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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기초과학연구원이 失敗作 안 되려면

바람아님 2014. 9. 17. 09:46

(출처-조선일보 2014.09.17 조장희 가천대 석학교수·미국 캘리포니아대 명예교수)


조장희 가천대 석학교수·미국 캘리포니아대 명예교수노벨상을 타기 위한 우리의 노력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극성을 부리고 있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패와 관료화가 과학마저 오염시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려된다.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기초과학연구원(IBS) 역시 과학계의 피아스코(fiasco·대실패작) 중 하나에 
불과하다고 말이 많다. 세계적 연구 기관의 기본을 무시하다 보니 너도나도 숟가락을 얹으려 나서 
아예 밥그릇을 엎어버리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된 첫째 원인은 획일적 관료화다. 
목표가 있으면 그 목표를 위해서 모든 것을 맞춰야 하는데 형식 차리기에 급급하다. 
예를 들면 기초과학연구원은 한국 대학의 정년과 맞추어 과학자를 추려내고 있다. 
이는 정년 없이 연구를 계속하는 미국과 같은 나라와 경쟁할 수 없다는 뜻이다. 
중국은 세계 석학을 유치하는 '1000인 프로젝트'에서도 연령 제한을 없앴다.

둘째는 연구비 문제다. 
기초과학연구원의 목적은 과학자들이 마음 놓고 연구할 수 있는 기반 시설과 인적 풀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이미 실험 장비가 잘 갖춰져 있는 분야는 수십억원이면 되겠지만 세계 어느 곳에도 없는 새로운 장비와 시설이 필요한 분야는
수백억~수천억원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처음에 기초과학연구원은 연구단 지원 규모를 10년간 매년 100억원 
수준으로 잡았다. 그러자 필요 이상으로 연구비를 몰아준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곳저곳에서 내 몫을 돌려달라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연구비 지원 규모를 분야에 따라 달리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는 결국 연구비 지원의 하향 평준화를 가져와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한 분야를 위축시키는 모양새가 됐다.

셋째, 연구단을 이끌 과학자를 논문 실적으로만 뽑는 것이다. 
어느 과학자가 노벨상에 가깝고 멀고를 따지는 데에는 많은 척도가 있다. 
셀(Cell)이나 네이처(Nature) 같은 학술지에 논문을 냈다고 다 노벨상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노벨상을 타기 전에 많은 세계적 인지도를 얻는 과정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세계적 과학상을 받거나 학술원 회원이 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당대에는 노벨상을 못 받을지라도 노벨상을 탈 수 있는 기반, 세계 석학들과 연결되는 고리를 만들어 줄 것이다.

넷째, 고만고만한 국내 학자들끼리 연구단장을 두고 다투는 국수주의다. 
이제는 글로벌 시대이다. 한국 국적 과학자이면 더욱 좋겠지만 그 많은 과학 분야를 한국계 과학자로만은 채울 수 없다. 
알다시피 미국은 세계 과학의 선도국이다. 미국 대학이나 연구소는 세계 과학자의 집합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세계 유수의 과학자들이 모인 곳이다. 우리도 이런 곳과 싸워야 한다. 미국뿐만 아니라 싱가포르·홍콩·독일도 과학 분야만은
완전히 개방되어 있다. 영어는 과학의 공용어다. 우리가 영어를 대학에서 특히 과학 분야에서 쓴다고 해서 대한민국의 
혼(魂)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무엇을 해내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쏟아야 한다. 
연령·국적·남녀·학벌 등 형식적 장벽을 철폐하고 오로지 더 좋은 과학을 위해서 모든 것을 집중하는 과학 정책을 
기초과학연구원을 통해서 다시 한번 새겨보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