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아트칼럼 1374

[미술 다시 보기]지도자의 포용력과 관용 정신

서울경제 2023. 1. 26. 08:00 수정 2023. 1. 26. 14:03 신상철 고려대 문화유산융합학부 교수 ‘알렉산더 대왕에게 무릎 꿇은 페르시아의 왕비들 루이 14세 궁정의 수석 화가 샤를 르브룅은 1661년 ‘알렉산더 대왕에게 무릎 꿇은 페르시아의 왕비들’을 제작했다. 로마의 역사가가 남긴 알렉산더 대왕에 관한 기록을 기반으로 그려졌기에 이 그림은 역사화로 분류된다. 이수스 전투에서 패배한 페르시아의 군주 다리우스 3세가 황급히 도주한 후 적진에 남겨진 그의 가족들이 알렉산더를 만나 자비를 청하는 장면이 이 작품 속에 묘사돼 있다. 기록에 의하면 알렉산더의 오랜 친구이자 참모였던 헤파이스티온이 먼저 페르시아 왕비들의 거처를 방문했다. 적장의 가족들을 안전하게 보호해주겠다는 상관의 약속을 전..

진정한 친구[이은화의 미술시간]〈251〉

동아일보 2023. 1. 26. 03:01 수정 2023. 1. 26. 03:40 푸른색 우체부 옷을 입은 남자가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구레나룻과 양 갈래로 나뉜 북슬북슬한 턱수염이 인상적이다. 초록색 배경에는 꽃들이 그려져 있다. 그림 속 남자 이름은 조제프 룰랭. 아를 시절, 빈센트 반 고흐에게 편지를 배달해 주던 우체부다. 고흐는 그의 초상화를 무려 여섯 점이나 그렸다. 과연 그는 어떤 사람이었기에 고흐의 그림 속 주인공이 되었을까? 고흐가 화가 공동체를 꿈꾸며 남프랑스 아를에 도착한 건 1888년 2월. 룰랭은 아를에 있는 역에서 근무하는 우체부였다. 고흐는 네덜란드에 있는 동생 테오에게 그림이나 편지를 보내기 위해 자주 우체국에 갔다가 그와 친해졌다. 룰랭은 열렬한 사회주의자이자 가족에게 헌신..

[C컷] 얼음에서 자라는 나무는 어디일까?

조선일보 2023. 1. 22. 16:32 창작의 순간 19. 인간과 사회를 풍경으로 비유하는 콜라주 작가 원성원 꽁꽁 얼어붙은 하얀 빙벽 사이로 나무 한 그루가 초록의 가지를 뻗고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나무 줄기를 타고 이끼가 자란다. 제주도에나 볼 법한 나무다. 얼음 기둥을 뒤로 한 왼쪽의 언덕은 겨울이 아니라 한 여름 초록의 숲이다. 계절을 알 수 없는 이 기이한 풍경은 대체 어디일까? 사람들은 사진이 현실의 모습을 찍어서 보여준다고 믿는다. 아니면 그림(drawing)을 사진처럼 실감나게 묘사했거나, 또는 사진을 합성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기저기서 사진을 오려와 한 곳에 붙이는 콜라주(collage)는 미술로 여겨지기 때문에 사진이 가진 현실감(reality)은 사라지고 감상자는 어려워한..

“내 천사여” 편지 사방팔방엔 ‘뽀뽀’…어느 무연고자의 죽음[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이중섭 편]

헤럴드경제 2023. 1. 21. 05:31 아고리, 나의 아고리 편집자주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본 뒤 관련 책과 영화를 모두 찾아봤습니다. 잘 그린 건 알겠는데 이 그림이 왜 유명한지 궁금했습니다. 그림 한 장에 얽힌 이야기가 그렇게 많은지 몰랐습니다. 즐거웠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달라졌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이 경험을 나누고자 글을 씁니다. 미술사에서 가장 논란이 된 작품, 그래서 가장 혁신적인 작품, 결국에는 가장 유명해진 작품들을 함께 살펴봅니다. "통과. 가도 좋소." 1953년. 이중섭은 침을 꼴깍 삼켰다. 입국심사 직원에게 가짜 선원증을 돌려받았다. "고맙습니다." 다행이다…. 중섭은 그제야 긴장을 풀었다. 짐가방을 꾸역꾸역 들었다. "아, 그런데 잠깐." 직..

