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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모란봉악단 미스터리 ②..'단원 잠적설' 진실은?

바람아님 2015. 12. 17. 00:57
SBS 2015-12-16

모란봉악단의 갑작스런 귀국의 배경을 놓고 중국 네티즌들은 일부 단원들의 잠적설을 제기했습니다. 단원 2명이 베이징 주재 한국대사관 영사부와 비밀스레 연락을 취하고 있다가 공연 당일 망명을 시도했다는 꽤나 구체적인 시나리오까지 나돌았습니다.

12월 11일 공연 하루 전날 오전 베이징 해양관을 관람하고 숙소인 민족호텔로 돌아오는 모란봉악단 본진을 직접 인터뷰했던 저로서는 '단원 잠적설'의 진위 여부를 곱씹어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지난 8일 평양에서 김기남 노동당 비서와 리진쥔 중국 대사의 영접을 받으며 떠나 올 당시 모란봉악단과 공훈국가합창단으로 이뤄진 북한 예술단의 정확한 규모가 얼마였는지부터 되짚어 봐야겠습니다.


 


당시 한국 언론들은 인솔자인 최휘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과 현송월 모란봉악단 단장을 비롯한 방중예술단의 규모를 100여 명으로 보도했습니다. 당일 중국 관영 CCTV의 관련 뉴스에도 모란봉악단이 19명으로 구성됐다는 소개가 나올 뿐 역시 이번 공연에 참가하는 정확한 단원의 수는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과연 몇 명이 단둥을 거쳐 베이징역에 도착한 열차에 탑승했던 걸까요?


이번 공연의 핵심인 모란봉악단부터 살펴보겠습니다. 금성학원과 평양음악무용대학 출신 북한판 엄친딸들 가운데 키 165cm, 체중 50kg 의 엄격한 외모 심사를 커쳐 선발한 모란봉악단 단원들은 그아말로 재능과 미모를 겸비한 재원들입니다.


 


공훈 배우인 류진아, 라유미를 주축으로 김유경, 정수향, 리수경, 박선향 등 7명의 가수와 전자클래식 악기를 사용하는 현악 4중주팀, 전자 기타, 베이스, 드럼, 키보드, 색소폰을 비롯한 밴드팀 등 12명을 합쳐 현재 멤버 수는 19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악 4중주를 이끌던 리더 선우 향희는 빼어난 미모와 연주 실력으로 엄청난 팬층을 가지고 있었지만 결혼은 물론 연애도 불허하는 악단 규정을 어기고 인민군 장교와 사귀다 결국 퇴출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전자기타리스트 강평희 역시 카리스마 있는 연주력으로 유명한데 김정은의 형인 김정철과 에릭클랩튼 공연을 보러 런던에 나타나 주목을 받았습니다.


단장인 현송월은 김정은과 한때 염문설이 나기도 했지만 11살이라는 나이 차를 감안컨데 김정은이 아내인 리설주와 함께 은하수관현악단 시절 스타였던 현송월의 열렬한 팬이었다고 보는 편이 더 설득력 있어 보입니다. 아무튼 현송월은 전 남편과 이혼 후 대좌 계급장을 단 채 모란봉악단을 이끌고 베이징에 입성했습니다.


기자가 인터뷰한 현송월은 여유있고 당당한 모습이었습니다. 버스에서 내리는 모란봉악단의 선두에 선 채 중국 관계자들의 경호를 받으며 기자의 질문에 답했습니다. 당시 마이크를 쥔 취재진 가운데 유일하게 모국어 의사소통이 가능했던 터라 현송월과 일대일 문답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2015년 12월 11일 8시 뉴스 화면 (北 모란봉 악단, 질문 건네자…말 아끼는 단원들)

 2015년 12월 11일 8시 뉴스 화면 (北 모란봉 악단, 질문 건네자…말 아끼는 단원들)


"소감 한 말씀 해주세요!"

"안녕하십니까? 누군지 소개부터 하십시오"

"서울에서 왔습니다!"

"아니 근데 어떻게 중국에 오셨습니까?"


