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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의 히스토리아 [220] 북극 항로

바람아님 2014. 9. 10. 10:31
 (출처-조선일보 2013.06.20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부산에서 유럽의 로테르담이나 북아메리카의 뉴욕에 가장 빨리 갈 수 있는 항로는 무엇일까? 
정답은 북극해를 가로지르는 북극 항로다. 
부산에서 로테르담까지 수에즈운하를 이용하면 항해 거리가 2만㎞지만 
북극 항로를 이용하면 7000㎞가 줄고 항해 기간도 열흘 단축된다. 
부산~뉴욕도 파나마운하를 이용하는 현재 항로보다 5000㎞ 짧아지고, 시간상으로는 6일 단축된다.

사실 근대 초부터 유럽 각국은 아시아로 가기 위한 북극 항로 개척에 매진했다. 
희망봉을 도는 항로는 항해 거리가 너무 길고 열대 바다를 항해하는 위험이 큰 데다가 포르투갈이 
이 항로를 선점한 후 독점권을 행사했기 때문에 영국이나 네덜란드로서는 접근 자체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양국은 북쪽으로 새로운 항로를 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영국은 목표로 했던 중국에 가지는 못했지만 백해(白海)까지 항해한 다음 그곳에서 육로를 통해 모스크바까지 가는 길을 열었다.

북쪽으로 가장 멀리 올라갔던 인물은 네덜란드의 빌렘 바렌츠였다. 
1596년 그의 선박은 스피츠베르겐까지 올라갔다가 노바야젬랴섬을 돌아 카라해 입구에 들어섰다. 
그런데 이곳에서 그들은 극적인 상황을 맞았다. 
바다 얼음이 천둥소리를 내며 배를 죄어오더니 급기야 배를 바다 바깥으로 밀어낸 것이다. 
선원들은 영하 60도의 추위와 굶주림으로 고통받으며 북극권에서 겨울을 났다. 
해가 아예 뜨지 않는 암흑의 겨울을 넘기고 5월이 되어서야 얼음이 녹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살아남은 선원들은 소형 보트를 만들어 탈출을 시도하여 우여곡절 끝에 9월에 암스테르담으로 귀환했으나 
바렌츠 자신은 도중에 병으로 사망했다. 
그는 항해와 모험의 기록을 월동 장소에 남겨놓고 왔는데, 이 기록은 1870년 노르웨이인들에 의해 발견되어 당시의 처참한 
상황이 알려지게 되었다.

바렌츠의 모험 이후 북쪽 항해는 포기했었다. 
그런데 400년이 지난 현재 지구온난화로 얼음이 녹으며 북극 항로가 열리기 시작했다. 
이 항로가 현실화되면 세계 해운계의 판도가 완전히 뒤바뀔 것이며, 
부산이 21세기 세계 최대의 교역 중심지 중 하나로 부상할 가능성도 있다. 
북극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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