[박일호의미술여행] 다시 한 해를 보내며

세계일보 2023. 1. 20. 21:46 해질 무렵 항구 풍경이다. 정박한 배는 이미 돛을 내렸고, 멀리서 배가 서둘러 들어오고 있다. 부푼 마음으로 아이까지 데리고 나온 여인들이 항구 한쪽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다. 사람들이 건너편 건물 앞과 여기저기 삼삼오오 모여 얘기를 나누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술에 취한 듯 목소리를 높이는 남정네도 보이고, 몸싸움을 벌이는 사람들까지 뒤섞여 저녁 풍경이 어수선하다. 프랑스 화가로 로마에서 주로 활동했던 클로드 로랭의 고전주의 풍경화 작품이다. 로랭이 많은 사람의 다양한 모습과 풍경을 한 장의 그림에 담았지만 그렇게 산만해 보이지 않는다. 오른쪽 정박한 배의 깃대들과 건너편 건물의 수직선이 그림의 세로축을 이루고,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수평선이 그림의 가로축이 ..

고개 숙인 남자[이은화의 미술시 간]〈250〉

동아일보 2023. 1. 19. 03:01 ‘생각하는 사람’을 주제로 작품을 만든 건 오귀스트 로댕만이 아니었다. 로댕과 동시대를 살았던 미국 화가 토머스 에이킨스도 같은 제목의 초상화를 그렸다. 세로로 긴 캔버스에는 실물 크기의 남자가 묘사돼 있다. 검은 정장을 입은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시선을 아래로 떨구고 서 있다. 도대체 그는 누구고 무슨 생각을 하는 중일까? (중략) 그림의 원래 제목은 ‘루이스 켄턴의 초상화’였다. ‘생각하는 사람’이란 제목은 화가 사후에 그의 부인이 추가했다. 자신의 동생을 불행하게 만든 남자에게 로댕의 걸작과 동일한 제목을 붙이다니! 그가 평생 고개 숙인 채 삶을 성찰하기를 바랐던 건 아니었을까. https://v.daum.net/v/20230119030118334 고개 숙..

정찰제 도입에 광고까지… 초상화 대중화 이끈 채용신[윤범모의 현미경으로 본 명화]

동아일보 2023. 1. 17. 03:01 “왜 우리나라 박물관에서는 여성 주인공의 그림을 볼 수 없습니까?” 나는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 서양에 가면 박물관에서 여성을 그린 그림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우리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심지어 여성 나체화도 많지 않느냐는 것이다. 1980년대 미국 뉴욕에서 여성 화가들의 시위를 보았다. “미술관에서 여성이 대우 받으려면 옷을 벗어야 하는가.” 누드 그림의 모델은 여성이지만 화가는 남자라는 지적이다. 그래서 여성 작가들은 목소리를 높였다. 미술관에서 대우를 받으려면 단지 나체 모델뿐인가. 17세기 숙종 때의 일화이다. 임금님은 왕비의 자태를 초상화로 남기고 싶었다. 초상화 제작은 대개 도화서 화원의 일이었다. 하지만 국왕의 왕비 초상화 제작 꿈은 ..

3번 유산·35번 수술의 악몽…그럼에도 "인생이여 만세"[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프리다 칼로 편]

헤럴드경제 2023. 1. 14. 05:31 고통의 여왕 편집자주 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를 본 뒤 관련 책과 영화를 모두 찾아봤습니다. 잘 그린 건 알겠는데 이 그림이 왜 유명한지 궁금했습니다. 그림 한 장에 얽힌 이야기가 그렇게 많은지 몰랐습니다. 즐거웠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은 달라졌다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이 경험을 나누고자 글을 씁니다. 미술사에서 가장 논란이 된 작품, 그래서 가장 혁신적인 작품, 결국에는 가장 유명해진 작품들을 함께 살펴봅니다. 1925년, 열여덟 살의 프리다 칼로는 버스 유리창에 머리를 박았다. 굉음이 울렸다. 전차와 맞부딪힌 버스가 앞쪽으로 크게 기울었다. 좌석에서 튀어 나간 프리다는 사정없이 굴렀다. 피를 쏟았다. 철근 가락이 옆구리를 뚫고 들어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