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北韓消息

미안하다! 현송월

바람아님 2015. 12. 22. 00:41

[J플러스] 입력 2015.12.20 


평양 모란봉악단 현송월 단장 선생!

갑작스레 불발된 베이징 공연. 몇날 몇일 심혈을 기울여 연습한 악단의 공연이 무산되고 난 후 결국 빈손으로 평양행 고려항공기에 올라야했던 마음을 어땠을지...생각해보면 마음이 짠합니다. 방중 공연을 위해 지난 9일 북한을 떠날때 노동당 선전선동 총책인 김기남 비서가 직접 나와 환송할 정도로 기대에 부풀었던 행사였는데. 결국 이렇게 허망하게 깨져버리다니...누구보다 악단을 이끌고 있는 단장으로서 착잡함을 금할 수 없었으리라 짐작됩니다.

중국 공연을 위해 베이징에 도착한 평양 모란봉악단 단원들.


공연 무산에 대해 북중 양측이 함구하고 있는데...한국의 대북관련 당국자들 얘기로는 개막 당일인 12일까지도 공연 레퍼터리조차 제대로 북중 간에 협의가 이뤄지지 않고 줄다리기를 했던게 화근이었다고 합니다. 북한의 최고지도자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을 찬양선전하는 내용에 중국의 영도그룹이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은거란 설명인데요. 북한도 공연내용을 수정하거나 빼는 등의 절충을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나 융통성은 없었던듯합니다.

내가 이렇게 현송월 단장 선생에게 편지를 쓰는 이유는 공연불발이나 그 배경에 대해 장황한 설명을 하거나 잘잘못을 따지는 주장을 펼치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현 선생에 대한 한국과 서방의 일부 언론의 보도 중 아무리 생각해봐도 납득되지 않는 부분에 대해 얘기하고 잘못된 부분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고 바로잡을 계기를 마련해보자는 뜻입니다.
모란봉악단의 베이징 방문 소식을 처음 접한 이달 초 몇몇 지인들에게 나는 "현송월은 절대 오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하다시피했습니다. 당신은 이미 몇몇 언론을 통해 김정은과의 염문설이 나돌았고, 처형설 등등 북한의 최고지도자와 관련한 추문의 한가운데 있는 인물이란 점에서였습니다. 공연히 그걸 다시 들출 일을 북한 전략가들이 피할 것이란 생각이었죠.

그렇지만 당신은 베이징에 '조선인민군 대좌' 계급장을 달고 모란봉악단 단장 자격으로 도착했습니다. 저는 이 대목은 김기남 비서를 비롯한 노동당 간부들의 패착이라고 봅니다. 어떤 이유에서든 현송월 단장을 베이징에서 서방 언론에 노출시킨다는 건 김정은 관련 추문을 다시 불러오고 확대 재생산할 수 있는 길을 여는 것이란 점에서죠. 하지만 당 간부들은 안일했고 외부세계의 여론이 얼마나 무서운지 몰랐던듯합니다. 예상대로 한국의 종편과 몇몇 언론, 일본 등 서방의 매체들까지 김정은과 현송월이 염문설에 다시 불을 붙였습니다. 방중 공연 불발 문제와는 별개로 현송월 파견에 대해서는 김정은 제1위원장 차원의 엄한 문책조치가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모란봉악단의 2012년7월 창단공연. 미키마우스와 곰돌이 푸를 비롯해 미국 자본주의의 상징인 캐릭터들이 대거 등장해 북한의 개혁개방 가능성까지 점쳐졌다.


그런데 나는 잘 압니다. 정말로 당신이 북한 최고지도자의 여자였다면 이렇게 어추구니 없게 공개될 수는 없다는 것을...수령의 여자들은 은둔을 강요받았죠. 김정은의 생모인 고영희(2004년 프랑스 파리에서 유선암으로 사망) 조차 생전에 한번도 모습을 공개적으로 드러낸 적이 없었습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마지막 여자였던 김옥의 경우 기술서기(비서)이던 1992년 '장군님의 여자'로 간택받은 후 북한이 화보에서 잘려나갔습니다.

