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北韓消息

"정전협상 공산 측 대표단 뒤엔 中 정보 거물 있었다"

바람아님 2015. 12. 14. 07:51

(출처-조선일보 2015.12.14 이선민 선임기자)

'전쟁과 평화…' 펴낸 김명섭 연세대 교수
"섣부른 정전협정 폐기는 또다시 전쟁 부를 수 있어"

"6·25전쟁은 단순히 공산진영과 서방진영의 무력대결이 아니라 국가의 경계를 넘어 연대하던 이념(관념·idea)들의 충돌이었다. 공산주의 대(對) 자본주의, 평등 대 자유, '조선' 대 '한국', 중국문명 대 서구문명의 충돌이라는 복합적 성격을 이해해야 
그 시작과 종결을 올바로 파악할 수 있다."

20세기 한국 역사를 국제정치적 관점에서 조망해온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김명섭(52) 교수가 
6·25전쟁 정전협상 과정을 분석한 '전쟁과 평화-6·25전쟁과 정전체제의 탄생'(서강대학교출판부)을 펴냈다. 
800쪽이 넘는 방대한 연구서는 정전협상 과정을 전면전쟁기(1950.6.25~1951.7.10), 화전(和戰)양면기
(1951.7.10~1953.7.27), 정전체제 수립기(1953.7.27~1954.11.18)로 나눠 세밀하게 분석한다.

김 교수는 특히 정전협상의 막전막후(幕前幕後) 주역들에 주목했다. 
전쟁과 평화에 대한 생각의 충돌이 협상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1951년 7월 공식 협상이 시작됐을 때 대표들은 6주면 끝날 것이라고 봐서 겨울옷도 가져오지 않았지만 
'제국주의가 있는 한 평화는 없다'는 공산 측 대표단의 완강한 입장 때문에 협상이 2년 넘게 길어졌다"고 말했다.

“6·25전쟁의 진실을 덮고 평화 협정을 체결하면 한반도에 화해와 평화가 올 것이라는 믿음은 정치학적 미신에 가깝다”고 말하는 김명섭 교수 사진

“6·25전쟁의 진실을 덮고 평화 협정을 체결하면 

한반도에 화해와 평화가 올 것이라는 믿음은 

정치학적 미신에 가깝다”고 말하는 김명섭 교수.

 /이명원 기자


공산 측 대표단은 수석대표 남일과 이상조·장평산·덩화·셰팡으로 구성됐다. 
하지만 이들을 뒤에서 지휘한 인물은 중국공산당 군사위원회 정보부장 리커눙(李克農)이었다. 
1920년대 이래 중국공산당 정보기관의 전설이었던 그는 마오쩌둥·저우언라이와 직접 연결돼 독자 권한을 행사했고, 
공산 측은 일관성 있게 협상에 임했다. 반면 서방 측 대표들과 배후 인물은 계속 바뀌었고 뚜렷한 설계자 없이 
여론과 선거에 좌우됐다. 
수석대표였던 조이 제독은 "우리는 패를 다 보여주고 적이 그것을 이용한다"고 말했다.

이런 차이는 정전협상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 
정전협상의 주제는 공간(군사분계선 획정), 시간(정전의 실현과 지속), 인간(포로와 피랍자 송환)이었다. 
통역을 맡았던 H.G. 언더우드는 1승1무1패라고 평가했지만 김 교수는 정전협정이 전체적으로 공산 측에 유리했다고 
지적한다. 육상경계선은 무승부였지만 해상경계선은 38도선 이북의 해양과 도서(島嶼)에 대한 서방 측 우위를 양보했다. 
정전협정 후 유엔군사령관이 설정한 NLL(북방한계선)에 대해 김 교수는 "근거 없이 일방적으로 선포한 것이 아니라 
정전협상 중에 충분한 논의를 통해 기정사실화된 것"이라고 했다. 
또 공산포로들의 전면 송환을 막는 데는 성공했지만 국군포로와 민간인 피랍자들의 귀환에는 실패했다.

공식 정전협상을 시작할 때 양측은 약속 시각을 오전 10시로 정하면서 '우리들 시간(our time)'인가, '
당신들 시간(your time)'인가를 확인해야 했다. 
1950년 4월부터 한국이 서머타임을 실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6·25전쟁 발발 시각도 평양 시각으론 새벽 4시, 
서울 시각으론 새벽 5시였다. 양쪽 기록에 같은 사건을 놓고 발생 시각의 차이가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1953년 7월 27일 종전 때는 한국에 서머타임이 실시되지 않아 이런 문제가 없었다.

정전협정은 한반도에 '상대적 평화'를 가져왔다. 그리고 정전협정 체결 직후 가조인된 한미상호방위조약은 전쟁 재발 방지의 
실질적 안전장치가 됐다. 이렇게 60년 넘게 지속돼 온 정전체제에 대해 일각에서는 항구적이고 완전한 평화 상태로 바꾸기 
위해 평화협정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김명섭 교수는 "한반도의 정전체제는 '사실상의 평화'였을 뿐 아니라 법적으로도 '평화'였다는 해석이 있다"며 
"섣부른 정전협정 폐기는 또다시 전쟁을 부를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평화협정을 맺는다면 6·25전쟁 원인에 대한 지적과 재발 방지책 마련이 필요한 만큼 북한의 체제 변화, 
통일 과정과 함께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