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동서남북] 우리 외교에 '코로나 이후'는 없는 건가

바람아님 2020. 3. 9. 07:40

(조선일보 2020.03.09 김진명 정치부 기자)


전 세계 100여國을 통째로 '방역 능력 없고 비과학적' 비하
이번 감염증 사태 지난 후 그들 나라에 뭐라 해명할 텐가


김진명 정치부 기자김진명 정치부 기자


우한 코로나 감염증의 국내 확산세는 여전히 급박하다.

그러나 정부의 대응을 보고 있자면 '코로나 이후의 외교'도 생각해야 하지 않나 걱정이 든다.

요즘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비롯한 고위 당국자들의 발언을 듣고 있노라면,

마치 코로나 대응을 끝으로 외교는 그만할 사람들 같다.

지난 4일 국회에서 한국을 겨냥한 입국 제한 조치가 잇따르는 데 대한 책임을 추궁당한 강 장관은

"방역 능력이 없는 국가가 입국 금지라는 투박한 조치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순식간에 92국을 '방역 능력 없는 투박한 국가'로 전락시킨 것이다.

그런데 다음 날부터 호주·싱가포르·일본이 입국 금지 대열에 동참했다. 입국 통제국은 100곳을 넘었다.

미국도 추가 조치를 할 것이란 우려가 높아졌다.


그러자 6일 기자들과 만난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100여 나라를 "자국의 의료 체계나 방역 능력에 자신이 없는 나라"와

"의료 체계도 완비돼 있고 방역 능력이 상당한 나라"로 양분(兩分)했다.

전자(前者)인 나라들은 이해할 만하지만, 후자(後者)인 나라들은 "비과학적이고 비우호적인 조치"를 했다는 설명이었다.

각각의 예시로 몇몇 국가 이름도 언급했다.

외교부 덕분에 세계의 절반은 '무능하거나, 한국에 비우호적인 나라'로 채워졌다.


특정국 조치를 공개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외교적 금기다. 그걸 아는 고위 당국자들이 서슴지 않고 금기를 깼다.

'이것은 외교라기보다 정권을 위한 선전 활동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다.

초기에 중국발 입국자를 통제하지 못해, 한국이 되레 입국 제한을 당한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한 선전 말이다.


우리 정부는 이 선전에 한 가지 논리를 계속 이용해 왔다.  "세계보건기구(WHO) 등에 따르면 여행 제한 조치는

질병 통제와 예방에 과학적인 대응 방안이 될 수 없다"(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논리이다.

중국발 입국 금지를 하지 않은 결정이 우한 코로나 통제와 예방의 과학적 대응 방안이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일본의 한국인 입국 제한 조치에 발끈해 상응 조치를 발표하면서 이런 논리의 일관성마저 사라졌다.

조세영 외교부 1차관은 6일 일본인에 대한 입국 제한 조치를 발표하며

"일본에서 유입되는 감염병을 철저히 통제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8일 "국민의 보건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면서 감염병 유입에 대한 철저한 통제에 주안점을 두고

내린 결정"이라고 말했다. 여행 제한이 질병 통제에 효과적이라고 인정한 셈이다.


청와대는 일본에만 입국 제한 조치를 취한 이유를 정당화하며 불투명한 검사 방식으로 인해

"코로나 감염자 숫자가 빙산의 일각일 수 있다"는 CNN 보도도 인용했다.

그것이 이유라면 우한 코로나의 유행 자체를 은폐하려 했고 확진자·사망자 숫자를 조작한다는

외신의 의심을 줄곧 받아온 중국에 대해서는 왜 진작 입국 제한을 하지 않았나.


일본이 한국인 입국 제한을 결정한 데 정치적 계산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정치적 의도를 의심할 만한 조치에 보복하자면, 자국 선거를 앞두고 한국발 비행기를 그대로 돌려보낸

이스라엘에도 해야 한다. '비우호적, 비과학적 조치'를 한 싱가포르·호주에도 마찬가지다.

신남방·신북방 정책의 주요 파트너 국가와도 앙금이 남을 수 있다. 이것이 우리가 바라는 외교인가.


한때 자국에 대한 입국 금지에 "부당하다"며 펄펄 뛰던 중국도 지금은 달라졌다.

일본의 입국 제한에 "과학적·전문적 조치는 이해할 수 있다"고도 했다.

앞뒤가 안 맞는 말로 세계를 상대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3/08/202003080139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