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일사일언] 식탁 위의 축제

바람아님 2014. 10. 1. 10:16

(출처-조선일보 2014.10.01 박경옥 SERICEO 독서코칭 컨설턴트)


박경옥 SERICEO 독서코칭 컨설턴트 사진박경옥 SERICEO 독서코칭 컨설턴트


나는 세 아이를 둔 12년차 직장 맘이다. 

이 말만 들어도 그동안 어떤 전쟁을 치렀을지 직장에 다니는 여자라면 단박에 알 것이다. 

지금도 가슴을 쓸어내리게 하는 생생한 기억이 하나 있다.

막내가 걸음마를 뗄 무렵 책상 모서리에 부딪혀 왼쪽 눈 밑이 3㎝ 정도 찢어졌다. 

급히 아이를 둘러업고 응급실에서 상처를 꿰매고 집에 돌아왔는데 다음 날 상처가 퉁퉁 부어 

아이는 눈을 뜨지 못했다. 다시 병원에 갔더니 상처가 덧나 일주일 정도 입원을 하면서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사흘이나 휴가를 내고 아이 곁을 지켰지만, 더는 출근을 미룰 수 

없어 발을 동동 구르다가 결국 시골에 계신 친정 엄마를 불러올렸다.

무한 경쟁 시대의 여성들은 남성들만큼 사회적인 성공을 꿈꾼다. 

그들은 더 이상 가계에 보탬이 되겠다는 소박한 바람을 가지고 직장에 나가지는 않는다. 

그들의 욕망은 남성과 동등하거나 어쩌면 보다 거대하다. 

그 결과 가족이 제각각 다른 식탁에서 저녁을 해결하는 풍경을 어렵지 않게 목격하곤 한다. 

이런 상황에서라면 아이 때문에 사흘씩이나 회사를 빠져야 한다는 사실이 감당하기 힘겨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과의 전쟁은 그 자체로 축복이자 훈장과도 같은 시간이다. 

가족과의 저녁 시간을 포기하면서 거머쥐는 성공이 온전한 성공이라 말할 수 있을까.

칼럼 일러스트

우리의 하루는 한낱 꿈처럼 짧고도 허무하다. 

그러나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점에서 그 하루는 우주의 시간만큼이나 값지다. 

그리고 하루를 돌보는 저녁 시간은 일상의 웃음을 지켜주는 작은 축제이다. 

가족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 시간을 설레는 축제로 만들어 주는 찬란한 존재이다. 

그래서 가족과의 저녁 시간을 다른 무엇과도 바꾸고 싶지 않다

우리가 그토록 갈망하던 성공이 뿌리내릴 수 있는 자리가 어디인지를 묻고 싶은 것이다. 

가족과 함께 둘러앉는 저녁 시간이야말로 우리의 일상과 성공이 축제처럼 빛나는 순간이다.


※ 이번 달 '일사일언'은 박경옥씨를 비롯해 소설가 이응준, 고건혁 붕가붕가레코드 대표, 

    김정민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제2바이올린 부수석, 김행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장이 번갈아 집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