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정신은 민주주의와 엘리트주의가 결합되어 빚어진 순수한 이상(理想)이었다. 쿠베르탱 남작이 근대 올림픽을 구상하던 19세기 후반은 민주주의의 발전을 향한 사회적 노력을 기울이던 때이기도 하다. 모든 남녀 아동에게 의무적으로, 또 무상으로 초등교육을 시행할 것을 규정한 쥘 페리 법안(1881·1882년)이 통과되어 대중 교육이 확산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스포츠 역시 모든 참가자에게 똑같은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와 유사하다. 1896년에 시작된 근대 올림픽은 여성과 노예가 배제된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과 이 점에서 큰 차이가 난다.
그렇지만 스포츠 정신은 또한 내면에 귀족적 엘리트주의도 포함하고 있다. 당시에 여가를 활용하여 운동을 즐길 수 있는 사람은 소수의 부유한 인사들에 한정되었다. 올림픽의 근본 법칙으로 승화된 아마추어 정신은 이득을 바라지 않고 오직 스포츠 자체에만 목적을 둔 사람들만 참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는 중세 이래 면면히 이어져 오는 기사도 정신을 연상시킨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규칙을 따르며 속임수 없이 정정당당하게 겨루는 행위는 단순한 놀이의 수준을 넘어 도덕적인 모범으로 승격되었다. 이렇게 해서 고상한 귀족적 가치가 사회 전체로 확산되었다. 스포츠가 훌륭한 교육 방법이 된 것이 이 때문이다.
올림픽이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게 되면서 이제 이 행사는 일종의 신화적 혹은 유사 종교적 현상으로 진화한 듯하다. 수많은 군중이 운집해 있고, 간접적으로는 미디어를 통해 전 세계의 시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집단적인 열광의 분위기가 연출된다. 평범한 인간의 능력을 훨씬 뛰어넘는 행위를 선보이는 선수들은 반신반인(半神半人)의 영웅이 되고, 관중의 환호는 마치 신심 넘치는 신자들의 집단 기도를 연상시킨다. 특히나 올림픽 입장식 개막행사는 고상한 보편적 가치를 온 세계에 알리기 위해 엄청난 능력과 자원을 결집한 현대 사회의 최대 이벤트로 자리 잡았다. 종교 자체가 점차 약화되는 서구 사회에서는 스포츠가 일종의 종교 역할을 수행하는 느낌도 받는다.
올림픽은 여전히 100년 전의 순진한 이상주의를 간직하고 있을까? 어느덧 돈과 국가권력, 과도한 민족주의적 경쟁으로 말미암아 기묘하게 변질된 것은 아닐까? 원래의 스포츠정신과 올림픽정신을 어떻게 되살릴 수 있을지 지혜를 모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