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4.01.04 안대회 성균관대 교수·한문학)
새봄을 맞아
청산은 푸른빛을 바꾸지 않고
유수는 물소리를 바꾸지 않네.
바라고 바라건대 주인옹이여!
호젓이 사는 마음 바꾸지 말자.
春帖(춘첩)
靑山不改色(청산불개색)
流水不改聲(유수불개성)
唯願主人翁(유원주인옹)
不改幽棲情(불개유서정)
―박세당(朴世堂·1629~1703)
==============<박세당 관련 경기일보 기사 중 박세당 관련 부분 발췌>==============
17C 조선 사상계의 '대표지성'… 수락산 은거 '학문열정' 꽃피워
서계(西溪) 박세당(朴世堂, 1629~1703)은 17세기 후반 조선을 대표하는 사상가의 한 사람이다. 병자호란 이후 조선의 정계를 움직이던 양반사대부들은 숭명배청, 복수설치를 내세우며 주자학으로 중무장하여 다른 사상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 맨 앞에 우암 송시열이 있었다. 이때 송시열과 같은 서인계 중진으로 명망이 높았던 박세당이 나섰다. 그는 비록 주자의 해석이라 해도 모두 옳은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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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대학》과 《중용》을 새롭게 편집하고 새로운 해석을 붙인《사변록》을 펴냈다. 또한 《남화경주해》를 저술하여 유학에서 이단으로 취급하던 장자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박세당은 조선 사상계의 지평을 넓혔던 인물이다. 그러나 당시의 주류였던 노론계 인사들은 그에게 “사문난적(斯文亂賊)”이라는 붉은 딱지를 붙여 주었다. 그런 송시열도 인정한 소론 출신의 인물이 있으니 그가 바로 박세당의 둘째 아들 박태보(朴泰輔, 1654~1689)이다.
노강서원으로 박태보의 충절을 기리는 사액서원이다. ‘노강(鷺江)’자는 해오라기가 있는 강, 곧 노량을 뜻한다. 왜 서원의 이름이 ‘노강’일까? 1689년 숙종이 후궁 장희빈이 왕자를 낳자 세자로 세우고 계비인 인현왕후를 폐위하고 노론을 실각시키고 소론으로 바꾸었다. 이때 소론의 핵심 인물인 박태보가 이를 반대하는 여론을 주도하고 목숨을 건 상소를 올렸다. 결국, 박태보는 숙종의 분노를 사 벌겋게 달군 인두로 온몸을 지지는 국문을 당한 뒤 초주검이 되어 유배에 올랐으나 노량진에서 숨을 거두고 말았다.
서계(西溪) 박세당(朴世堂) |
훗날 나라에서는 박태보의 학문과 충절을 높이 평가하여 영의정에 추증하는 동시에 시호를 문열(文烈)이라 하고 그를 추모하는 뜻에서 이 서원을 건립하였던 것이다. 노강서원은 흥선대원군이 서원을 철폐할 때도 살아남은 47개 서원의 하나였으나 한국전쟁 때 그만 소실되고 말았다. 1968년에 후손들이 이곳으로 옮겨 세웠다.
박세당은 1668년, 나이 마흔에 벼슬을 버리고 수락산 석천동에 들어왔다. 그는 자신의 호를 “서계(西溪)”라 하였다. 서계라는 그의 호에는 자신보다 먼저 이곳에 살았던 매월당 김시습을 흠모하는 정과 수락산을 사랑하는 마음이 오롯이 들어 있다. 그가 매월당 김시습을 그리며 지은 칠언율시 마지막에 “동봉 달빛 서계의 물을 비추네[동봉월조서계수 東峯月照西溪水]”라는 구절이 있다. 짐작하듯이 ‘서계’라는 박세당의 아호는 김시습의 아호 ‘동봉(東峯)’의 대어이다.
이는 세월을 극복한 의기(意氣)의 합일(合一)이며,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 옛사람과 벗을 삼자[상우천고?尙友千古]’는 의지의 실천이었다. 박세당은 이곳에서 농사를 짓고 찾아오는 젊은 선비들을 가르치는 일을 즐거움으로 삼았다. 농사를 지은 경험을 바탕으로 《색경》을 지었다. 1703년 75세의 일기로 별세하기까지 이곳 석천에서 살았던 박세당은 진정으로 수락산을 사랑한 선비였다.
수락산을 타면서 머릿속을 내내 맴돌던 단어가 있었는데 생각이 나지 않더니 집에 도착해 몸을 씻을 때 불현듯 떠올랐다. 그것은 바로 “육감적”이라는 말이었다. 높고 험한 산은 아니지만, 사암으로 이루어진 골산이기 때문에 미끄럼에 특히 주의해야 하니 등산화를 꼭 착용할 일이다.
벌써 한낮은 푹푹 찌는 여름이 시작되었다. 이번 주말에는 수락산을 찾아보면 어떨까. 탁 트인 봉우리에서 산바람을 쐬고 계곡물에 발을 담그는 상상만으로도 주말이 기다려질 것이다.
김영호(홍재인문학연구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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