 


현송월의 곁에는 자주색 코트를 걸친 한 여성이 항상 같이 있었지만 그녀의 신분은 알 길이 없었습니다. 중국어 통역이라는 얘기도 있었지만 제게는 왠지 현송월을 전담 마크하는 북측 감시원으로 보였습니다. 단장의 뒤를 따라 동계 군복에 털모자를 쓴 모란봉악단원이 2열 종대로 열을 지어 따라왔지만 기자의 질문에 미소만 지을 뿐 입을 열진 않았습니다. 당시 촬영화면을 여러 차례 돌려봤지만 그 숫자는 최대 15명에 불과했습니다.


방안에서 배달음식으로 식사를 해결한 뒤 숙소 1층 로비로 내려와 공연장인 국가대극원으로 떠나던 단원들의 숫자 역시 15명이었습니다. 잠시 후 비공개로 이뤄진 국가대극원 리허설 장면이 찍힌 사진에는 현악주자 3명, 기타, 베이스, 피아노, 키보드, 금관주자 등 8명의 모습만 나와 있습니다. 공연 당일인 12일 오후 1시 공연장이 아닌 베이징 수도공항 국제선 출국장에 홀연히 나타난 모란봉악단 일행은 14명이었던 것으로 현장 목격자들은 전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서둘러 출국수속을 마치고  4시5분 고려항공편으로 귀국길에 올랐습니다. 같은 시각 숙소인 민족호텔에서는 왕자루이 전 중롄부장을 마중하는 최휘 부부장과 모란봉단원으로 보이는 미모의 한 여성이 목격됐습니다. 이런 저런 목격담을 종합해 보면 애초에 베이징 공연에 참가한 단원들은 총원 19명 가운데 일부,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최대 15명에 그쳤다는 추정이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모란봉악단 맴버 가운데 이탈자는 없었던 것으로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공훈국가합창단으로 보이는 남성들은 미모의 모란봉악단에게 쏠린 스포트라이트에 가려 별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공연 하루 전날과 공연 당일 오전 점퍼와 정장 차림의 북한 남성 수십 명이 호텔 정문 밖에서 떼를 지어 담배를 피우거나 잡담을 나누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일부는 군복 정장 차림으로 호텔로 행진해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이들을 제외하고 호텔에 나와 지원하던 북한 측 인원들은 상당수가 중국 현지에서 무역업 등에 종사하는 이른바 외화벌이 일꾼들이었습니다.


물론 감시에서 자유롭지는 못했겠지만 숙소인 민족호텔 현장이, 당시 수 십 명의 취재진과 중국 중롄부 요원들과 공안, 북한 지원 인력들로 매우 혼잡했던 점을 감안하면 맘만 먹는다면 충분히 탈출의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공연 당일 모란봉악단이 항공편으로 급거 귀국길에 오른 뒤에도 공훈합창단을 포함한 잔여 인원들은 상당시간 베이징에 남아 있다가 열차 편으로 귀국길에 올랐다는 점도 눈여겨 볼 대목입니다.


 


공연 장비를 챙겨 짐을 꾸리느라 출발이 늦어졌다는 설명이 있었지만 만일에 정말 이탈자가 있었다면 뒤늦은 추적 작업과 후속 조치로 인해 부득이하게 귀국이 늦어졌을 가능성도 있다는 얘깁니다. 설사 이탈자가 있었다한들 한국이나 제3국으로의 망명을 시도해 어쩔 수 없이 공개되지 않는다면 북측이나 중국 측 모두 검거 전까지는 1급 보안 사안으로 비밀에 붙여야 하는 껄끄러운 문제일 겁니다. 이전에도 중국내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온 북측 인사가 허술한 감시를 뚫고 잠적한 사건들은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주중 한국대사관 영사부은 이탈 단원의 한국 망명설은 100% 픽션이라고 일축했습니다. 하지만 단원 잠적의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있고 어딘가에 꼭꼭 숨었다면 영원히 진위 여부가 확인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홀연히 나타났다 숱한 의문만 남기고 사라진 이번 모란봉악단의 베이징 데뷔극은 훗날 두고두고 호사가들의 좋은 안주꺼리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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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