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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알퍼의 한국 일기]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은 홍어입니다"

바람아님 2018. 5. 15. 11:14

(조선일보 2018.05.15 팀 알퍼 칼럼니스트)


삼킬 때 콧속까지 뚫리는 느낌… 세상 어디에도 비교할 수 없어
英國도 비리고 짠 멸치 소스 토스트에 발라 먹는 걸 즐겨
음식에 대한 好不好는 국경 넘어 흥미로운 대화 끌어내


팀 알퍼 칼럼니스트팀 알퍼 칼럼니스트


인간이 가진 오감 중 미각(味覺)은 논란의 여지가 제일 많은 감각이다.

그래서 가장 재미있게 느껴지기도 한다.

일례로 잘 띄운 청국장이 지금 우리 눈앞에 보글보글 끓고 있다면 어떨까?

내가 아는 한국인의 절반은 엄청나게 반가워하며 먹어 치울 것이다.

반면 다른 절반은 뒤돌아보지도 않고 줄행랑을 칠 것이다.

청국장 냄새는 많은 이방인들에게 역겹게 느껴질 법하다. 하지만 내겐 그다지 혐오스럽지 않다.

나는 영국 사람이지만 어머니는 프랑스인이다.

이 때문에 집 밖에 보관해야 할 정도로 고약한 냄새가 나는 치즈를 즐겨 먹는 프랑스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만약 나처럼 음식의 강한 풍미(風味)를 즐기는 사람이라면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치즈일수록

더욱 맛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는 치즈에서는 깊은 풍미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맹숭맹숭할 것이다.


내 고국인 영국의 음식들은 너무 오래 삶아 물컹하거나 밍밍한 맛으로 평판이 그다지 좋지 않다.

하지만 의외로 한국의 과메기처럼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강한 맛의 음식들도 많다.

예를 들면 키퍼(kipper)라는 영국 음식은 한국의 비린 생선보다 더 고약한 냄새가 나고 다섯 배 이상은 짠맛의 훈제 청어이다.


놀라운 점은 영국 사람들이 그 음식을 이른 아침에 먹는다는 것이다.

그것도 빵이나 감자와 함께가 아니라 우유를 잔뜩 넣은 티를 곁들여 코를 찌르는 훈제 청어만으로 아침을 시작한다.


[팀 알퍼의 한국 일기]
/일러스트=이철원


영국인들은 안초비, 즉 멸치와 매우 독특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한국 사람들처럼 멸치를 말린 뒤 반찬이나 육수로 사용하는 대신 영국인들은 소금에 절인 후 소스로 만들어 사용한다.

대표적인 것이 몇 방울로도 수프나 스튜 등의 요리에 풍미를 더하는 우스터 소스.

하지만 영국 사람들은 이 은은한 맛의 소스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 듯하다.


그들은 비린 맛과 짠맛이 좀 더 강한 멸치 소스를 원했고, 그래서 구두약이나 초강력 헤어 왁스가 들어 있을 법한 깡통에

담겨진 '젠틀맨스 렐리시(Gentleman's Relish)'라는 스프레드(spread·빵에 발라 먹는 식품)가 탄생했다.

영국 신사들은 이 스프레드를 토스트에 잔뜩 발라 먹는다. 이 음식을 먹은 후 신사적인 냄새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심지어 영국의 국민 요리인 '피시 앤드 칩스'도 그렇다.

미국인들은 튀긴 감자와 생선에 달달한 토마토 케첩을 곁들인다.

반면 영국 사람들은 이런 행동을 모나리자에 콧수염을 그려 넣는 것처럼 불경스럽다고 생각한다.

영국 사람들은 피시 앤드 칩에는 싸구려 식초를 잔뜩 뿌려 먹는 것이 진리라고 여긴다.

참으로 고상한 취향 아닌가?


마마이트(Marmite)라는 이스트 추출물로 만든 찐득하고 새까만 스프레드도 빼놓을 수 없다.

영국 사람들은 굳은 엔진 오일처럼 보이는 이 스프레드를 빵에 마구 발라 먹는다.

마마이트 역시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음식이다.

실제로 마마이트 회사는 이런 사실을 염두에 두고 마케팅 전략을 짠다.


'당신은 마마이트를 사랑하거나 증오한다(You either love it or you hate it).' 이 문구는 마마이트의 공식 슬로건이다.


사실 영국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과 여러모로 비슷하다.

히스로공항의 세관 직원들은 여행객들의 가방 안에 들어 있는 '젠틀맨스 렐리시' 같은 고약한 냄새가 나는 음식들을

압수하느라 언제나 승객들과 실랑이를 벌인다. 마찬가지로 내가 인천공항을 갈 때마다 고추장과 김치의 기내 반입 규정에

대해 설명하느라 지친 기색이 역력한 한국 세관 직원들을 목격한다.


음식에 대한 호불호는 흥미진진한 대화를 끌어내는 엄청난 힘을 가졌다.

한국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을 물어볼 적마다 나는 홍어라고 대답한다.

