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時事·常識

[배연국의 행복한 세상] 행복은 발견하는 것

바람아님 2017. 11. 23. 08:21
세계일보 2017.11.22. 08:35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마음으로 느끼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값진 보석도 내가 쓸모없다고 여기면 한낱 돌덩이일 뿐이다. 옛날 서양인이 건넨 다이아몬드를 인디언이 땅바닥에 버렸듯이 말이다. 송나라의 주희는 "마음이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세상에 일어난 객관적인 현상도 내가 인식하지 않으면 발생하지 않은 것이나 다를 바 없다는 얘기다. 삶은 그 자체로 좋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반응해야 비로소 좋은 것이 된다.


명나라 왕양명 역시 "사물의 모든 이치는 마음안에 있다"고 말했다. 우주의 모든 일은 자기 자신 안의 일이고, 마음을 떠나서는 사물의 이치는 없고 물상(物象)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그를 향해 한 지인이 꽃나무를 가리키며 물었다. "천하에 마음 밖에 사물이 없다지만 이 꽃나무는 깊은 산속에서 홀로 피었다가 지는데 당신 마음과 무슨 상관이 있소?" 왕양명이 대답했다. "당신이 이 꽃을 보기 전에는, 이 꽃은 당신처럼 외롭게 존재하지요. 하지만 이 꽃을 바라보는 순간 비로소 꽃의 빛깔이 선명해지니 이 꽃이 당신의 마음 밖에 있지 않습니다."


왕양명의 말은 시인 김춘수의 `꽃`을 떠올리게 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내게로 와 꽃이 되었다." 무엇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원래 실체가 있어서라기보다는 우리가 마음으로 느끼고 인지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행복이란 기쁜 일에서 생기는 감정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그것이 행복이라면 인간은 행복한 존재가 되기 어렵다. 왜냐하면 인생에서 기쁜 일보다 무덤덤한 일상이나 나쁜 일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행복은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 자체 보다는 그것을 대하는 마음 자세와 더 관련이 깊다. 그러니 오늘 하루 로또와 같은 행운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무탈하게 보낸 것에 감사하자. 설혹 안 좋은 일이 생겼을지라도 이만한 게 천만다행으로 여길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자세로 감사를 느끼는 사람이라면 세상 모든 일이 행복이다. 행복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다.


배연국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