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 앙투아네트가 프랑스에 도착하던 1770년에만 해도 그녀는 모든 사람이 꿈에 그리는 아름다운 공주의 이미지 그대로였다. 밝고 명랑하고 아름다운 미소를 짓는 14살 소녀는 가끔 파리 시내로 구경을 나갔다가 사람들의 눈에 띄어 큰 인기를 누렸다. 그렇지만 이런 화사한 이미지는 1774년에 남편 루이 16세가 왕위에 오르면서 무너져 갔다.
우선 그녀는 왕비의 역할에 대한 의식이 없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모델이라고는 어머니인 오스트리아 여제(女帝) 마리아 테레지아뿐인데, 그것을 두고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식으로 잘못 받아들인 것 같다.
그녀는 특히 자신의 사적인 생활 권리를 너무 강하게 고집했다. 자기 방과 트리아농 궁전에만 숨어 지내느라 공식적인 자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온갖 황당한 소문이 돌았다.
게다가 왕비의 첫 번째 중요한 의무인 왕자 생산에 영 진척이 없었다. 아직도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왕과 왕비는 결혼하고 7년이 지날 때까지 성적 결합이 안 되었다. 루이 16세가 '매우 간단한 수술'을 받은 후 모든 문제가 풀렸고, 그 후 4명의 자녀를 보았다. 그러나 그러는 동안 성적으로 무능한 국왕, 방탕한 왕비, 레즈비언 혹은 변태적 괴물이라는 식으로 왕실을 욕보이는 포르노그래피 공격이 걷잡을 수 없이 퍼졌다. 왕비의 씀씀이도 사람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화장품과 궁전의 실내 장식에 과도한 액수를 사용한다는 것인데, 사실 그런 정도의 지출은 다른 왕비와 같은 수준이었고, 이것이 나라를 망칠 정도는 물론 아니었다. 문제는 그런 행위가 사람들 눈에 띄었다는 점이고, 그래서 '적자(赤字) 부인'이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이 덧붙어졌다.
정치와 외교에는 전혀 감각이 없으면서도 친정인 오스트리아 측의 압박을 받아 간혹 남편인 국왕에게 무리한 요청을 하기도 했다. 억지스러운 부탁을 들어줄 리는 없었지만, 나중에 혁명 재판에서는 실제로 이런 것들이 반혁명 죄의 사유가 되었다. 그녀가 주도한 가장 멍청한 일은 혁명이 한참 진행되는 도중에 왕실 사람들이 모두 초대형 왕실 마차를 타고 탈출을 시도한 소위 바렌 도주 사건이다. 이는 왕실이 배신자로 낙인 찍혀 국민의 신뢰를 잃은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아름다운 '작은 요정'으로 프랑스 왕실에 시집온 마리 앙투아네트는 결국 혁명의 물결에 휩쓸려 단두대에서 처형되는 기구한 운명의 주인공이 되었다.
우선 그녀는 왕비의 역할에 대한 의식이 없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모델이라고는 어머니인 오스트리아 여제(女帝) 마리아 테레지아뿐인데, 그것을 두고 모든 것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식으로 잘못 받아들인 것 같다.
그녀는 특히 자신의 사적인 생활 권리를 너무 강하게 고집했다. 자기 방과 트리아농 궁전에만 숨어 지내느라 공식적인 자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자 온갖 황당한 소문이 돌았다.
게다가 왕비의 첫 번째 중요한 의무인 왕자 생산에 영 진척이 없었다. 아직도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왕과 왕비는 결혼하고 7년이 지날 때까지 성적 결합이 안 되었다. 루이 16세가 '매우 간단한 수술'을 받은 후 모든 문제가 풀렸고, 그 후 4명의 자녀를 보았다. 그러나 그러는 동안 성적으로 무능한 국왕, 방탕한 왕비, 레즈비언 혹은 변태적 괴물이라는 식으로 왕실을 욕보이는 포르노그래피 공격이 걷잡을 수 없이 퍼졌다. 왕비의 씀씀이도 사람들의 입방아에 올랐다. 화장품과 궁전의 실내 장식에 과도한 액수를 사용한다는 것인데, 사실 그런 정도의 지출은 다른 왕비와 같은 수준이었고, 이것이 나라를 망칠 정도는 물론 아니었다. 문제는 그런 행위가 사람들 눈에 띄었다는 점이고, 그래서 '적자(赤字) 부인'이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이 덧붙어졌다.
정치와 외교에는 전혀 감각이 없으면서도 친정인 오스트리아 측의 압박을 받아 간혹 남편인 국왕에게 무리한 요청을 하기도 했다. 억지스러운 부탁을 들어줄 리는 없었지만, 나중에 혁명 재판에서는 실제로 이런 것들이 반혁명 죄의 사유가 되었다. 그녀가 주도한 가장 멍청한 일은 혁명이 한참 진행되는 도중에 왕실 사람들이 모두 초대형 왕실 마차를 타고 탈출을 시도한 소위 바렌 도주 사건이다. 이는 왕실이 배신자로 낙인 찍혀 국민의 신뢰를 잃은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아름다운 '작은 요정'으로 프랑스 왕실에 시집온 마리 앙투아네트는 결국 혁명의 물결에 휩쓸려 단두대에서 처형되는 기구한 운명의 주인공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