첫째 이유는 홍어를 먹을 때의 감각 때문이다. 홍어를 삼킬 때 입부터 콧속까지 뻥 뚫리는 듯한 느낌은 이 세상에서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둘째 이유는 홍어를 좋아한다고 대답하면 항상 한국 사람들은 재미있는 반응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잔뜩 일그러진 표정을 짓기도 하고, 반대로 입이 귀에 걸린 듯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도 말한다.

"와! 다음에 꼭 같이 먹으러 가요."


만약 영국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그들에게 마마이트와 우스터 소스를 좋아한다고 말하라.

아마도 한국에서 내가 겪은 것과 비슷한 흥미로운 반응을 겪게 될 것이다.          




[과학을 읽다]②맛의 과학-풍미(風味)


(아시아경제 2018.03.31 김종화 기자)       


풍미(風味)는 혀에서 시작해 뇌의 해석까지 마쳐야 느낄 수 있는 종합예술의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사진=아시아경제DB]


[아시아경제 김종화 기자]

음식의 맛은 혀로 느낀다는 표현은 정확한 것이 아닙니다.

맛을 느끼기까지는 굉장히 복잡한 과정을 거칩니다.

혀, 코, 입안의 감각, 눈, 귀 등 감각기관이 총동원돼 저마다 수집한 정보를 뇌로 보내면

뇌가 축적한 기억과 받은 정보를 조합해 판별합니다.

그러니까 맛은 뇌가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나 맛을 느끼는 과정의 시작은 혀와 연구개(물렁입천장)에 있는 미뢰에서 시작됩니다.


양파 모양의 미뢰는 50~100개 정도의 맛세포가 있는데 각각의 맛세포들은 손가락 모양의 미세 융모를 갖고 있습니다.

음식 속의 다양한 맛 분자들이 미뢰와 접촉해 미뢰에 들어가면 맛세포의 미각 수용체와 만나 맛 분자의 정보는

전기신호로 변환돼 신경을 따라 뇌로 전달됩니다.


맛세포가 감지해 뇌로 전달된 맛 분자의 정보는 뇌간을 거쳐 미각피질에 도착합니다.

미각피질에는 다섯 가지 기본 맛에 대응하는 부위가 각각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1차 미각피질에서는 맛을 감별하고, 제2차 미각피질에서 정보와 기억을 종합해 맛을 음미하게 되는데

이 최후의 과정을 '풍미(風味·flavor)'라고 할 수 있습니다. 
  
풍미(風味·flavor)는 원래 음식의 맛과 향을 합해 부르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맛과 향뿐만 아니라 오감을 통해 뇌가 최종적으로 해석하는 맛을 의미하는 말로 바뀐 것입니다.

혀를 통해 감지하는 것을 '맛(taste)', 뇌에서 해석해 인지하는 맛은 '풍미(風味)'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처럼 맛의 인지과정이 복잡하다 보니 뇌가 풍미(風味)를 어떻게 느끼는지 연구하는 '신경미식학(neurogastronomy)',

맛에 대해 보다 과학적인 연구를 하는 '분자미식학(molecular gastronomy)' 등 다양한 학문 분야도 탄생했습니다.


풍미(風味)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정보는 냄새입니다.

냄새는 숨을 쉴 때 코를 통해 직접 신경에 도달하거나 입에서 뒤쪽으로 이동하는 간접적인 방법으로 신경계에 도달합니다.

후각말초신경은 콧구멍에서 상당히 멀리 있어 코로 숨을 들이마시거나 입에 있는 음식을 삼켰을 때 가장 큰 자극을

받는다고 합니다.


 
[사진=유튜브 화면캡처]


냄새 음식으로부터 나오는 향 분자가 코로 직접 들어와 냄새를 감지하는 세포와 반응하는 경우,

식을 씹고 삼킬 때 음식의 냄새 분자가 입안에서 코로 들어가 냄새 세포를 자극하는 경우 등 두 가지가 있습니다.


사람의 뇌코로 직접 맡은 향기(aroma)입안에서 코로 들어가 느껴지는 냄새(flavor)를 다르게 인식합니다.

결국 풍미는 이 모든 과정을 종합해 만들어낸 종합예술의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풍미는 5개의 기본 맛과 그 외의 맛을 함께 느끼는 것입니다.

사과 맛이란 단맛과 신맛 등이 조합된 맛인데 여기에 사과의 향이 더해져 뇌가 다른 음식과 구별할 수 있는 '사과맛'을

기억하게 되는 것입니다. 바나나·딸기 같은 과일, 견과류, 우유, 일부 채소 등은 요리하지 않아도 그대로 먹을 수 있는

풍미가 있습니다. 다른 음식들은 조리의 과정을 거쳐 풍미를 갖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과학자들은 특정 풍미에 대한 선호나 기피는 후천적으로 획득된 행동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따라서 개인의 풍미는 서로 다르고, 또 바뀔 수도 있는 것입니다.
    



*각주) 풍미(風味) [명사]
1.음식의 고상한 맛.   2.멋지고 아름다운 사람 됨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