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敎養·提言.思考 1406

[백영옥의 말과 글] [383] 인생의 맛

조선일보  2024. 12. 6. 23:52 며칠 전, 샤인 머스캣을 먹는데 조금도 달지 않아 의아했다. 생각해보니 조금 전 디저트로 망고가 든 생크림 케이크를 먹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내가 느끼는 세상은 상대적이다. 성과급 100만원에 뛸 듯이 기뻐하다가, 옆자리 동료의 보너스가 자기보다 두 배 많다는 사실을 알면 금세 상실감에 빠지는 게 사람이다. 어째서 우리는 이곳 아닌 저곳, 여기보다 저기를 꿈꾸는 걸까. 사람들은 대개 행복해 보이는 타인의 삶을 더 동경한다. 모두에게 이미 지나간 과거지만 한 사람에겐 불행의 이유로, 다른 한 사람에겐 행복의 이유로 다가온 건 그것을 바라보는 시각 때문이다. 우리는 과거가 고착되어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현재를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과거는 끊임없이 변한다. 그..

[백영옥의 말과 글] [382] 불안의 해독제

조선일보 2024. 11. 30. 00:04 중학생 때, 학교에서 아침마다 제논, 아우렐리우스, 세네카의 명상록을 틀어줬다. 문장 속에는 죽음을 늘 생각하고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고 절제하라는 권고가 가득했다. 돌아서면 배고프고 공부하기도 바쁜데 죽음을 생각하라는 말이 당시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몇 년 후, 당대의 거상이었던 제논이 난파한 배 때문에 한순간 재산을 잃었다는 걸 알게 됐다. 스토아 철학의 시작이 지독한 불행에 빠진 한 사람의 불안 다스리기였다는 것도. 번개로 부러진 거목은 숲지기에게 불운이지만 좋은 목재를 찾아 나선 목수에게는 행운이다. 결혼 생활 역시 지겨움으로 보면 고통이지만 익숙함으로 보면 안락함이다. 많은 일에는 관점과 해석이 있을 뿐이다. 그것이 제논이 “배는 난파..

[SNS세상] "하늘은 못 날고 마일리지만 날린다"…소비자 아우성

연합뉴스  2024. 11. 28. 05:50 코로나19로 연장한 항공사 마일리지 만기 연말에 몰리며 '소진 대란' 마일리지 항공권은 '하늘의 별 따기'…쇼핑몰은 '품절'  "하늘은 못 날고 마일리지만 날린다." 항공사 마일리지가 소멸하는 연말을 앞두고 소비자들이 마땅한 사용처를 찾지 못해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연말 마일리지 소진 대란은 해마다 반복되지만, 올해 특히 불만이 나오는 것은 코로나19 기간 최대 3년까지 연장한 마일리지 만기가 동시에 다가왔기 때문이다.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만기가 도래한 마일리지를 보유한 소비자를 중심으로 "쓸래도 쓸 수가 없다", "매진 아니더라도 딱히 살 것도 없다" 등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특히 아시아나 마일리지 샵에서 뭐라도 구매하려면 '피켓팅'(피..

[백영옥의 말과 글] [381] 미안하다는 말

조선일보 2024. 11. 22. 23:52 잘못을 하고도 사과하기 꺼리는 성격 때문에 이혼 직전까지 간 독자 사연을 접한 적이 있다. 굳은 결심에도 변화가 어려워 고민이라는 그에게 수전 데이비스의 책 ‘감정이라는 무기’의 한 장면을 얘기했다. 남편과 심한 다툼 후, 화가 난 저자가 가출을 감행하는데, 결국 몇 시간 동안 자신에게 익숙한 집 근처만 맴돌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장면이었다. 우울, 분노, 관계 때문에 힘들고 지칠 때, 우리는 자신에게 익숙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든다. 이것을 ‘감정의 경직성’이라 부르는데, 사람은 믿으면 안 되고, 사람은 변하지 않고, 사과하면 상대가 나를 만만히 볼 것이란 생각 등이 이에 해당한다. 즉 습관이라는 익숙한 어제의 틀로 오늘의 낯선 곤란에 대처하는 것이다..

