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敎養·提言.思考 1406

이창용 또 작심발언...“대학서 지방 학생들 80% 뽑으면 수도권 집중 폐해 막을 것”

매일경제  2024. 10. 30. 20:45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국제적인 시각을 갖는 것에 대한 중요성과 대학에서 학생을 선발할 때 성적순이 아닌 지역별로 학생을 뽑아야 한다는 의견을 재차 밝혔다. 이 총재는 30일 서강대학교에서 ‘글로벌시대 세상을 이끄는 사람들’을 주제로 특별강연을 했다. 그는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현실 참여에 대한 관심이 생기면서 국제기구에서 일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당시 내가 아는 경제학이란 건 교과서에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며 “20년 넘게 경제학을 했는데 세상에 별로 도움이 안 되는구나”하고 느꼈다고 말했다. 이날 이 총재는 수도권 집중화를 해결하는 데 한은의 역할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도 의견을 밝혔다. 그는 “서울로 올라오는 트렌드가 중학교 때부..

[백영옥의 말과 글] [376] 관대함에 대하여

조선일보  2024. 10. 19. 00:05 마트의 시식 줄에 서 있던 친구에게 “먼저 드세요!”라며 자신이 받은 컵을 건네던 앞사람 얘길 들은 적이 있다. 고마움이 분노로 바뀐 건 종이컵에 담긴 고기를 본 순간이었다. 컵에는 커다란 비계가 박힌 고기가 들어 있었다. 친구는 자기 몫이 됐을 고기를 가로챈 앞사람에게 한마디 해주고 싶었지만 옆에 아이가 있어 화를 참았다. 어른 보폭으로 한 걸음 남짓한 수로를 건너지 못하는 여동생을 일곱 살 남짓한 오빠가 자기 몸을 눕혀 등을 밟고 건너게 하는 영상을 봤다. 내가 놀라자 함께 영상을 본 친구는 “평소 아빠가 엄마에게 하는 행동을 본 거야. 여러 번 봤겠지. 아이는 자기가 본 걸 따라 하거든” 하고 답했다. 철학자이자 예술가인 칼릴 지브란은 관대함을 “할 수..

[백영옥의 말과 글] [375] 졌지만 이긴다는 것

조선일보  2024. 10. 12. 00:18 ‘흑백 요리사’의 최종회를 봤다. 흙수저 무명 요리사와 백수저 유명 요리사 사이에서 우승자가 결정되는 순간, 개인적으로 이 모든 경연이 ‘졌지만 이기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압축 서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승자보다 오히려 패자에게 훨씬 더 눈길이 갔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면이 흥미로웠던 건 기존의 클리셰를 뒤집기 때문이다. 이미 가진 게 많은 사람과 잃을 게 없는 사람 중 누가 더 리스크가 클까. 위험할 수도 있는 과감한 모험을 선택한 건 무명의 신인이 아닌 기득권자인 백수저 셰프였다. 많은 성취를 이룬 사람은 왜 매번 성공만 하는 것처럼 보일까. 이 성공의 착시 현상은 왜 나타날까. 나는 그것이 실패를 대하는 그들 특유의 태도에 있다고 믿는다. 이런 태..

사라진 한글…"500년 전 훈민정음, 중국어 발음 더 정확하게 썼다"

중앙일보  2024. 10. 8. 21:09 " 중국어 학자인데 왜 훈민정음을 연구하세요? " 첫 질문에 환갑의 교수는 훈민정음 언해본을 펼친 뒤, 낯설면서 익숙한 ‘ㅈ, ㅊ, ㅅ’, ‘ㅅ, ㅆ, ㅈ’ 글자를 보여줬다. ㅈ(지읒), ㅊ(치읓), ㅅ(시옷) 좌우획 중 왼쪽을 늘어졌다면 혀끝이 윗니 뒤에 닿는 엷은 소리인 치두음(齒頭音), 오른쪽으로 늘어졌다면 혀끝이 아랫잇몸에 닿는 두터운 소리인 정치음(正齒音)으로 불리는 옛 한글 자모다. 쓰임새가 사라졌다고 가치가 사라졌을까. “중요한 가치를 지닌 옛 한글에 주목할 때”라고 답한 심소희 이화여대 중어중문학과 교수를 지난 4일 만났다. 심 교수는 고서에 있는 옛 한글을 주목한다. 옛 한글이 동아시아사 500년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연구가치가 높은 고서는 ..

