 대한 헌신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좌파가 말로만 떠들 때 

자신이야말로 진정 이 나라를 발전시키고 지켜 왔다는 보수의 자부심은 간데없어졌다.


사전(辭典)에 나오는 민주·정의·인권·소통 등 멋있는 단어들은 이미 진보에 모두 빼앗겼다. 

아마 길가는 대학생에게 '보수에 대한 생각은?'이라고 물으면 

"부패·타락·갑질·무능"이라고 줄줄 나열하다가 잠깐 뜸을 들인 뒤 "불의와 결탁해 더 갖겠다는 탐욕스러운 기득권이고 

한마디로 적폐 세력"이라고 답할지 모른다. 물론 좌파 진영에서 오랫동안 그런 식으로 덮어씌운 측면이 없지 않고, 

좌파의 본색(本色)도 이보다 나을 것은 없다. 

하지만 좌파를 핑계 삼아 보수가 자신의 오욕(汚辱)을 감쌀 순 없는 법이다.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가 터졌을 때 작가 이문열은 

"보수여 죽어라, 죽기 전에… 새롭게 태어나 힘들게 자라라"고 썼다가 보수 진영으로부터 욕을 먹고 난리가 났다. 

사실은 그때 보수는 자신의 환부(患部)를 드러내고 살을 찢고 뼈를 잘라냈어야 했다. 

스스로 자신을 먼저 죽이면서 다시 살아났어야 했다. 마땅히 거쳐야 할 죽음의 통과의례를 거치지 않음으로써 

그 죽음의 중지(中止)로 인해 보수 정당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채로 남아 있다. 

당 간판은 달고 있어도 세상에 그 당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


시대에 뒤처진 구닥다리라고 세상의 외면을 받아도 보수 정당은 지금 안온하다. 

보수의 가치에 대한 고민도 없고, 보수를 대변한다는 사명감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다음 총선은 3년쯤 남았으니 소속 의원들의 밥그릇은 그때까지 지켜질 것이다. 

그래서인지 당내에서는 아무도 "보수당을 살리려면 비상한 결단이 필요하다"고 떠들어대지 않는다. 

소장 쇄신파니 초·재선 의원 혁신 모임이 결성되는 것 같지도 않다. 

'세대교체론'을 들고 나오는 신진의 패기(覇氣)도 없다. 

안에서 살아보겠다고 으쌰으쌰 하는 기운과 열정이 없으면 천하의 화타(華佗)가 와도 구할 수 없다.


보수가 지키려는 것은 과거의 모든 가치나 관습도 아니고 기득권은 더욱 아니다. 

'보수주의'를 탄생시킨 18세기 영국의 에드먼드 버크는 정치판에 뛰어들어 기득권 체제에 맞섰던 인물이다. 

그 시절에 당연시됐던 노예무역, 국왕의 과도한 정치 간섭, 정부 권력 남용, 귀족의 특권 등과 그는 싸웠다. 

도버해협 건너 프랑스에서 혁명(革命)이 불붙기 전까지 그는 '개혁주의자'라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그는 '프랑스혁명'에는 반대했다. 그 혁명의 불길이 영국으로 번져오는 것을 경계했다. 혁명이 일어나 인간의 

통제 안 되는 열망과 무질서한 욕구가 사회를 훨씬 더 나쁜 야만(野蠻)의 상황으로 몰고 갈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런 혁명을 막으려면 자신이 속한 기존 체제에 대한 개혁을 끊임없이 할 수밖에 없다. 

이게 버크가 천명한 '보수주의'다. 

보수 정당이 보수의 가치를 지키려면 이런 내적 비판과 반성·책임·희생이 따르는 것이다.


금 보수 정당에는 영혼과 가치는 다 빠져나갔다. 

남은 것은 허세스러운 입뿐이다. 

과거에는 좌파가 실력 없이 말만 떠들어댄다고 했지만, 요즘 보수 정당이 하는 꼴은 더 목불인견이다. 

보수의 체면과 품격도 없고 심지어 치졸하기까지 하다. 

이렇게 보수가 허물어지니 문재인 정부의 거의 '혁명' 같은 공세에도 속수무책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