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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쿨(cool)함’에 대하여

바람아님 2015. 2. 9. 09:47

(출처-글쓰는 나무 2011.12.08. 데님)


‘쿨하지 못해 미안해’ 라는 UV의 히트곡이 있다. 

헤어진 이후 이별의 감정을 정리하지 못하고 못내 미련을 갖고 있는 남자가 아무런 일 없었다는 듯 잘 살고 있는 

여자친구에게 자신이 ‘쿨하지’ 못해 미안하다며 보내는, 뭔가 슬프면서도 유쾌한 가사가 특징인 곡이다. 

이렇듯 요즘 젊은이들은 ‘쿨하게’ 사랑하고 ‘쿨하게’ 살고 싶어 한다. 1990년대 세련되고,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가진 

신세대의 유행어로 치부되던 이 단어는 지금은 사회 전체를 관통하는 일상어로 자리잡았다.

 

그렇다면 ‘쿨하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뜻일까? 

영어권에서 'cool'은 ‘멋지다, 세련되다, 침착하다’ 등 대개 찬사의 의미로 쓰인다. 

반면 한국에서 쿨하다는 의미는 약간 다른 것 같다. 

"언제 어느 상황에서나 안정감과 고요함을 유지하고, 자기조절을 잃지 않으면서 독립적인 태도를 갖는 것." 

온라인 백과사전 위키피디아가 내린 한국형 '쿨(cool)'에 대한 정의다. 

상당히 긍정적인 뜻 같아 보이지만 이것이 현실에 사용될 때는 사뭇 다르다. 

부정적인 뉘앙스를 포함하여 더 광범위하고 다양한 뜻을 담고 있다. 

공적인 영역에서는 정치나 공적연대에 대한 냉소 혹은 무관심의 의미로, 

사적인 영역에서는 주변의 관계에 사사롭게 얽매이기 싫어하며 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을 뜻하는 

다소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즉 ‘쿨함’을 사용할 때 대개 ‘독립성, 주도적’이라는 긍정적 의미‘냉소, 무관심’라는 부정적 의미를 구분없이 넘나들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의 논의에서 현재 우리 사회에 자리잡은 ‘쿨함’의 정서가 어떤 사회적 배경을 갖고 있는지, 또 ‘쿨하다’는 뜻이 

어떤 양면적 특성을 지니고 있는지 살펴보겠다. 

이를 통해 그리고 우리가 지향해야 할 ‘쿨함’이란 어떤 것인지 같이 생각해보는 기회를 공유했으면 한다. 

 

먼저 ‘쿨함’의 유행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와 도시의 발달, 그리고 인터넷, SNS 같은 통신매체의 발달과 연관이 있다. 

자본주의가 발달과 도시의 확대가 인간소외현상을 가져왔다는 것은 잘 알려진 바다. 

에리히 프롬은 '소유냐, 존재냐‘에서 이러한 현대인의 소외현상을 ‘풍요속의 빈곤’이라고 표현했다. 

근대화 이후 개인의 자율성에 기반한 선택의 폭과 삶의 영역이 대폭 확대된 가운데 오히려 인간 관계는 피상적이고 

이익관계에 기반하게 되면서 외로움과 고독을 더 느끼게 됐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1950년대 이후 정부주도의 압축적인 

경제성장을 경험하면서 농촌공동체는 급격히 해체되고 사람들은 도시로 몰려들었다. 

거의 평생동안 같은 동네에서 매일 같은 얼굴을 보며 집에 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까지 알던 관계에서 

하루하루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과의 불연속적이고 계약적인 관계로 바뀌게 된 것이다. 

성장만을 강조한 채 복지와 분배는 뒤로 미루다 보니 각 개인은 자연히 개인의 생존을 국가가 제공하는 법이나 복지에 

의지하는 대신 혈연과 지연 등 전통적이고 개인적인 관계에 의존했다. 

가족 외에 타인은 결코 믿을 수 없는 ‘남’이며 나의 성공의 기준을 가늠하는 비교의 대상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여간해서는 가족 외 이웃에게는 정을 주지 않고 그저 서로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예의를 지키는 

‘쿨한’ 관계가 돼버렸다.(요즘엔 이웃에 누가 사는지도 모를 정도다.)

 

여기에 최근 인터넷과 휴대폰, SNS의 발달은 관계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꿀 정도로 혁명적이었으며 그 파급력은 지금도 

커지고 있다. 얼굴을 보지 않고도 인터넷이라는 가상공간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인간관계에 대한 사람들의 사고를 

바꿔버렸다. 여기에 ‘빨리빨리’로 대표되는 한국 특유의 역동적이고 신속한 문화로 인한 인터넷과 휴대폰의 급속한 보급, 

그리고 최근 SNS의 발달은 개인의 표현의 범위를 확대한 동시에 인간관계에 있어서 가상공간의 영역을 한층 확대시켰다. 

