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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사일언] 오래된 집이 좋아

바람아님 2015. 8. 5. 08:56

(출처-조선일보 2015.08.05 팀 알퍼·칼럼니스트)


팀 알퍼·칼럼니스트영국인들은 자신이 사는 집에 감정적 애착을 강하게 느끼는 경우가 많다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 E M 포스터의 '하워즈 엔드(Howard's End)', 
제인 오스틴의 '노생거 사원(Northanger Abbey)'처럼 
유명한 영국 소설들은 주인공이 사는 집 이름에서 따왔다.

한국의 한 케이블 채널에서 요즘 영국 최고의 인기 드라마인 '다운튼 애비(Downton Abbey)'를 방영하는 
것을 우연히 보게 됐다. 이 드라마의 제목 역시 주인공인 귀족 가문이 사는 집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방송사에선 이 드라마를 방영하면서 '다운튼 패밀리의 비밀'이란 제목으로 바꾸어놓았다. 
영국인들은 보통 그들이 사는 집을 가족의 중요한 일부이거나 심지어 구성원의 하나로 여긴다. 
하지만 한국에선 그런 정서를 모르기 때문에 '다운튼 패밀리의 비밀' 같은 제목으로 바꾸는 것 같다. 
내가 보기에 한국인들은 어떤 집에 사는 가보다 어느 지역에 사는가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다.

한국인 중에는 영국인들이 수백년 된 집에서 사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하는 이들이 있다. 
영국인들은 오래된 집일수록 더욱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긴다. 그 시간만큼 자신의 가문(또는 가족)이 그 집에 살았다는 것이고, 
그런 역사는 명예이기 때문이다. 영국인들은 대체로 아파트에 사는 걸 싫어한다. 아파트에는 정원이 없기 때문이다. 
영국인이라면 누구나 은퇴 후 자신만의 정원을 가꾸는 꿈을 꾼다. 아파트에서 말년을 보내는 것을 감옥에서 죽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는 은퇴 후에도 아파트에서 사는 것이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는 징표다.

[일사일언] 오래된 집이 좋아
영국에선 가난한 학생이나 실업자 같은 취약 계층이 아파트에 산다. 
영국에선 아파트를 '플랫(flat)'이라고 부르는데 단어 뜻 그대로 아파트가 납작하게 생겼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영국인들은 돈을 벌어서 자신의 집 외관과 내부를 꾸미는 데 쏟아붓는다. 
미국의 작가 프랭크 바움이 쓴 '오즈의 마법사'를 보면 주인공 도로시가 이렇게 말한다. 
"아무리 낡고 허름해도 세상에 우리 집만 한 곳은 없어." 영국인이라면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하지만 한국인이라면 그 집이 서울 강남의 40평대 아파트쯤 돼야 그 말에 동의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