[서승욱의 시시각각] 차라리 내각제가 낫지 않을까

중앙일보  2024. 10. 8. 00:47 일본 자민당 장기 집권의 배경엔 경쟁과 포용 통한 당 내 정권교체 위기의 한국 정치, 변화 모색해야 일본 정치는 전 세계적으로 사례가 적은 ‘1개 정당 우위 체제’다. 1955년 창당된 자민당이 정권을 내려놓은 건 1993~94년 비(非)자민·비(非)공산 연립정권 때와 2009~2012년 민주당 정권 시절뿐이다. 대신 당 내부적으로 여러 파벌이 대립하고 경쟁하며 정권을 교대로 담당해 왔다. 기시다 정권 때 터진 정치자금 스캔들로 이제 대부분의 파벌은 와해의 길을 걷고 있다. 그러나 헤게모니 견제와 당내 정권 교체 효과 등 파벌의 순기능도 솔직히 없지 않았다. 자민당이 지향해 온 ‘타원의 정치’ 철학도 주목할 만하다. ‘원은 중심이 하나, 타원은 중심이 두 개,..

[백영옥의 말과 글] [374] 사이버 멍석말이

조선일보  2024. 10. 4. 23:52 관심이 돈인 세상이다. 관심경제, 관종, 어그로 같은 단어 역시 일상적으로 쓰인다. 하지만 내 주위에는 조용히 살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다. 방송이나 언론의 출연 요청을 거절하거나 정치권의 콜을 고사하는 식인데, 모두 지금의 일상이 소중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흥미로운 건 그들 모두에게서 등장한 ‘나락으로 떨어지기 싫다’는 말이었다. 나락은 불교에서 지옥을 뜻하는 여러 이름 중 하나로 산스크리트어인 ‘나라카(Naraka)’에서 왔다. 몇 년 전부터 캔슬 컬처(cancel culture)라는 말이 등장했다. 한국에선 주로 손절 문화를 뜻하고, 어떤 인물이나 집단의 언행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차단하거나 구독을 취소하는 행동으로 나타난다. 파급력이 큰 유명인의 발언과..

[백영옥의 말과 글] [373] 할 수 있는 일을 할 때

조선일보  2024. 9. 27. 23:52 영화 ‘타이타닉’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주인공들의 사랑이 아니었다. 대탈출의 아비규환 속에서도 끝까지 배에 남아 연주를 멈추지 않던 연주자들이었다. 실제 이런 일은 1992년 20만명 이상의 희생자를 낸 보스니아 분쟁에서도 일어났다. 총알이 빗발치던 전쟁터에 덥수룩한 수염의 한 남자가 가방을 든 채 나타났다. 빵을 사기 위해 모인 사람들 머리 위로 폭격이 가해진 다음 날이었다. 남자의 이름은 베드란 스마일로비치, 그가 가방에서 꺼낸 건 첼로였다. 사라예보 관현악단의 수석 첼리스트였던 그는 전쟁과 가장 어울리지 않는 연미복 차림으로 아다지오 G단조를 연주했다. 연주는 같은 시각 같은 자리에서 22일간 이어졌다. 빵가게 폭격으로 사망한 22명 희생..

[백영옥의 말과 글] [372] 나를 돌본다는 것

조선일보 2024. 9. 20. 23:52 내가 산책하는 공원에는 저녁이면 청년 한 무리가 모인다. 인사 외에 거의 말이 없는 이 모임은 러너스 클럽인데, 공원 트랙을 한 바퀴 뛰면 별 대화 없이 각자 흩어진다. 혼자 있으면 외롭고 같이 있으면 괴로운 시대의 MZ식 해법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노리나 허츠의 책 ‘고립의 시대’에는 감옥을 숙식과 돌봄이 있는 공동체로 인식해 일부러 경범죄를 저지르는 일본 노인 이야기가 나온다. 영국에는 외로움부 장관이, 일본에는 고립을 담당하는 장관이 있다. 이미 외로움이 국가 문제로 인식된다는 방증이다. 외로움은 별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자기 돌봄과도 직결된다. 삶에 가장 중요한 인간관계는 타인이 아닌 자신과 이룬 관계다. 하지만 나를 가장 소외시키는 게 자신인 경우가 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