이렇듯 워낙 빠른 시간에 일어난 압축적인 변화이기 때문에 한국사회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 더 전근대, 근대, 탈근대가 

서로 왕성하게 부딪히며 공존하는 이른바 ‘비동시성의 동시성 현상이 두드러진다. 

SNS의 경우 아직은 젊은 층에서 주로 향유하는 문화라 할 수 있겠으나 스마트폰의 급속한 보급률과 정치인과 기업인 등 

기존 기성세대들의 빠른 적응에 비춰 볼 때 SNS의 보급 역시 시간문제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런 변화는 ‘쿨함’과 무슨 연관이 있는가? 결국 이런 SNS의 성장은 현대사회의 소외 현상과 깊은 연관이 있다. 

급속히 변화되는 사회의 중심에서 인간이 밀려날수록 인간과의 네트워크를 갈망하는 요구가 커지고 이러한 흐름이 

SNS와 같은 인간의 관계망을 기반으로 한 온라인 서비스를 찾게 만드는 건 아닐까? 

이를 김난도 교수(서울대 소비자아동학부)는 

일상을 온라인과 공유하는 현상을 “거대한 시장경제 체제에서 소외되는 과정에서 느끼는 상실감과 좌절감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공감하는 것을 통해 해소하려는 의도”라고 해석하며 

온라인을 통한 인간관계는 개방성을 통해 확장돼가지만 현실에서의 인간관계도 그만큼 진전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고 지적한 바 있다. SNS가 인간관계를 넓혀주지만 정작 얕게 만든다는 것이다. 

오프라인에 비해 온라인에서의 만남은 직접 얼굴을 보지 않고 음성 대신 주로 문자를 사용한다는 면에서 긴장감이 훨씬 덜하다.

잘 정제된 적당한 거리에서 대화를 주고받는다면 헤어진다 한들 별다른 후유증이 남지 않는다. 

관계를 맺기 쉬운 반면 끊기도 쉽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성격의 만남이 대부분을 차지할 때 만남과 헤어짐에 있어 ‘쿨한’ 관계가 보편화되는 것이다. 

타인과 부딪히면서 친밀한 관계를 맺으려 하기보다 애써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대인 관계로 인한 

상처로부터 자신을 지킨다. 이런 적당한 거리감은 개인의 원자화와 고립을 더욱 심화시킬 뿐이다.

 

한국사회의 특성과 좀 더 연관시켜 보자면 ‘쿨함’은 시대적 필요이기도 하다. 

한국 사회는 상당히 스트레스가 많은 사회라고 평가된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화병’(hwa-byung)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에 이 단어가 한글발음 그대로 등재된 것은 잘 알려진 바다. 

그 결과 극단적인 반응이 나오기 쉬운데, 그 예로 아직도 도로에서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것이 상식이고 

대학생들이 시위를 할 때도 최소한 머리를 밀고 단식 투쟁에 들어가는 건 기본이다. 

이렇게 소위 ‘욱하기 쉬운’ 사회에서의 ‘쿨함’은 이러저리 부딪히는 인간관계에서 초래되는 어설픈 과잉감정을 관리, 조절하기 

위해 이성을 기반으로 한 냉소주의를 의지적으로 작동시키는 일종의 방어기제다. 

‘쿨함’ 속에 숨어있는 역설적 초연함은 대인관계에서 오는 상처로부터 자신을 방어함과 동시에 경쟁적이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현대사회 속에서 겪는 좌절감과 박탈감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장치이기도 하다. 거리를 둔다는 것은 자기 자신을 

객관화시켜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이성적 초연함이 과잉작동했을 때 오는 정서적 냉랭함이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는 감성을 기반으로 서로의 선을 넘나들며 발전해야 하건만 이성으로 애써 밀어내며 

안정선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제 ‘쿨함’의 양면적 특성을 살펴보자. 

서론에 언급한 ‘쿨함’의 정의를 다시 인용하면, 

"언제 어느 상황에서나 안정감과 고요함을 유지하고, 자기조절을 잃지 않으면서 독립적인 태도를 갖는 것" 이다. 

여기서 핵심 키워드는 ‘독립성’과 ‘적당한 거리감’이다. 

자신의 신념을 바탕으로 한 주체성을 굳건히 한 채 세상과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한다면 시민들을 현혹하고 선동했다는 

혐의를 받고서도 ‘악법도 법’이라며 쿨하게 독배를 마시고 죽은 소크라테스처럼 역사에 남는 ‘성인(聖人)계의 쿨가이’가 될 

수도 있다. 이런 건강한 쿨함은 자신을 속박하는 사회적 편견에 대한 초연함으로, 자신에 대한 단단한 확신이 있을 때만이 

가능하다. 

