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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식당 봉사원 2000명은 ‘트로이의 목마’

바람아님 2015. 12. 21. 00:55

해외 식당 봉사원 2000명은 ‘트로이의 목마’

캄보디아서만 2명 탈출

주간조선 : 2015-12-15 11:14

 

▲ 프놈펜 대동강식당 봉사원으로 일하다 탈출한 문수경씨(오른쪽). photo CNN

 
 
▲ 지난 8월 문수경씨 탈출 사건을 보도한 CNN 홈페이지 기사.

 

“모두 건강하며 잘 지내고 계시는지요. 저는 변함없이 어제나 오늘이나 건강하며 맡은 일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평양을 떠난 지도 벌써 햇수로 4년, 기간으로는 2년이 지났고 남의 나라 땅에서 새해도 세 번이나 맞았습니다. 저는 남의 나라에 있기가 정말 싫었는데 지금은 평양에 돌아갈 날이 얼마 안 남았다는 생각에 항상 사기가 나서 일하곤 합니다. 조국에 눈이 정말 많이 내리고 몹시 춥다던데 할아버지 할머니랑 다 건강해서 잘 계시는지… 보고 싶습니다. 작년 12월 화폐 교환이 진행된 후 지금 시세가 어떤지, 작년에 100일 전투, 150일 전투가 연이어 벌어져 많이 힘드셨겠는데 새해에 피로는 다 푸셨는지… 아버지 어머니 위성이랑 계속 생각나곤 합니다. 오래 있으면 집에 대한 생각이 잊혀진다고 하지만 전 더 보고 싶어지는 마음을 잡을 길 없습니다. 위성이도 곧 졸업할 텐데 시간을 아껴 쓰라고 시계를 22$에 사서 보냅니다.”
   
   이는 프놈펜 대동강식당 봉사원이었던 문수경(25)씨가 평양의 부모에게 보낸 편지다. 문씨는 2011년 6월 대동강식당을 탈출해 논란을 빚은 여성이다.
   
   문씨는 위의 편지를 2010년 초쯤 보낸것으로 추정된다. 편지에 언급된 화폐개혁은 2009년 말 있었다. 문씨의 탈출이 논란을 빚은 것은 당시 한국인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문씨를 차에 태워 떠나는 장면이 CCTV에 찍혔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북한 측은 “북한 무역일꾼 행세를 한 남한 간첩이 문씨를 차 안에 강제로 밀어넣어 태우고 떠났다”고 주장했었다. 물론 우리 정부는 이를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납치가 아니라 나는 탈출했다”
   
   지난 8월 21일 미국의 CNN 방송은 문씨 사건을 4년 만에 재조명했다. 취재진이 평양에 가서 문씨 부모를 직접 인터뷰했다. 위의 편지는 CNN 취재 당시 문씨 부모가 취재진에 보여준 딸의 편지 내용이 카메라에 잡힌 것을 글로 옮긴 것이다. 문씨 부모는 CNN 취재진에 여전히 “딸이 (봉사원으로) 선발됐을 때 자랑스러워했다”며 탈출이 아니라 납치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프놈펜 현지 교민들에 따르면, 문씨가 자발적으로 식당을 탈출했다는 것은 이미 사실로 판명났다. 탈출 당시 CCTV에 찍힌 한국인은 30대 탈북자 김모씨로, 그는 문씨 탈출 이후 캄보디아에 다시 입국하다가 문씨 납치 혐의로 캄보디아 당국에 억류됐었지만 재판 결과 혐의 없음으로 밝혀져 풀려났다. 김씨 재판에서는 탈출한 문씨가 태국 방콕으로 추정되는 곳에서 찍어 보내온 동영상이 공개됐는데, 문씨는 이 동영상에서 “지금 저는 국경을 넘어 제3국에 안착하여 안정된 삶을 살고 있다”며 “(탈출 당시) 잠시만 가까운 매점에 태워다 달라고 (김씨에게) 부탁하였으며 저는 차 안에서 이젠 다시는 식당으로 돌아갈 수 없음을 밝히고 무작정 국경까지만 동행하여 태워다 달라고 간절히 김씨에게 부탁했다”고 말했다. 국정원은 문씨가 현재 어디에 있는지, 국내에 들어왔는지 여부를 확인해주지 않고 있다.
   
