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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457] 정현과 애시

바람아님 2018. 2. 7. 08:50
조선일보 2018.02.06. 03:11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

우리 정현 선수가 호주오픈에서 4강까지 오르며 신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해외 언론은 페더러, 나달, 조코비치 트리오가 독점적으로 군림했던 시대가 저물며 새롭게 떠오를 강자로 정현을 꼽는 데 머뭇거리지 않는다.

테니스 전문가는 아니지만 오랫동안 메이저 대회를 열심히 관람해온 열혈 팬으로서 나 역시 그가 머지않아 권좌에 오르리라는 예측에 한 표를 보탠다.


이번에 조코비치가 그랬듯이 세 노장은 앞으로 점점 더 자주 부상에 시달릴 것이며 경기가 길어질수록 체력 한계를 드러낼 것이다. 정현이 직접 꺾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들은 조만간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이다. 정현은 이제 겨우 스물두 살이다. 시간은 정현 편이다.


서양 선수들에 비해 언뜻 왜소해 보이지만 정현은 신장 188㎝, 체중 83㎏의 당당한 체격을 갖췄다. 종아리가 짧아 동작이 느려 보이지만 특유의 빠른 발로 종횡무진 코트를 누비며 팔을 있는 대로 뻗은 상태에서 상대 선수의 공을 받아내는 기술은 가히 압권이다. 어린 나이에 담력과 침착함까지 갖춘 그가 서비스만 조금 더 가다듬으면 메이저 대회 석권은 시간문제처럼 보인다.

25년 전 오늘 '코트의 신사' 아서 애시(Arthur Ashe)가 세상을 떠났다. 인종차별이 노골적으로 횡행하던 시절 US오픈(1968), 호주오픈(1970) 그리고 윔블던(1975)에서 우승한 최초의 흑인 선수였다. 그가 1992년 기자회견을 갖고 수혈로 인해 에이즈(AIDS)에 걸렸다고 발표했을 때 그 누구도 그의 진술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보다 먼저 에이즈에 걸린 많은 운동선수가 수혈을 들먹였지만 대중은 쉽사리 수긍하지 않았다. 그러나 애시가 바이러스에 감염된 피를 잘못 수혈받아 병을 얻었다고 얘기했을 때 아무도 수군거리지 않았다. 아시아 선수로는 처음으로 메이저 대회에서 우승할 것으로 기대되는 정현 선수도 아서 애시처럼 코트 위에서는 물론 코트 밖에서도 신뢰와 존경을 받는 선수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그의 약진을 응원하련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사회생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