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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모란봉악단 미스터리 ① - '단숨에' 그녀들은 돌아갔다

바람아님 2015. 12. 16. 00:57
SBS 2015-12-15

전격적인 모란봉악단의 베이징 공연 취소와 귀국 해프닝은 며칠이 지난 오늘까지 가장 뜨거운 뉴스로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붙잡고 있습니다.

지구상에서 가장 폐쇄적인 체제의 가장 치명적인 선전무기로 불리는 미녀악단에 쏠린 원초적인 호기심에 더해 외교 에티켓이나 상식을 무참히 깨어버린 모란봉악단 돌발적인 공연 취소의 이유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있기 때문일 겁니다.


이번 공연을 추진한 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중롄부)나 외교부 등 당국은 물론 관영 언론들 조차 상부의 함구령에 따라 철저히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공연을 코 앞에 두고 터져 나온 김정은 위원장의 '수소폭탄 보유' 발언에 중국 측이 항의표시를 하며 일이 틀어졌다는 관측부터 기존 한국 언론보도를 방패삼아 모란봉악단 단장인 현송월과 김정은의 스캔들을 여과 없이 보도한 중국 비관영 매체들의 행태에 김정은이 분노했기 때문이라는 주장까지 무수한 설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모란봉악단의 2박3일간의 짧은 베이징 체류 기간 동안 가까운 거리에서 인터뷰하며 취재했던 기자로서 그 중 설득력이 높아 보이는 가설을 풀어보고자 합니다.

먼저 모란봉악단의 대표곡인 "단숨에!"부터 소개해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아버지의 사망 이후 어린 나이에 집권한 김정은은 공포 정치를 통해 군부를 틀어잡고 빠르게 권력기반을 다지기 위해 음악계에 호전적인 노래를 주문했습니다. 이 요구에 부응해 선풍적인 인기를 쓸며 떠로은 노래가 바로 "단숨에!"라는 군가입니다. 2012년 김정은은 아버지가 만든 은하수 악단을 대신해 친솔 악단인 모란봉악단을 출범시킵니다. 모란봉악단은 곧바로 '단숨에'를 자신들의 취향에 맞게 편곡하고 여기에 뮤직비디오까지 만들어 악단의 대표 레퍼토리로 삼았습니다.


자~ 함께 모란봉악단의 "단숨에!" 공연 동영상을 보시죠!▶ 영상 보러가기

검은색 스커트 차림의 모란봉악단 현악 4중주팀이 연주곡버전으로 '단숨에'를 연주합니다. 이 가운데 단연 눈에 띄는 미모의 전자바이올리니스트가 북한판 바네사 메이로 불리는 모란봉악단의 리더 선우 향희입니다.

절도 있는 "단숨에! 단숨에!" 구호에 맞춰 곡이 시작되면 관객들은 박자에 맞춰 박수를 보냅니다. 이때 무대 뒤 화면에 흐르는 뮤직비디오 화면엔 북한이 자랑하는 장거리로켓 은하3호 발사 장면이 나옵니다.(은하3호는 북한이 2012년 12월 12일 광명성 3호를 탑재하여 발사한 장거리 로켓으로 주행거리는 1만3천km에 달합니다.) "당 중앙은 위성 발사를 승인한다"라고 적힌 김정은의 친필 명령서도 보입니다.


흥이 오른 관객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자 객석은 순식간에 댄스 파티장으로 변합니다. 화면 가득 미국 지도가 나타나고 평화적 인공위성이라던 은하3호는 미국 대륙을 향해 돌진합니다. 뒤이어 김정은의 위성 발사 관제소 현지 지도 장면이 이어집니다. 한 마디로 자신들이 보유한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에 핵탄두를 실어 언제든 미국을 포함한 적대세력을 "단숨에!" 타격할 수 있다고 위협하는 호전적 군가를 모란봉악단이 선동가요로 바꿔 부르는 겁니다.


공연장 화면에 띄우는 뮤직비디오는 여러 가지 버전이 있다고 합니다. 은하3호가 곧바로 미국으로 날아가 지구를 폭파시키는 '하드 코어'부터 식품공장이나 양식장 같은 민생개선 선전화면으로 편집한 마일드 버전까지 공연의 성격에 따라 바꿔 끼울 수 있는 방식입니다. 차신들의 첫 해외공연인 베이징 국가대극원 공연에 모란봉악단은 "단숨에!"를 레퍼토리로 포함시켰을까요? 그렇다면 화면에 재생할 뮤직비디오는 어떤 버전이었을까요?


자 이번엔 모란봉악단 공연이 열릴 예정이었던 베이징으로 가보겠습니다. 공연을 이틀 앞둔 12월 10일 오전 야간기차편으로 베이징역에 도착한 모란봉악단은 버스로 약 15분 거리인 장안대로 연변의 민족호텔에 짐을 풀었습니다. 잠시 휴식 뒤 공연단 일부는 차로 불과 5분 거리에 있는 공연장인 국가대극원에 들러 사운드체크 및 악기 점검 같은 리허설 점검을 마쳤습니다.