스티브 잡스가 굳이 비싼 등록금 내고 다닐 만한 가치를 못 느껴 대학을 쿨하게 중퇴하고 애플을 창업해 ‘IT계의 신화’로 

남은 것이나, 서태지가 ‘학벌’을 어떤 계급장보다 중요시하는 한국사회에서 굳이 대학에 가지 않고 음악으로 승부하여 

‘문화 대통령’이란 칭호를 받은 것 역시 대학에 나와야만 대접받는다는 세상의 편견을 자신만의 콘텐츠로 보기 좋게 깨버린 

예다. 

그러나 건강한 주체성 없이 단지 자존심을 지키려는 욕심에서 상대방에게 상처받기 싫고 

관계에서 비롯되는 온갖 갈등을 회피하기 위해 거리를 두는 것은 아무 것에도 자신을 걸지 않았기에, 

결과적으로 아무 것도 얻을 수 없는 허망한 삶이다.

 “내가 해야 할 일은 한 가지 밖에 없었다. 모든 사물을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 것. 

모든 사물과 나 사이에 적당한 거리를 둘 것. 그것뿐이었다.”고 말하는 

하루키의 소설 ‘상실의 시대’의 주인공 와타나베는 자유분방한 듯 쿨해 보이지만 어딘가 공허하다. 

모든 것에 적당히 거리를 둔 채 어느 곳에도 속해 있지 않고, 어떤 것도 간절하지 않은 삶. ‘너의 말이 그냥 나는 웃긴다. 

그냥 그냥 그냥 나는 웃긴다’라며 주변을 냉소하는 가수 이효리의 노래 가사처럼 그것은 ‘그냥 웃긴’ 삶일 뿐이다. 

 

고대 문화는 여러 가지 면에서 현대 문화보다 감정과 본능에 충실한 사회였다. 

현대인들의 장례 문화가 가능한 한 슬픔을 절제한 채 조용히 눈물을 훔치며 애도하는 방식인 것과는 달리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족이나 친구가 죽을 때 옷을 찢고 머리에 재를 뿌리는 형식으로 자신의 슬픔을 표현했다. 

계급사회였기에 종교적 의식이나 신분을 확인하는 차원의 예의는 지금보다 더 발달했다고 할 수 있으나 

지금처럼 세분화되고 복잡한 에티켓과 매너문화를 갖고 있지는 않았다. 

오늘날 우리와는 달리 분노 같은 인간적인 감정을 사회적 체면 때문에 숨길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그들의 감정은 거칠지만 꾸밈없는 모습으로 드러났던 것이다. 그들이 현대인의 시각으로 보기엔 무지막지한 처벌과 

잔인한 학살이 행해지는 야만적인 시대에 살았던 반면, 우리는 좀 더 온건하고 세련된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감정을 다른 사람과 자신에게 숨기는 데에는 그들보다 우리가 훨씬 교묘하다. 

소위 가면을 쓰고 ‘척’하는 데 능숙하다는 것이다. 늘 감정을 배제한 채 초연한 척, 시크한 척 쿨하게만 살아간다면 

그것은 무엇보다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지 못한 것이 된다. 

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났는데 거부당하는 것이 두렵고 찌질하게 보이기 싫어 진심을 표현하지 못한다면 

소중한 인연을 놓치는 것이다. 친구에게 서운한 것이 있어도 부딪히는 게 싫어서 아무렇지 않은 척 내색하지 않는다. 

부담되는 곤란한 부탁은 받지도 않고 물론 하지도 않는다.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순간에도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고 

계속 의지하게 될까봐 주저한다.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으니 일단 마음 아플 일은 없다. 관계는 유지되겠지만 더 깊어지지는 않을 것이며 

따라서 내게 소중한 무엇이 생기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뜨거운 피가 흐르는 인간이 마냥 쿨하고 나이스한 관계만 유지하기란 불가능하다. 

그것은 ‘쿨’하다 못해 ‘콜드’한 것이다. 

그러다 외로움이란 추위 때문에 안 그래도 각박하고 살벌한 인생 한복판에서 얼어죽을지도 모른다. 

남들이 모두 쿨하게 살아간다고 해서 나마저 쿨하지 못해 미안해할 필요는 없다. 

공지영 작가가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말한 것처럼 열심히 마음 주다가 상처 받는 건 창피한 게 아니며, 

정말로 진심을 다하는 사람은 상처도 많이 받지만 극복도 잘하는 법이다. 

파스칼은 그의 저작 팡세에서 ‘인간은 그가 학자라고 불리기 전에, 성직자라고 불리기 전에, 무엇보다 진실한 인간이라고 

불려야 한다’ 라고 말했다. 

진정한 ‘쿨함’은 때론 바보 같고 외골수 같이 보이더라도 타인의 시선에 얽매임 없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신념과 감정에 

충실한 것이다. 무엇보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일 줄 아는 것이다. 

이렇듯 자신을 진솔하게 표현할 줄 아는 것, 누가 뭐래도 나답게 사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쿨함’의 미덕이 아닐까.


- 2011. 12. 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