   캄보디아 북한 식당 봉사원의 탈출은 문씨가 시작이었다. 작년에도 또 한 명이 탈출했다. 작년 5월 시엠레아프 평양친선관에서 일하던 이수향(22)씨가 탈출했다. 캄보디아 현지 영자신문에 따르면, 이씨는 오전 9시경 지배인에게 “잠깐 나갔다 오겠다”고 말한 뒤 사라졌다. 이씨는 한국인 관광가이드의 도움을 받아 탈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국정원은 이씨의 소재에 대해서도 확인을 안 해줬지만 조만간 이씨가 한국에 들어올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해외 북한 식당에서 일하는 봉사원들은 북한 입장에서는 일종의 ‘트로이의 목마’다. 어린 여성들을 앞세워 외화벌이를 하고 있지만 이들이 북한 체제에 위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탈출 가능성이 상존할 뿐더러 이들이 3년간 해외에서 복무하면서 바깥세상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 다시 북한에 들어오는 것 자체가 체제에 위협적이다. 해외 북한 식당에서 일하는 봉사원들의 수는 2000명을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프놈펜 현지 교민들에 따르면, 북한 식당 봉사원들은 겉으로는 자신들 체제를 자랑스러워하지만 고된 노동과 바깥세상에 대한 인식 변화 때문에 평양의 가족을 버릴 가능성이 항상 열려 있다고 한다. 한 교민은 “이른바 밀착접대를 하는 봉사원들이 3년 내내 손님들이 하는 얘기만 들어도 상당한 인식 전환이 가능하지 않겠느냐”며 “거지만 산다고 배웠던 한국에서 온 손님들이 한 끼에 자신의 월급 절반 또는 전부를 쓰는 것 자체가 이들에게는 충격”이라고 했다. 또 다른 교민은 “신입 봉사원들은 캄보디아의 북한식 호칭인 ‘캄보자’라는 말을 쓰지만 한두 달만 근무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캄보디아’로 말투도 바뀐다”며 “3년의 복무기간을 다 보내면 웬만한 남한 실상은 물론이거니와 한국의 걸그룹 이름까지 줄줄 욀 정도가 된다”고 했다.
   
   
   남한 걸그룹 이름 꿸 정도
   
   이들이 바깥세상을 동경하는 모습을 보이는 적도 많다. 대표적으로 단골손님들이 오면 스마트폰을 빌려 뭔가를 검색하는 봉사원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한 교민은 “평양고려식당의 경우 2층 가라오케룸에 들어오는 봉사원들은 꼭 한국 손님들에게 빌린 스마트폰을 베란다로 갖고 나가 20~30분간 뭔가를 보고 오는데 무엇을 검색하는지 묻고 싶지만 난처할까봐 물어보지 않는다”고 했다. 이 교민에 따르면, 봉사원들은 단골들이 북한 체제를 비판하는 것을 상당히 거북스러워한다고 한다. 이 교민의 경험담이다. “북한 식당 가라오케룸에서 어린 봉사원들이 불쌍해 김정은 욕을 심하게 한 적이 있었는데 봉사원 중 한 명이 배웅을 하면서 ‘다음에 오실 때는 북조선에 대해 비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권했다. 뉘앙스가 화가 나서 하는 말이 아니라 ‘우리도 알고 있는데 그런 말을 하면 우리 입장만 곤란하다’는 투였다.”
   
   물론 북한도 이들을 철저하게 단속한다. 봉사원을 뽑을 때부터 집안이나 대학을 따지는 등 출신 성분을 중시한다. 평양 출신이 아니면 봉사원이 되기 힘들다는 게 정설이라고 한다. 실제 기자가 프놈펜 북한 식당에서 만난 봉사원들에게 “집이 어디냐”고 물어본 결과 100%가 “평양”이라고 답했다. 평양에서도 중구역, 보통강구역 등 하나같이 잘사는 동네에 집이 있다고 했다. 젊은 여성들 입장에서도 해외에 나가 돈벌이를 할 수 있는 봉사원은 선망의 대상이다. 평양 장철구상업대학 출신이라는 프놈펜 모란봉식당의 한 봉사원은 “멀리 떠나고 싶어 봉사원으로 나갈 나라로 직접 캄보디아를 택했다”며 “우리는 3년의 봉사기간을 실습이라고 부른다”고 했다.
   
   말은 실습이지만 봉사원들에게 3년의 복무기간은 사실상 감금생활이다. 일도 고될 뿐 아니라 쉬는 날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도 없고 감시원을 곁에 둔 갑갑한 생활을 견뎌야 한다. 프놈펜 봉사원들은 대부분 장철구상업대학 선후배 사이지만, 서로 마음대로 연락도 주고받지 못해 단골손님들을 통해 다른 식당 친구들의 근황을 묻는 일도 있다고 한다.
   
   과거 북한은 해외 식당 봉사원 중 탈출자가 발생하는 사태를 중시했다. 2006년경 베트남 북한 식당에서 봉사원이 탈출하자 잠시 동남아 북한 식당 전체를 문닫을 정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돈벌이가 급해지면서 탈출자가 발생해도 개의치 않는 분위기라는 게 캄보디아 교민들의 말이다. 문수경씨가 탈출한 대동강식당이 다시 문을 열 준비를 하는 게 이를 방증한다는 것이다. 북한 식당에 자주 간다는 한 프놈펜 교민은 “앵벌이에 내몰리는 딸 같은 아이들이 불쌍하다”며 “봉사원들의 탈출이 계속될 것으로 본다”고 했다


. 글 | 정장열 주간조선 부장대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