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중앙시평] 청와대의 지덕이 쇠하였다

바람아님 2019. 11. 23. 08:19


중앙일보 2019.11.22. 00:40

 

이어지는 대통령들의 불행사
풍수 아닌 공간 조직의 문제
청와대의 이전이 어렵다면
일상접촉의 공간 재배치 절실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지덕이 쇠하였다. 상상력이 놀랍다. 인간이 갖춰야 마땅할 가치를 땅도 갖고 있다니. 그런데 그 덕은 절차탁마의 대상이 아니요, 생동기운의 일종인 모양이다. 퍼서 쓰면 소진되는 그런 것. 보이지 않는 기운이 자연자원처럼 땅에 숨어 있다더라. 지덕이 쇠하였다. 그 정치적 수완 또한 놀랍다. 논리는 간단하다. 일단 세상이 어지럽다. 정치 난제 일거 소거의 강력방안이 필요하다. 기득권자들을 무력화시키려면 판을 전복시켜야 한다. 그런데 명분이 필요하다. 이때 저 문장이 등장하는 것이니, 지덕이 쇠하였다. 난세 야기의 지덕 소진은 쉬 보충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터를 옮겨야 한다.


그렇다. 이건 상상의 산물이다. 관찰·계측이 되지 않고 존재·소진이 증명 불가다. 규명하고 알아내는 것이 아니고 주장하고 믿어야 할 대상이다. 이런 건 지식과 학문이 아니고 신념과 신앙의 영역이다. 풍수와 도참의 문제가 이것이다. 모두가 동의할 논리가 없고 다양한 주장이 존재할 뿐이다. 지도자의 사적 신념이 논리와 원칙에 앞서면 난세가 당연하니 대안도 합리적일 수 없다. 그래서 난세의 지덕쇠망론이 나왔을 때 이견은 난무했고 결론에 이른 방법은 정치 결단이었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뒷모습은 모조리 흉흉하다는 점에서 나름 일관성이 있다. 거기 항상 붙어오는 설명이 있으니 청와대 자리는 흉지라더라. 좌청룡 우백호 금계포란 음택길지를 찾아서 청와대를 옮겨야 한다는 진단이 대안으로 등장한다.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역사는 수십 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조선의 수도를 한양으로 옮긴 지는 육백 년이 넘었다. 지덕이 쇠하였나?

그렇다면 질문은 조선과 대한민국의 관계다. 대한민국은 조선 왕조의 계승자인가. 대통령 불행사의 배경에는 대개 제왕적 권력행사가 깔려있다. 생존 대통령의 동상 세우고 대통령 생일축하연을 동대문운동장에서 성대 거행하던 시대도 있었다. 대통령의 미국 방문이 가물었던 현지에 단비를 몰고 왔다는 너스레가 공영방송에 서슴없이 중계되던 시절도 있었다. 국운융성 지덕왕성의 시대였을까.


이들이 전제군주였으면 아무 문제 되지 않을 사인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이었다. 만수무강 축원동상은 철거 폐기되었고 천기조화 무소불위 대통령은 유배만리 백담사로 향했다. 퇴임 대통령의 감옥행은 일상사가 되었다. 불행한 것은 대통령이 아니고 국민이다. 성실납세 행복추구 국민들에게는 도대체 무슨 잘못이 있는 걸까.


청와대의 문제는 풍수지리상 흉지라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일상으로부터 너무 멀다는 것이다. 청와대는 도시에서 고립되어 있고 집무실은 청와대 내에서 고립되어 있다. 대한민국 대통령의 집무실은 위치와 형식에서 조선 시대에 가깝다. 조선 왕실의 우선가치는 왕실 보전이었다. 의주로 피난을 가더라도 신주단지를 옮겨가야 했다. 백성 안위는 그 다음의 가치였다. 그런 왕실보다 지금 청와대는, 대통령 집무실은 더 고립되어 있다.

사저에서 혼밥 먹고 티비시청으로 소일하던 대통령도 있었다고 들었다. 대통령은 사저에서도 다 보고받으신다는 무력한 변론을 이미 목격했다. 실체와 진실은 활자와 영상 너머에 있다. 청와대 생활 삼 개월이면 바깥 세상에 깜깜해진다는 게 이전 대통령 측근의 증언이다.


조선의 18세기 후반이 되면 이전 시대에 접하지 못한 수준의 한양 도성지도가 그려진다. 축척과 등고선으로 계량화되지는 않았지만 훌륭한 공간정보가 담긴 지도다. 궐밖이 궁금한 임금님이 도성 밖 정보를 요구한 것이고 그것이 어람지도로 표현되어 남았다. 그 임금은 정조였다. 제왕도 백성의 일상이 궁금했는데 공화국 대통령의 심산유곡 결가부좌는 시대정신과 국가정체성에 맞지 않는다.


이번 대통령의 약속 중 하나가 집무실의 광화문 이전이었다. 대통령궁 이전은 어느 국가에서나 심각한 문제다. 결국 경호가 문제였다. 대통령은 가둬놓고 경호하는 게 가장 안전하다는 결론이겠다. 그렇다면 질문은 이렇다. 우리는 경호에 성공한 대통령이 필요한 것인지, 성공한 대통령의 경호가 필요한 것인지.

심지어 수도를 옮기겠다던 용감한 대통령도 있었다. 집무실 이전이 어렵다면 청와대 내 건물배치가 바뀌어야 한다. 왕국 임금이 아니라 공화국 대통령 집무공간다와져야 한다. 공간 조직이 인간 관계를 규정한다. 보좌관·참모들과 수시일상 접촉이 가능해야 한다. 국민행복과 직결되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백악관의 대통령은 헬기이동이 일상이다. 헬기장 앞마당에는 낚싯대 같은 막대기에 마이크를 매단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다. 문장은 정중하나 내용은 거침없는 대거리를 해대는 존재들이다. 헬기장 오가는 길에, 혹은 집무실 안에서 그곳 대통령과 기자들은 입씨름이 다반사다. 그래서 우리는 동영상 검색으로 청와대보다 백악관 돌아가는 상황을 훨씬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구중궁궐에 홀로 앉은 절대 군주의 종묘사직 보전이 존재 의미고 국가 기운이던 시절이 분명 있었다. 아마 그걸 지덕이라고 칭했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제 때가 되었다. 청와대의 지덕이 쇠하였다.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