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2017-09-06 03:00
그 신부의 고백을 루소의 유명한 고백과 비교해보면 진정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루소가 ‘고백록’을 쓰려고 결심한 건 쉰 살이 넘어서였다. 누가 폭로하겠다고 위협한 것도 아니고 누가 쓰라고 종용한 것도 아니었다. 그의 표현대로 ‘가증스러운 범죄’를 그저 고백하고 싶었을 따름이다.
열여섯 살 때였다. 그는 어느 부잣집 하인으로 들어가 일하다가 리본을 훔쳤다. 리본이라니까 사소해 보이지만 핑크색과 은색이 뒤섞인 아름다운 리본이었던 모양이다. 그가 갖고 있다는 것이 금세 들통났다. 그러자 그는 부엌에서 일하는 하녀 마리옹이 리본을 훔쳐 자기한테 줬다고 둘러댔다. 그녀는 그런 적이 없다고 울먹였지만, 그녀의 말과 루소의 말이 대립하다가, 사건은 두 사람이 해고되는 것으로 끝났다.
루소는 미안했다. 몇십 년이 지나도 미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그래서 늦게라도 고백하고 싶었다. 여기에서 그의 진정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의 고백에는 함정이 있다. 그는 리본을 훔친 것이 자신이 좋아했던 그 하녀에게 주기 위해서였고, 그녀에게 책임을 돌린 것은 무서워서 그랬다고 한다. 그의 고백은 용기로도 들리지만, 묘한 변명과 자기합리화로도 들린다. 몇십 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그는 다시 한 번 그녀를 이용의 대상으로 삼았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때는 비겁함 때문에 그랬고, 이번에는 일종의 도덕적 자기과시 때문에 그랬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때는 어떤 말로도 해소할 길 없는 미안함이라도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것을 상품으로 만들었다. 그러면서 의도와는 다르게, 끝이 없어야 할 미안함에 마침표가 찍혔다. 그리고 고백이 피해자인 그녀가 아니라 일반 독자를 향하는 아이러니, 여기에서 그의 진정성은 시험을 당한다. 이것이 타인에게 가한 상처나 미안함이 글로 바뀔 때 수반되는 위험이 아닐까.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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