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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히스토리아 [172] 국왕의 신화화(神話化)

바람아님 2014. 2. 5. 10:40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프랑스에서 대중에게 가장 인기 있는 국왕은 앙리 4세(재위 1589~1610)다. 
그는 극심한 종교 내전으로 인한 분열을 막고 프랑스를 통합하여 강력한 절대주의 국가를 향한 초석을 
놓았으며, 서민들의 삶을 개선시킨 훌륭한 통치자로 알려져 있다. 
'신(神)께서 내 목숨을 허락하시는 한, 우리 왕국의 모든 농민들이 일요일마다 냄비에 닭 한 마리를 
조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말은 흔히 그의 애민(愛民) 정신을 보여주는 예로 거론된다. 그런데 그는 
정말 그런 말을 했을까? 그리고 생전에 그토록 백성들의 존경을 받았을까?

사실 앙리 4세가 위대한 왕으로 존경받기 시작한 것은 1610년에 암살된 이후의 일이다. 
그 이전에 국왕은 오스트리아와 전쟁을 치르려 했고, 57세의 나이에 15살밖에 안 된 유부녀에게 연애를 시도하여 비웃음을 샀다. 위대한 왕이 아니라 악정(惡政)을 거듭하는 가련한 늙은이 취급을 받던 중, 
라베약이라는 인물에 의해 암살당하자 일거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 
그는 신앙심 깊고, 서민들을 위해 불철주야 고뇌하는 현명하고도 유능한 군주가 되었다.

루이 13세부터 루이 16세까지 그 다음 국왕들의 통치기에 비판적 인사들이 당대 왕들을 비난하는 가운데 지난 시대 
선정(善政)의 사례로 앙리 4세를 거론하면서 그의 신화화가 더욱 심화되었다. 
볼테르는 그를 관용적이고 교양 있는 철학자·왕이자 동시에 낭만적인 사랑의 기사인 것처럼 묘사했다. 
샤를 콜레라는 극작가가 쓴 '앙리 4세의 사냥 모임'에서는 국왕이 사냥 중에 숲에서 길을 잃었다가 어느 물레방아지기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는데 이 사람은 그가 국왕이라는 사실을 눈치 채지 못하고 계속 왕의 훌륭한 통치를 칭찬한다.

국왕의 명성은 프랑스혁명의 와중에 일시적으로 훼손을 입었다. 
파리 시내에 세워져 있던 동상이 파괴되고, 아기 때 요람으로 썼던 거북 등껍데기도 누군가가 훔쳐갔고, 지방의 예수회 건물에 
보관 중이던 국왕의 심장도 불태워졌다. 그러나 혁명의 열기가 지나며 다시 국왕의 명성이 회복되었다. 
파리 시내에는 새로운 동상이 세워졌고, 다른 거북 등껍데기가 사라진 오리지널을 대신했고, 타다 남은 심장의 재를 
정성스럽게 회수하여 보관했다. 곧 불의를 누르고 평화를 회복하는 군주로 앙리 4세를 찬미하는 새로운 연극들이 공연되었다.

거짓말도 좋은 방향으로 작용할 수는 있다. 그러나 어쨌든 그것이 거짓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는 게 좋다.
(출처-조선일보 2012.07.18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