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中國消息

[시진핑의 중국이 걷는 길 24] 우다웨이 방한은 사드 반대 외교의 시작인가

바람아님 2016. 3. 4. 00:17
[J플러스] 입력 2016.03.03 07:24

유상철 기자는 1994년부터 98년까지 홍콩특파원, 98년부터 2004년까지 베이징특파원을 역임했고, 2007년부터 2012년까지 5년 간 중국연구소 소장을 지낸 중국통입니다.

중국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초강대국으로 성장했습니다. 앞으로 중국은 어떻게 변모해나갈까요. 그에 맞춰 우리는 또 어떻게 적응하고 도전해나가야 할까요.
유상철 기자의 '시진핑의 중국이 걷는 길'은 이같은 질문의 실마리를 찾기 위한 칼럼입니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시진핑의 중국이 걷는 길'을 업로드할 예정입니다.

북핵 6자회담의 한국 측 수석대표인 황준국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오른쪽)과 중국 측 수석대표인 우다웨이 중국 한반도사무특별대표가 28일 서울 세종로 외교부 청사에서 회동을 하고 북핵 문제 등에 대해 논의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맞나 보다. 올해 만 70세의 한 중국 외교관이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라는 말이 무색하게 시간과 분을 쪼개 가며 한국의 각계 인사 접촉에 열을 올리고 있다.

중국의 한반도사무 특별대표이자 6자회담 수석대표인 우다웨이(武大偉)가 주인공이다. 2월 28일 한국을 찾은 그는 우리 외교부 장관과 통일부 장관, 청와대 국가안보실 차장 등 고위 관료는 물론 언론계와 기업계, 학계 등 곳곳을 찾아 다니며 그야말로 ‘광폭 외교’를 펼치고 있다.

1998년 4월부터 2001년 11월까지 한국에서 대사로도 근무한 적이 있어 국내에 지인이 많은 까닭도 있지만 이번 경우에는 우다웨이 대표 스스로 적극적으로 연락을 취해 국내 여러 분야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일정도 보통의 2박 3일보다 긴 4박 5일을 할애해서다.

그는 왜 왔나. 그 스스로 세 가지 사항을 말했다.

첫 번째는 유엔에서의 대북 제재 결의안 마련에 중국과 한국이 서로 긴밀하게 협력했고 중국이 충실하게 결의안을 이행할 것이라는 점이다.

두 번째는 중국과 한국이 수교 이래 양국 관계를 비약적으로 발전시켜 왔음을 상기시키면서 양국 관계는 오로지 오르막을 향해 나아가야지 내리막이나 되돌아가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세 번째는 사드에 대한 중국의 입장을 한국이 배려해줬으면 한다는 점이었다. 중국말에 ‘구경거리는 뒤에 있다(好戱在後)’고 하는데 맨 마지막 말이 그의 이번 방한에서 가장 중요한 목적임을 말해준다.


우다웨이의 방한은 사드 반대 입장을 한국에 지속적이고도 강력하게 알리려는 중국 행보의 시작에 다름 아니다. 지난해 이맘때부터는 박근혜 대통령의 중국 전승절 참석을 부탁하는 중국 고위 인사들의 방한 러시가 이어졌었다.

아마도 올해 한 동안은 사드 문제로 한중 간 줄다리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어찌 해야 하나. 우리 입장에선 우리의 안보에 관한 주권적 문제로 우리의 방위 필요에 따라 결정해야 하는 문제이긴 해도 이게 그렇게 간단치만은 않다.

대북 제재와 이후 전개될 국면 등을 생각하면 미국은 물론 중국과도 긴밀한 관계 유지가 필수다. 이런 입장에서 중국의 ‘결사’ 반대를 무시로 일관하기도 어렵다. 이런 시점에서 미국의 말이 바뀌고 있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이 지난달 말 미국을 찾은 왕이 중국 외교부장에게 ‘사드 배치에 조급해하지 않는다’고 말한 게 좋은 예다. 우리 또한 조급해하지 않으면서 중국을 포함한 각국의 제재 이행 여부를 보아가며 속도 조절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케리 장관의 말이 갖는 진의 여부도 더 알아보면서 말이다.

한편 우다웨이 대표는 지난 2월 초 북한이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기 직전 북한을 방문했다가 베이징으로 돌아오면서 기자들에게 “북한에 할 말은 다 했고 할 일도 다 했다. 결과는 모르겠다”고 말한 바 있는데 무슨 말을 했는가가 궁금했다.

그에 따르면 두 가지란다. 하나는 6자회담에 복귀하라는 주문이었다. 북한이 모든 핵무기를 파기하기로 한 9.19 공동성명의 정신으로 돌아오라는 이야기였다고 한다.

다른 하나는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지 말라는 것이었는데 북한은 그가 돌아간 지 사흘 만에 쏘아 올렸다. 그의 말을 북한이 왼쪽 귀로 듣고는 오른쪽 귀로는 흘린 결과란다.