당신이 김정은의 옛 애인이고 염문이 있었다는 설은 한때 언론의 스폿라이트를 받았죠. 20대 후반의 최고지도자의 베일에 싸인 사생활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퍼즐조각을 우리 정보 당국이 첩보차원에서 제공한 때문이죠. 김정은이 '부인 이설주 동지'를 공개석상에 데뷔시킨 시점이라 '과거의 연인 현송월'에 더욱 시선일 쏠릴 수 밖에 없었던겁니다. 무엇보다 당신이 보천보전자악단 시절이던 2005년 '준마처녀'라는 히트곡을 남긴 유명 여가수이고, 2006년 갑작스레 무대에서 사라졌다는 점은 흥미로왔죠.

현송월이 2012년3월 은하수관현악단 음악회에 방청객으로 나왔다가 사회자의 요쳥에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당시 현송월은 만삭의 몸이었다.


그렇지만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김정은 정권 출범 첫해인 2012년 3월 은하수관현악단 음악회에 6년만에 모습을 드러낸 현송월은 만삭의 몸이었죠. 객석에 앉아있던 당신은 사회자가 무대에 오를 것을 요청하자 '출산을 앞두고 있다'며 사양하다 결국 거듭된 요구에 노래를 불렀죠. 살아있는 절대 권력인 김정은의 여자였다면 과연 만삭의 몸으로 TV에 등장하고, 노래를 부르는 게 가능했을까요. 북한을 20년 넘게 취재하고 연구해온 저로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판단하고 있죠.

당신은 김정은의 여자일 수 없고, 그랬던 적도 없었을 것이란 확신을 갖게된 건 지난해 5월입니다. 평양에서 열린 전국예술인대회 실황을 지켜보던 저는 조선중앙TV에 등장한 현송월의 모습을 볼 수 있었죠. 당신은 '모란봉악단 단장' 자격으로 대좌 계급장을 달고 나와 예술인들이 김정은 체제를 결사옹위하기위한 선봉에 서자는 취지의 대표 연설을 했는데요. 은하수악단 가수이던 이설주가 '포르노 촬영설' 같은 스캔들에 휩싸여 어수선하던 상황까지 겹쳤던 당시 상황을 생각해보면, 현송월이 정말 김정은의 여자였다면 공개석상에 나설 수는 없었을 것이란 판단이 섰습니다.

냉철하게 생각해보면 당신이 김정은의 여자라는 대목은 신빙성이 떨어지거나 그 개연성이 없다는 판단이 섭니다. 하지만 한국과 서방의 언론은 이번 베이징 공연 불발 과정에서 이미 오래전 일단락지었어야 할 현송월의 '과거'를 또다시 들춰냈죠. 1면 톱기사에 기사를 싣고 방송 뉴스는 당신의 얼굴을 반복해서 클로즈업했던겁니다.

2014년5월 전국예술인대회에서 연설하고 있는 현송월. 북한 조선중앙TV는 현송월을 '모란봉악단 단장'으로 소개했다.


물론 북한체제의 폐쇄적 특성상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언론의 반론도 가능하겠죠. 그렇지만 현송월 당신이 김정은 제1위원장에게 "개혁개방에 나서고, 모란봉악단 스캔들 같은 보도에 적극 해명하고 정보를 외부세계에 제공하라"는 고언을 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겠지요. 이런저런 변명에도 불구하고 한 남자의 아내이자 한 아이의 어머니인 당신에게 우리 언론이 참 나쁜 짓을 한 것 만은 분명해보입니다. 한 예술인이자 악단을 이끌고 있는 책임자인 현송월에게도 미안한 일이지요.

당신이 우리 대한민국에 언론피해를 구제해주는 언론중재위원회 같은 제도가 있다는 걸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군요. 물론 그 절차를 북한 주민인 당신이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쉽지 는 않겠지만 말입니다. 북한 최고지도자의 추문설에 더욱 관심이 쏠리게 하는 일들을 평양 당국이 허용할리 없을 것이란 점도 잘 압니다. 그래서 더욱 미안합니다.

우리 언론에 "현송월 격정 토로... '김정은과의 염문설 어처구니 없다' 눈물"이란 제목으로 당신의 반박 인터뷰가 실릴 날을 기대해봅니다. 부디 마음을 풀고 음악 활동에 매진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서울에서

이영종 통일문화연구소장 겸 통일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