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24. 8. 15. 20:53
소설가 한수산은 70년대 한국 문단의 아이콘이었다. 데뷔는 신춘문예 당선작 ‘4월의 끝’이었는데, 작품 속 대학생 주인공이 국민학교 6학년 여자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친다. 쉬는 시간에 라디오 광고가 들린다. “두통 치통 생리통에 사리돈 한 알”. 그러자 아이가 묻는다. “선생님, 생리통은 뭔지 모르겠어요.” 주인공은 얼결에 “언니한테 물어봐” 해버렸다. 아이가 아래층에 내려간 잠시 뒤 “뭐 저 따위 가정교사가 다 있어” 하는 비명이 들린다.
▶이 작품이 발표되던 해가 1972년이다. 소설은 이어진다. ‘결국 나는 후임 여학생의 가슴에서 OX를 겹쳐 놓은 것 같은 국립 서울대학교의 배지가 빛나는 것을 보면서 하야해야만 했다.’ 작가는 대학 상징 엠블럼을 통렬하게 꼬집는다. ‘나는 그 집을 빠져 나오며 저 학생은 아마도 가슴의 배지처럼 모든 문제에 선명하게 O나 X를 그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요즘 작가라면 망설일 대목이 없지 않겠지만 당시 독자들에겐 유쾌했다.
▶라틴어로 ‘진리는 나의 빛’이라고 쓰인 서울대 배지는 OX를 겹쳐 놓은 듯 보인다. 공부의 정답은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세상살이의 정답에는 벽창호일 것 같은 인상 때문에 자주 희롱의 대상이 됐다....어제 신문에 ‘서울대 자식 자랑 스티커’ 기사가 실렸다. 기부금을 모은 곳에서 발급하는 이 차량 스티커는 영어로 돼 있는데, ‘(서울대) 자랑 가족’ ‘(서울대) 자랑 부모’ ‘난 (서울대) 엄마야’ ‘난 (서울대) 아빠야’ 같은 문구가 쓰여 있다. 기사 반응이 다양하다.
중한 것은 기부금이다. 대학 재정이 고갈되고 있다.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리는지 따질 겨를이 없다.
https://v.daum.net/v/20240815205305764
[만물상] ‘자식 자랑’ 스티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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