[백영옥의 말과 글] [380] ‘비교지옥’을 끝내는 적당한 삶

조선일보  2024. 11. 16. 00:08 이스털린의 역설이란 말이 있다. 연봉이 늘어도 더 이상 행복감이 늘지 않는 현상으로 기준은 7만5000달러다. 그런데 최근 “행복의 한계 효용은 없고, 벌수록 행복하다”는 블룸버그 사설을 보니 생각이 많아졌다. 정말일까. 갓 구운 케이크라도 첫입 이후 만족은 줄기 마련 아닌가. 집이나 연봉 등 익숙해지면 상한의 기준이 느는 게 사람 마음 아닌가. 그런 이유로 심리학자들은 쾌락 적응을 인간 행복의 장애물로 규정했다. 자료들을 읽다가 이스털린이 주목한 게 7만5000달러라는 절대적 소득이 아니라 상대적 가치라는 걸 깨달았다. 연봉 20만달러를 받아도 주위 모든 사람이 같은 돈을 벌면 행복감이 더 올라가진 않는단 뜻이다. 남보다 조금이라도 더 버는 게 행복의 기준..

[백영옥의 말과 글] [379] 고통을 누르는 다른 고통

조선일보  2024. 11. 8. 23:52 김연수의 단편 ‘푸른색으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에는 실연의 상처가 너무 커서 치과 의사에게 통증이 있다고 거짓말한 후, 멀쩡한 생니를 뽑는 남자가 등장한다. 남자는 생니를 뽑아내는데도 하나도 아프지 않아서 운다. 그는 온 몸을 바쳐 사랑했던 여자가 떠난 뒤 남은 고통이 너무 컸기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문득 고통이란 더 큰 고통으로만 잊히는 감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 중 어느 것이 더 아플까. 명확한 건 1기에서 4기까지 분류하는 암에 비해, 눈에 보이지 않는 이별이나 배신의 상처는 쉽게 가늠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정신적인 고통에는 오로지 육체적 고통이라는 한 해독제만 있다”고 말했다. 마음이 복잡하고 우..

베이징대, 3년째 아시아 대학 평가 1위… ‘톱10′ 중 한국은 연세대 1곳

조선일보  2024. 11. 6. 21:58 조선일보와 영국 글로벌 대학 평가 기관 QS(Quacquarelli Symonds)가 공동으로 실시한 ‘2024 아시아 대학 평가’에서 중국 베이징대가 3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우리나라 대학 중에선 연세대가 9위로 유일하게 ‘톱 10′에 들었다. 국내 대학 절반이 작년보다 순위가 뒷걸음쳐 국제 경쟁력 약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위 베이징대에 이어, 2위 홍콩대, 3위 싱가포르 국립대, 4위 싱가포르 난양 공대까지 모두 작년과 순위가 같았다. 작년 7위였던 중국 푸단대는 5위로 올라섰고, 4위였던 중국 칭화대는 7위로 떨어졌다. 올해 평가는 25국 대학 984곳 순위를 매겼다. 우리나라 대학 101곳 가운데 47곳이 순위가 떨어졌다. 25곳은 제자리걸음을 ..

[백영옥의 말과 글] [378] 미루기의 심리

조선일보  2024. 11. 1. 23:50 아침 일찍 일어날 방법이 없겠냐며 법륜 스님의 지혜를 구하는 불자의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스님이 “그냥 일어나라”고 말하자, 불자의 “백약이 무효”라는 답이 돌아왔다. 스님이 다시 말하길, 자고 있는데 밖에서 “불이야!”라고 사이렌이 돌아가면 안 일어나겠냐는 것이다. 새벽에 일어나면 매일 수천만 원씩 준다고 하면 피곤해도 일어날 것이란 말도 덧붙였다. 즉 입으로는 일어나고 싶다고 말하지만 실제는 일어나기 싫어서 안 일어나는 게 문제의 본질이라고 했다. 하기 싫은 근력 운동을 한 지 두 달째 되던 날 “언제쯤 근력 운동이 좋아져요?”라고 묻는 내게 트레이너가 “회원님은 글 쓰는 게 좋으세요?”라고 반문해 놀랐다. 고개를 저으며 “20년 동안 한결같이 쓰기 싫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