 

다음날 11일 오전 일찌감치 아침 식사를 마친 단원들은 초청측인 중국 중렌부 관계자들의 인솔에 따라 베이징 해양 박물관에 들러 돌고래 쇼 등 공연을 관람하고 11시 반쯤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한국, 일본 등 취재진이 몰린 것을 보고 모란봉악단 단원들은 점심 식사를 방안에서 해결하고 중롄부 요원들의 경호 속에 오후 2시반쯤 국가대극원 남문을 통해 공연장으로 입장했습니다. 단원들의 손엔 자신의 악기 케이스가 들려 있었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공연 준비는 순조로워 보였습니다.


참관표를 사고 공연장 밖에 먼저 들어가 있던 일부 취재진이 경계가 소홀한 틈을 타 리허설 연주 장면을 몰래 촬영하다 중롄부 관계자들에게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로이터TV 등 외신을 통해 일부 리허설 장면이 소개되기도 했지만 이때 단원들의 차림이 군복인 점을 고려하면 무대의상을 차려입고 공연내용 그대로 연습해 보는 드레스리허설은 그 이후에 이뤄진 것으로 보입니다. 중롄부 관계자들이 러허설 전 과정을 지켜보며 모니터를 하고 있었을 겁니다.


만약 이 자리에서 모란봉악단이 하드코어 버전의 "단숨에!"를 연주했다면 중국 측의 반응은 어땠을까요? 상부 보고를 통해 공연 불가 방침을 전달 받은 중롄부 측이 모란봉악단에 공연 내용 수정을 요구했을 것이고 이 과정에서 양측 간에 갈등이 불거졌을 건 뻔합니다. 국제사회 책임대국임을 내세우며 줄곧 한반도 비핵화 원칙의 견지해 온 중국 정부 입장에서 북한이 핵보유국임 기정사실화하고 미국을 행해 호전적인 위협을 가하는 내용의 공연을 베이징 한복판에서 버젓이 진행되게 놔둘 수는 없었을 겁니다.

미국 대륙을 북한 핵미사일이 타격하는 장면을 중국 최고지도부인 상무위원이나 정치국원이 지켜보는 장면이 외신을 통해 보도된다면 국제사회로부터의 비난과 항의를 면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문제 내용을 삭제 하지 않으면 공연 자체도 불가하며 당초 약속됐던 중국 지도부의 참석도 없을 것임을 북측에 통보했을 것이고 공연 당일 오전까지 양측간에 양보 없는 기싸움 끝에 김정은이 돌연 귀국을 지시했을 개연성이 높습니다.



 

모란봉악단의 돌연 공연 취소와 관련해 중국 측이 내놓은 유일한 권위 있는 반응은 "소통에 문제가 있었다"라는 신화통신의 짧은 기사였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은 함구한 채 내놓은 소통의 문제란 해석이 바로 공연내용에 관한 양측 간의 서로 다른 기대의 충돌이 아니었나 하는 추측을 해봅니다. 지난 10월 류윈산 상무위원의 방북으로 모처럼 해빙 무드를 맞은 북중 관계이나 만큼 서로간에 조심스럽고 신중한 배려에 대한 기대치도 높았을 겁니다.


중국측은 자신들의 체면을 고려해서 모란봉악단이 민감한 핵 관련 내용이나 지나친 김정은 우상화 내용을 배제한 공연을 준비해오리라 기대했을 것이고, 반대로 북측은 모처럼 최고지도자의 친솔 악단을 파견하는 만큼 초청자인 중국 측이 자신들의 원하는 바 대로 공연 무대를 만들 수 있도록 협조해주길 바랬을 겁니다.


그러다보니 관람 인사의 격이나 의전 등에 많은 신경을 썼고 정작 세세한 공연 내용에 관해서는 서로 믿거니 자기 편할 대로 생각했다가 뒤늦게 서로 심각한 오해가 있었음이 드러났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어쩌면 북한 측이 사전 약속과 달리 실제 공연에 "단숨에!"를 몰래 끼워 넣으려다 중국 측이 이를 막판에 간파해 문제가 불거졌을 수도 있습니다.


