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고전·고미술

정민의 세설신어 [126] 인양념마(因羊念馬)

바람아님 2014. 8. 26. 19:25

(출처-조선일보 2011.10.06 정민 한양대 교수·고전문학)


이덕무가 꿈을 꾸는데, 천군만마가 소란스럽고 대포 소리가 요란했다. 횃불이 사방을 에워싸며 몰려들었다. 

깜짝 놀라 깨어 보니, 베갯머리에서 기름이 다 말라 등불 심지가 타닥타닥 타들어가는 소리였다. 

이 소리가 꿈속에 들어와 거창한 한바탕의 싸움판을 꾸몄던 것이다.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에 나온다.

속담에 "꿈에 중을 보면 부스럼이 난다"는 말이 있다. 스님과 부스럼이 어찌 연관되는가? 

연암 박지원의 풀이가 그럴듯하다. "중은 절에 살고, 절은 산에 있고, 산에는 옻나무가 있으며, 옻나무는 부스럼이 나게 하니, 

꿈속에서 서로 인(因)하게 된 것이다." 사물과 사물 사이에 얽히고설킨 인이 있다. 

이것들이 서로 갈마들어 작용을 만든다. 착각도 환상도 여기서 다 나온다.

한 목동이 양을 치다가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생각했다. 

이 양을 잘 길러 새끼를 많이 낳으면 내다 팔아 말을 사야지. 말이 또 망아지를 낳겠지? 또 내다 팔아 이번에는 수레를 사야겠다.

물건을 실어주고 돈을 받으면 지금보다 훨씬 부자가 될 거야. 그러면 그 돈으로 덮개가 있는 멋진 수레를 살 테야. 

사람들이 더 이상 나를 업신여기지 못하겠지. 목동은 계속 꿈을 이어 나갔다. 

나중에는 왕공(王公)이나 타는 화려한 수레에 올라타 앞뒤로 북과 나팔이 행진곡을 연주하며 나아가는데, 

나팔이 갑자기 큰 소리를 내는 바람에 잠을 깼다. 풀 뜯던 양이 심심해서 메에 소리를 냈던 모양이다. 

목동과 왕공은 거리가 아득한데 꿈에서는 안 될 것이 없다. 

한 단계 한 단계는 그럴 법해도, 마지막엔 턱도 없는 황당한 얘기가 된다. 소동파의 '몽재명(夢齋銘)'에 나온다.

우리 옛 동화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달걀 한 꾸러미를 들고 장에 가던 소년이 달걀 팔아 염소를 사고, 마침내 소를 사고 집을 사는 황홀한 상상에 젖었다. 

너무 행복해서 눈을 감는 순간 돌부리에 넘어져 달걀을 다 깨고 말았다. 

꿈은 등불 심지 타는 소리를 대포 소리로 착각하게 만든다. 염소의 메에 하는 울음을 나팔소리로 듣게 한다. 

애초에 문제는 품은 생각에 있었다. 여기에 곁에서 부추기는 인(因)이 작용해 꿈을 만든다. 

꿈은 깨기 마련이고, 깬 뒤에는 허망하다. 목동의 꿈은 말 그대로 일장춘몽이다. 

하지만 소년의 깨진 계란은 어찌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