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아트칼럼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325] 낭만주의 화가 눈에 비친 뉴턴

바람아님 2020. 5. 12. 08:37

(조선일보 2020.05.12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피천득 시인이

'창밖은 오월인데/ 너는 미적분을 풀고 있다/ 그림을 그리기에도 아까운 순간'이라고

한탄했던 건 훗날 세계적 물리학자가 된 딸의 고단한 학창 시절이 안타까웠기 때문일 게다.

바로 그 야속한 미적분을 발견한 건 아이작 뉴턴이다.

뉴턴보다 한 세기 후에 영국에서 활동했던 낭만주의 화가이자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

(William Blake· 1757~1827)에게도 수학은 탐탁지 않았던 모양이다.


윌리엄 블레이크, 아이작 뉴턴, 1795년, 동판화에 잉크와 수채, 46 x 60㎝, 런던 테이트 갤러리 소장.
윌리엄 블레이크, 아이작 뉴턴, 1795년, 동판화에 잉크와 수채, 46 x 60㎝, 런던 테이트 갤러리 소장.


블레이크의 판화에서 뉴턴은 마치 갓 태어난 태초의 인간인 양, 검푸른 바닷물 속에 벌거벗은 채 앉아 있다.

신을 닮아 완벽한 근육질 몸을 가졌지만 뉴턴은 그저 쭈그리고 앉아 바닥에서 눈을 뗄 줄 모른다.

주위에는 온갖 기화요초가 만발하여 물결을 따라 일렁이건만 그는 컴퍼스를 움켜쥐고 종이를 펼쳐둔 채

도형을 그리느라 여념이 없다.

블레이크는 불가해한 자기만의 환상과 독자적 상상의 세계를 몽환적이고도 기이한 이미지로 그려내던 화가다.

태생이 반항적이었던 그는 당시의 종교와 노예제, 성차별 등 전통적 사회 제도를 모두 부정하며 인간의 영성(靈性)을

강조하는 신화를 새로 썼다. 실제로 미래를 예견하는 환영을 보기도 했다는 블레이크의 그림은 난해한 상징으로

가득하다. 그런 블레이크에게 물질의 세계와 증명 가능한 객관적 사실만을 추구했던 뉴턴은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을

낳은 프랜시스 베이컨, 존 로크와 함께 세상의 삼대 악이었다.


사실 뉴턴은 1665년 영국 전역에서 흑사병이 창궐하면서 재학 중이던 케임브리지 대학이 폐쇄되자 하는 수 없이

고향 집에 피신해 있었다. 미적분이 그 시절의 역작이다.

역시 아무리 창밖이 오월이어도 역병이 돌면 집에서 미적분을 풀든가 그림을 그리는 게 낫겠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5/11/202005110351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