한 외교당국자는 중국이 북한을 예전의 특수 관계가 아닌 정상국가 관계로 대하겠다는 점을 기회 있을 때마다 밝히고 있는데도 북한만이 여전히 허니문시절의 단꿈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꼬집었습니다. 한때 혈맹이었던 북중 양국은 한 편의 블랙코미디 같은 위험한 '이심전심' 게임을 벌이다 서로 체면을 구기고 국제사회에서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초 겨울 음악 외교를 통한 훈풍을 꿈꾸며 "단숨에!" 달려온 모란봉악단은 결국 찬 바람을 일으키며 "단숨에!" 돌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사진=연합뉴스, 게티이미지)

임상범 기자doongle@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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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모란봉 악단 철수..화 못참은 김정은

SBS 2015-12-15

북한의 모란봉 악단이 베이징 공연을 앞두고 갑자기 철수한 원인에 대해 윤곽이 드러나고 있다. 국가정보원은 국회 정보위원에게 한 보고에서 “중국이 김정은 찬양이 주를 이루는 모란봉악단 공연 내용의 수정을 요구했고, 북한이 이를 거부하면서 공연 취소가 이뤄졌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대북소식통은 “모란봉 악단 공연 내용에 핵보유나 장거리로켓 발사를 선전하는 내용이 들어갔고 중국이 이 내용의 수정을 요구한 것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전했다. 리허설을 하며 공연 내용에 대해 조율을 하는 과정에서 북중간의 마찰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김정은 제1비서의 수소폭탄 보유 발언이 공연에 영향을 미쳤다는 일각의 설은 근거가 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보 분야에 정통한 대북소식통은 “중국이 김정은의 수소폭탄 발언에 문제를 삼으려했다면 이는 외교경로를 통해 제기할 문제이지 공연과 연계시킬 문제는 아니”라고 말했다.


● 이번 사태가 주는 두 가지 의미

여기서 이번 사건이 주는 의미를 두 가지 관점에서 살펴보자.

북한 모란봉악단이 진취적인 창작공연활동과 사상문화전선의 제일기수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다고 9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북한 모란봉악단이 진취적인 창작공연활동과 사상문화전선의 제일기수로서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고 있다고 9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첫째, 북중간의 눈높이가 이제는 서로 조율하기 힘들 정도로 달라졌다는 것이다. 북한 입장에서 볼 때 모란봉 악단은 김정은 정권을 홍보하기 위한 선전도구에 불과하다. 미녀 가수에 팝송까지 부르는 신세대적인 공연 방식은 김정은 정권을 더욱 효과적으로 선전하기 위한 수단적 변화에 불과할 뿐이다.

하지만, 중국 입장에서는 이러한 북한의 의도에 과거처럼 박수를 쳐주기가 어렵다. G2의 일원으로 국제사회를 이끄는 주요국가가 되고 싶은 중국이 ‘위대한 김정은 동지’를 외치는 공연을 베이징 한 가운데서 수 많은 관객을 모아놓고 성원하기는 어려운 것이다.


더구나 핵과 장거리로켓 발사를 선전하는 내용이 공연에 들어있었다면, 국제규범을 같이 만들어가는 중국이 이를 용인하기는 어렵다. 구시대에 그대로 머물러있는 북한과 세계로 뻗어가고 있는 중국의 눈높이가 너무 달라져 있는 것이다.



 

두 번째로 생각해 볼 부분은 김정은의 조급성이다. 모란봉 악단이 계속 불러왔던 김정은 찬양곡에 대해 중국이 수정을 요구한 것이 기분 나쁠 수는 있지만, 향후 북중관계를 고려한다면 공연을 취소시킨 것은 너무 경솔했다. 이번 모란봉 악단의 공연은 단순한 문화공연을 넘어 북중관계의 복원을 위한 중요 매개체로서의 역할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김정은이 조금만 성질을 죽이고 중국과 타협을 하도록 했다면 공연 자체가 크게 타격을 입을 것도 없었다. 중국이 노골적인 김정은 찬양곡 몇 개를 빼달라고 요구할 수는 있으나 전체적인 공연구도를 바꿀 수는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베이징에까지 초빙해 온 외국의 공연단에게 간섭을 하는 데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북한이 중국의 수정 요구에 어느 정도 호응해 주는 모양새만 보였다면 중국도 중간선에서 타협을 하는 방식으로 이번 공연을 진행했을 것이다.


하지만, 김정은은 그런 유연성을 발휘하지 못했다. “감히 공연 내용을 제 멋대로 이래라 저래라 해! 그럴 거면 다 들어오라고 그래”라는 것이 김정은의 대응방식이었던 것 같다. 결국, 그런 조급성으로 인해 내년 초에도 김정은의 방중을 통한 북중 정상회담이 가능할 지는 불투명하게 됐다.


이번 모란봉 악단의 공연 취소 사태는 국제사회의 주요 행위자로 부상하는 중국과 과거의 혈맹 논리에만 머물러 있는 북한간의 괴리를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북한과 중국이 쉽사리 등을 돌리지는 않겠지만, 북한이 지금의 상태에 머물러있는 한 두 나라의 눈높이는 갈수록 격차가 커질 것으로 보인다.   


(사진=연합뉴스)   

안정식 기자cs7922@s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